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브레드 한 여름호]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5년 전, 내 인생 첫 커리어인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나의 진로를 정하려 백수가 된 때였다. 그때 나는 학원 강사는 취업 준비에도 돈이 필요해 잠시 지나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후 백수로 지내는 세 달간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밥을 사줬다. 그들은 나를 아껴주는 언니나 오빠들이었고 배려해 주는 친구들이었다. 세 달간 경제활동을 멈췄던 나는 한 연구소의 한 달짜리 알바를 시작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나도 그들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일 년도 안 되는 기간 안에 수많은 재정 위기가 있었다. 살 집이 없었던 때도 있었고 중고차를 산지 얼마 안 지나 고장 나기도 했다. 때때로 집세를 걱정해야 했고 코로나19가 번지며 남편이 학교에서 일하던 곳마저 닫아 생활을 유지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러니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는 절대 없었다. 영수증을 모으고 가계부를 쓰며 1달러, 2달러를 아끼며 장을 봐도 항상 돈은 바닥났다. 그래서 괴로웠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삶은 나에게 오히려 평안을 주기도 했는데 해탈하는 마음이었다. 동시에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가 분명히 있기에 이 삶을 우리의 절대자가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우리를 돕는 이들이 있었다. 타지에서 외로울 나를 생각하며 한국에서 보내온 소포들이 자주 도착했다. 그 안에는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공책과 펜을 보낸 이도 있었고 자신이 만든 달력이나 일 년을 잘 계획하라며 플래너를 보낸 이도 있었다. 미국에서도 살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상자에 담은 물건만큼 비싼 택배비를 들여 내 취향을 고민하며 보낸 그 선물들에 쓸쓸함은 금세 날아갔다. 차가 고장 나자 미국에서 차를 고치려면 얼마나 큰돈이 들고 힘든지 아는 경험자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재정으로 우리를 도왔다. 함께 사역했던 목사님이나 한국의 친구들, 그리고 미국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직접 또는 익명으로 돈을 보내왔다. 모아준 돈과 학교에서 대출을 받아 차는 무사히 고쳤다. 도움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줄 일은 없고 받을 일만 넘쳐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가를 훔치며 잠들곤 했다.
나만의 꿈이었던 한국행도 이뤄졌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모두 문을 닫으면서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국제 학생들은 전부 앞날이 캄캄해졌다. 우리가 다니던 미국 교회에서도 재정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교회는 우리에게 현금이 아닌 한국행 티켓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려면 지속적인 지원은 어려워서였다. 그래서 교회의 지원을 받아 갑자기 한국에 오게 됐다. 출국 열흘 전에 결정되어 정신없이 짐을 싸고 방을 뺐고 주변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준비해서 들어올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한국에 오느라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할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시작된 입덧으로 몸이 좋지 않아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다. 종종 오는 연락에 한국에 왔음을 알렸다. 그중 한 친구는 미국으로 선물을 보내려다 코로나19로 우체국 국제 수송이 멈춰 보내지 못했다고 연락해왔다. 한국에 왔다고 하자 그는 선물을 빼고 더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로 다시 채워 보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상자를 열었다. 처음 보는 간식거리와 나를 떠올렸다는 책, 그때와 지금 쓴 두 개의 카드로 작지 않은 상자가 가득 차 있었다. 그 애의 연락을 받고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대학 신입생 OT에 가는 버스였다. 그 애도 카드에 그날의 기억을 적었다. 감사하게 이어진 인연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돈을 잘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돈을 벌 때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것들을 그에게 선물하고 맛있는 것을 사주고 유용하거나 무용하고 예쁘거나 귀여운 것들을 사주곤 했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우리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그만큼 우리에게 아끼기도 했다. 거기서는 쓰던 것도 상대에게 필요하다면 주고받는 게 이상하지 않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과 시간으로 도왔다. 모두 생활이 비슷하니 서로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았다. 가깝고 또 먼 곳에서 도움을 주는 이들은 이 도움을 멋쩍어하지 말고 나중에 다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갚으라고 했다. 나는 그때마다 돈을 잘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 마음이라도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도울 때 나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좀 더 멋지게 내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기쁜 일이 있을 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좋은 것을 주고 싶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나의 최선으로 돕길 바란다. 아니지. 베푸는 것은 가진 것의 양과는 상관이 없지. 중요한 건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과 망설이지 않을 용기다. 나의 가진 것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 마음은 넓어지기를 마음 깊이 기도하며 마음이 넓은 친구가 보낸 편지를 다시 읽었다.
2020년 8월 25일 화요일, 김영지
[주간 브레드 한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