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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Nov 17. 2024

만족과 좌절

엄마 경력 1444일째



한 영상에서 소아정신과 의사는 아이를 양육할 때 꼭 길러줘야 할 두 가지로 '만족과 좌절'을 들었다. 신학생의 아내와 자녀로 살면서 우리 삶은 절대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리 부족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훨씬 풍요롭게 지내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앞으로 살며 이서와 이한이가 또래 집단에서 부족함을 느낄 수는 있다. 특히 재정적으로. 그동안 남편이 파트 사역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때는 이서가 갖고 싶다는 것은 대부분 사줬다. 물론 이서가 아주 어렸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이 많지 않기도 했고 비싸지도 않았다. 우리는 사 입고 살아도 이서의 삶은 풍족했다. 사역을 내려놓고 긴축재정에 들어가면서 이서에게 절약의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찾아봤다.


일단 '돈'의 개념을 먼저 알려줘야 했다. 뭔가를 식당에서, 마트에서 살 때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과 아빠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오면 우리가 먹을 것, 필요한 것을 사는 것임을 알려줬다. 그리고 우리는 매주, 매달 쓸 돈을 정해두고 그걸 넘지 않도록 조절한다고 알려줬다. 그러면 이서가 어떤 물건을 갖고 싶어 할 때 '돈이 없다'라고 하는 것보다 '이번 주에는 우리가 쓰기로 한 돈을 다 썼다'라고 하는 게 아이에게 훨씬 더 이해하기 쉽고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우리가 계획을 세워 지켜간다는 긍정이 좀 더 나을 것 같았다.


최근에는 이서가 뭘 보든 '갖고 싶어요, 사주세요'라는 말을 쉽게 했다. 한인 마트에는 계산대 앞에 자잘하게 불량식품이 든 장난감을 판다. 보통은 안 된다고 하면 멈췄는데 그날은 유독 들어갈 때 보고는 나올 때까지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장난감을 사면 이서 생일까지는 '갖고 싶은 것'을 사지 않는 것으로 약속했다. 하나만 사면 이서한 전쟁 서막이라 떨리는 손으로 두 개를 샀고 그 후로 이서는 마트 다니며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저 이야기를 하면 '아, 맞다!'하고 마음을 접곤 한다.


만족과 좌절은 단순히 돈에만 있지 않다. 이서는 학교에서도 관계에서 오는 나름의 만족과 좌절을 경험한다. 이서가 늘 같이 논다고 자주 이름을 말했던 친구가 하루는 이서와는 놀지 않고 다른 친구와 놀겠다고 계속 No를 외쳤다. 이서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물으니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Play tohether'하고 말하길 몇 번 반복했단다. 이서는 거절하는 친구에게 함께 놀자고 다시 제안하는 용기를 보여줬고 결국엔 친구도 받아들여 함께 놀아 기뻤다고 했다. 친구가 늘 이서와 놀고 싶은 건 아니고 이서와 성향이 달라 어울리기 어려운 친구도 있고 때로는 친구의 슬픔을 알아줘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이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배우고 있다. 밥 먹으며 이서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서야, 이서는 정말 멋지다. 친구가 거절했는데 주눅 들지 않고 다시 물어본 것도 용감하고 다른 친구가 슬퍼서 혼자 있고 싶다고 할 때 기다려준 것도 멋져'하니 이서는 '그래?'하고 별일 없다는 듯 냠냠 맛있게 밥을 먹었다.


인생은 만족과 좌절의 반복이다. 하나가 해결된 것 같으면 또 다른 하나가 속을 썩이고 관계도, 진로도, 연애나 심지어 내 마음 하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많다. 이서가 작은 일에 기뻐하고 작은 일에 너무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 잘 만족해서 작은 행복을 감사히 누리고 때로는 좌절하고 극복하고 만족할 수 없어 도전도 해보면서 멋지게 살면 좋겠다. 너무 놀라지 않고 조금 덤덤하게 살면 좋겠다.


매일 덤덤해지려 노력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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