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브레드 한 여름호]
글을 쓰긴 썼다
글을 쓰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주간 브레드'를 시작하면서 늘 다음 달이 오기 전에 미리 주제와 글 전반을 적어두고 준비된 내용을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곤 했다. 그달 호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늘 다음 글을 썼다. 하지만 2월 호가 끝나가도록 나는 다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해 나는 결국 4월의 어느 날 시작하겠다고 얼버무리며 지난 호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4월은 이미 과거가 된 지금, 개학을 앞두고 밀린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아무 말이나 적기 시작했다. 누가 기다리지 않더라도 내가 한 약속은 지키자. 그런 마음뿐이다.
2월이 다 가고 3월마저 다 가도록 정말 한 편도 제대로 끝낼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노트북의 흰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글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 힘들지, 아냐 중간도 힘들지, 끝맺음은 더 힘들지! 그냥 글쓰기 자체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오래전 남편이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글을 왜 쓰고 싶어?' 그는 순수한 의도로 물은 것인데 그 질문을 들은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마음이 어지러웠다.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하는 내가 괴로워서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글을 쓰고 싶다면서 동기가 없는 것은 불순한 것 같아 대답을 쥐어짜냈다. 어려서부터 나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책을 읽었다. 이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를 읽었고, 아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를 읽었다. 불행한 전쟁과 고아의 이야기도 읽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애매한 고통보다 그들의 분명하고 절절한 고통이 낭만적이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그 시간을 지났다.
내가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종종 나는 그 질문을 떠올리며 생각하지만 늘 답은 달라진다. 어떤 때에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서. 어떤 때는 기똥찬 이야기를 판 돈으로 여생을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말도 안 되는 희망이라도 품는 건 내 맘이지), 어떤 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다. 하지만 요새는 생각한다. 내게 글쓰기는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길이다. 내가 나를 보게 되는 방법이다.
나는 많은 모습으로 가장하며 살아왔다. 똑똑한 사람이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당당한 사람이고 싶기도 했고, 어떤 때는 내가 너무 씩씩한 것 같아 좀 덜 씩씩하고 여린 사람이길 바랐다. 가엽고 귀여워서 모두가 도와주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나는 의도치 않아도 보통 다른 이들에게 내가 혼자서도 잘 해낼 거라 신뢰를 주는 인간이었다.
또한 나의 범생이 같은 얼굴은 모든 이에게 내가 착하고 성실하며 일정 수준의 고통은 잘 견뎌낼 것이라 믿게끔 했다. 하지만 나는 악하고 게으르며 아주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목구멍을 치고 나올 것만 같은 욕을 자주 꾹꾹 삼켰다. 나에게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 때도 있었고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단짝 친구와 잘 지내길 바란 적도 있었다. 내가 남들과 다른 것을 느낄 때마다 부지런히 그것을 숨겼다. 실은 그들의 규칙과 대화를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무리에 남아있으려 그들의 말에 가짜로 웃고 함께 흥분하며 타협한 때도 많았다.
십 대 시절의 나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원하면서도 그럴 수 없어 외로웠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꿈꾸고 포기하면서도 여전히 낭만을 갖고 있었다. 나는 꿈꾸듯 살았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아이들과 같을 수 없었다. 이곳과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 꿈꾸면서 네모 반듯한 어두운 벽돌 건물에서 지내는 시간을 버텼다. 또래 수백 명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행동과 말을 해야만 주류에 들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노트에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를 적었다. 그것은 푸념이기도 했고 그저 내 하루의 일과였고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욕이었거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찾아갔다. 글쓰기는 나에게 일종의 돌파구였다. 자라는 동안 사람은 늘 미성숙해서 다른 이에게 속 얘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내 맘은 불편해져서 말은 아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믿을만한 이에게만 들려주고 싶은 생각과 느낌을 일기로 적었고 그러면서 나는 고등학생 때 이미 내가 어떤 애인지 알게 됐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예민하긴 했지만 그만큼 작은 변화를 잘 알아차리고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며 내가 피해 받는 것도 싫어하고 할 일은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일단 즐겁지도 않던 무리와 비슷해지려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도, 급식실도, 과학실과 음악실, 운동장에도 혼자 나갔다. 내 마음이 바뀌니 혼자 복도를 걷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매일 나에게 말하면서도 그 관계를 끊지 못하는 친구에게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애의 반복되는 불평이 듣기 싫었고 그 애와 밥을 먹어주려 매일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게 싫었다. 그 어떤 것보다 나를 제일 소중히 여겨주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말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곁에 남아 밥을 먹고 대화하고 같이 자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무리에서도 나는 내 취향과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런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였다. 나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곳을 편하게 생각하는지 아니 그런 사람들과 장소를 찾아갈 수 있게 됐다.
나는 아빠의 죽음 뒤에도 글을 쓰며 털어냈고 내 감정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했다. 미국에 와서 내 인생이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어 우울할 때도 그랬다. 마음속의 생각을 어딘가에 말하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더 이상 안전한 비밀이 아니다. 나는 나의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 같을 때마다 글을 썼다. 그러면 나의 감정이 변하는 것이 기록으로 남고 나의 작은 변화와 기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 헤매는 사이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나를 알고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면 어떤 때에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다. 그러면 섣불리 울거나 웃지 않고 다른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시작한 글은 어딘가에서 멈추거나 끝나곤 한다. 이렇게 글을 한 편 쓰긴 썼다.
2020년 8월 24일 월요일, 김영지
[주간 브레드 한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