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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Du Jun 27. 2018

[NY]뉴욕에서 먹는 소주 맛이란


# 뉴욕의 금빛을 보다


“와, 이게 뭐야!”

지하철에서 나오는데 온길을 비롯한 공기마저 금빛으로 물들이는 거대한 빛줄기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 그는 그걸 보고 '이게 바로 골든 아워지'라며 소중한 것을 하나 꺼내어 구경시켜준다는 느낌으로 약간 콧대 높여 설명했다. 근데 정말 그렇게 으시댈 정도의 광경으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노을 빛에 물드는 모습을 보면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어서 한참을 보다가 집으로 가곤 했다. 하지만 뉴욕의 노을은 한국에서 본 해와 같은 해가 지는 노을이겠지만 그 스케일과 다가오는 느낌이 참 달랐다. 역시 자연이 선사하는 광경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다는걸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뉴욕의 K-Town

약속장소는 뉴욕의 케이타운이었다. 사실 어찌보면 뉴욕을 온전히 구경하기에도 바쁜데 구지 케이타운을 봐야겠는가 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여행이기에. 군말없이 그와 발걸음을 맞췄다.

오늘 만나기로 한 분들은 그의 뉴욕시절 함께 알바한 형님과, 그 가게의 단골이었던 세탁소를 운영하시는 할아버지. 그분들이 얼굴이 보이자마자 어린아이처럼 신나하던 그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신이났다.


어린 아이처럼 뭘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지만 마냥 신나있었던 그의 모습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입맛도 고려할 겸, 강호동의 백정을 가자고 했다.(하긴, 이분들에게 미국 음식들은 아마 엄청 질릴 것이다)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은 백정을 내가 뉴욕에서 가게될 줄이야!

강호동 백정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기를 타고 있었다. 다들 '백정이 이렇게 인기가 많아?'라며 신기한 눈빛과 업된 목소리로 감탄의 멘트를 하나씩 날렸다. 아주 다행히, 운이 좋게도 그 곳에서 알바를 하고있는 친구 한분이 그 무리중에 한 멤버였던 것이다. 바로 전화를 걸어 호출! 몇 분뒤에 그 친구는 1층 문밖에서 기다리는 우리를 보며 반가운 목소리로 뛰어왔다. 아무래도 바로 들어갈 수 없으니 자신이 맡은 층이 2층이니 곧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것. 야호!


강호동 백정의 기본 세팅. 아 맛깔스럽다!

어느정도 기다리니 올라오라는 신호가 왔다. 한국 사람이 그래도 반 이상은 차지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거의 70프로가 외국인이었다. 하긴, 그들도 이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기가 쉽진 않았겠지.


삽겹살과 소주&맥주를 시켰는데, 정말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입맛이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 생각도 잠시, 눈앞에 지글지글 아름답게 구워지는 고기를 보니 침샘이 자꾸 꼴딱꼴딱 침을 연신 심키게끔 풀 가동을 한다. 한잔 두반 기울이며 그동안 못만났던 세월들을 술잔에 녹여내며 입안에 털어넣었다.


함께 일했던 형님은 뉴욕의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을 하고 있으며 몇 달 전에는 귀여운 아이가 태어났다고 했다. 와이프와 대학교때만나 이 곳, 뉴욕까지 함께 오게 되었고 그 긴 인연의 끈을 결혼으로 완성시켰다고 했다. 현재는 한국에 잠시 들어가있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어깨 가득 짊어진 가장이라는 짐이 그 분의 모습을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이게 만든 거 같다.


내가 더 놀라웠던 건 다름아닌 할아버지였다. 혼자 뉴욕에 자리를 잡고 세탁소 일을 하면서 보낸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다되었따고 하셨다. 일단 혼자서 그 기나긴 세월동안 꾸준히 일한 점도 놀랍지만, 뉴욕으로 넘어오셨을 때의 나이가 벌써 50이 넘었던 때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정도 연배시라면 한국에서 조금 편안하게 생활하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가족들 품을 떠나 혼자 이곳에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도 존경스러운 사실이었다.


아직 30대인 나도 어디론가 떠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을 때, 두려움과 걱정이 양쪽 발목을 잡아 한 걸음 앞으로 내딪기도 힘들어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곤 했다. 항상 친구들을 만나면, '해외로 나가고 싶어' '무언갈 새롭게 해보고 싶어' 라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만 할뿐, 항상 그렇게 주어진 날들을 손도 뻗지 못한채 무심히 모르척하며 무심하게 보냈다.

할아버지를 보면서 '왜 나는 더 젊고 가능성도 많은데 못하고.. 아니, 안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가시같은 물음에 또 한번 내 자신이 밉고, 부끄러웠다.


고생많이 하셨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 탓일까? 할아버지의 모습은 50대처럼 보였다.


못만난 3년 동안의 공백이 컸던지 우리는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지도 모를만큼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정도 걸쭉히 마신 후, 그렇게 헤어지는게 못내 아쉬워서 우리는 2차로 술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2차는 함께 있었던 형님의 동생이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 한국이건 해외건 지인이 있으면 좋다. 기본적으로 술정도만 세팅되면 다양한 서비스 안주들이 동그란 철로 만들어진 탁자를 가득 채운다.


강호동 백정에서 알바한 동생도 12시에 일이 마쳐 이쪽으로 합류를 했다. 이때 부터였을까. 이미 취사량을 넘긴 나는 여기서 자제는 못할망정 무르익은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이성의 끈을 놓은 듯 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사실 기억도 흐릿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그냥 마냥 웃고 떠들며 술잔 기우는 소리 밖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넘치는 밤이었다.

 

술김에 찍은 뉴욕의 밤거리


어떤 정신에 찍은 사진일까? 나도 모르게 있는 카메라 앨범에 찍혀있는 사진을 보며 화들짝.

이 사진을 보며 기억안나는 나의 모습에 겁도 났지만, 그래도 망나니처럼 굴지는 않았다 보다 하는 안도감이 교차했다.



우리는 꾸역꾸역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는데, 역시나 무리였나보다. 내려할 곳을 지나쳤고, 더욱이 정신없는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택시에 올라탔다.


정말, 불금을 보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일을 가져오게 될 줄은 우린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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