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학부 시절에 극본 창작 수업을 들으며 나는 우리 집 대문에서 착안한 이야기를 썼다. 파출소도 신호등도 없는 깡시골에 주택인 우리 집은 예나 지금이나 대문이 없이 길과 연결돼 있다. 개들이 드나들며 똥도 싸고 고양이들이 드나들며 뱀이나 쥐도 잡는다. 생판 처음 보는 차가 뜬금없이 마당까지 올라와 차를 돌리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이 괜스레 마당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때 아빠는 살아있었고 대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아빠는 취미왕인데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것들만 적어보면 대학 시절에는 야구 동아리를 열성적으로 했고, 난 키우기, 그다음은 분재 키우기, 새 키우기, 주말 농장, 볼링, 탁구, 축구, 마라톤... 그러다 갑자기 시를 잔뜩 적어와 시집을 냈고 십 년이 흘러서는 등단 시인이 됐다. 대문을 만들겠다고 했던 그 당시에는 대금을 배우는 중이었다(네?). 대금을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갈색으로 마른 대나무를 잔뜩 가져와서는 대금을 직접 만들겠다고 했다. 대나무를 잔뜩 자르고 구멍을 이리저리 길이를 옮겨 뚫어보며 아빠는 진짜 대금을 만들었다(네..?). 그리고 남은 대나무들을 비슷한 길이로 잘라 엮어서 대문을 만들겠다고 했다.
내가 쓴 이야기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갈등이 쌓여 관계가 소원해진 아버지와 아들이 삐걱대는 대문을 조금씩 손 보며 서로를 받아들여 가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힘써 고쳐도 대문은 여닫을 때마다 자꾸만 삐걱대고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온 가족이 소리치고 울지만 결국 조금씩 응어리가 풀려간다. 그리고 아들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삐그덕. 아들은 그 문을 바라보며, 그래도 괜찮다고 대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간다.
당시 수업을 가르쳤던 극본가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꽤 좋아하셨다. 좀 더 발전시켜 보라고 여러 조언도 주셨는데 나는 결국 과제로 정해져 있던 분량만큼 쓰지 못했다. 이야기의 재료가 조금 부족했다. 그리고 과제로 매주 다섯 과목을 모두 다른 이야기를 쓰며 달리던 나는 힘도 부족했다. 수업마다 분야가 다르니 같은 이야기로 돌려 막기 했어도 되는데 이상하게 그러기가 싫었다. 그때 나는 일 년간 젓가락질을 못 해 숟가락으로만 식사를 할 정도로 손목이 망가졌었다. 아빠도 그동안 대나무를 꽤 엮어 출렁이는 발 같은 대문을 만들었는데 결국은 완성하지 못했다. 아마 완성했어도 문이 출렁거려 수동으로 여닫기가 어려웠을테지만, 아빠에게도 재료가 조금 부족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사이 아무도 모르게 몸이 상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구 씨 열풍으로 난리였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이제야 본다. 드라마를 보며 수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을 안다. 미정이 꿈꾸는 인간에서의 해방, 기정이 바라고 꿈꾸는 실컷 주는 사랑, 창희가 꿈꾸는 인간다운 삶. 많은 이들이 이 상처 많은 인물들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아마 그들이 경험하는 노른자가 아닌 흰 자위, 그것도 흰자위의 끝자락에 사는 그 생활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다. 내가 말하는 건 단순히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생활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생활이란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가 단 한 대인, 그 차를 놓치면 제시간에 나갈 수 없는, 가로등도 별로 없고 아스팔트도 깔리지 않은 길에 풀벌레 소리가 가득하고 파출소나 편의점도 근처에 없는 그런 생활을 말하는 거다. 동네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개들이 돌아다녀 괜히 불안하게 만들고 뱀이나 고라니나 두꺼비나 지네, 돈벌레와 수많은 거미와 함께하는 생활 말이다. 텅 빈 논에 푸른 벼 싹이 돋고 점점 자라 황토색으로 익으면 트랙터가 돌고 다시 텅 빈 논에 찬 바람이 불며 계절을 알린다. 눈이 쌓이면 제설차도 제일 늦게 들어와 차를 끌고 언덕을 오르다 오르다 포기하고 눈 속에 발을 파묻고 걸어 넘어가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가장 감탄했던 것은 주말이면 부모를 도와 밭일을 하는 창희와 미정의 복장이었다. 그것은 나와 동생이 입던 것과 정확히 같았다. 타들어갈까 뒷목도 가려주는 모자와 땀에 젖은 몸에 붙지 않도록 펑퍼짐한 바지, 아무리 더워도 팔토시와 장갑까지 온몸을 가렸어도 나중에 집에 돌아와 옷을 벗으면 온 몸에 모기 물린 자국일거다. 허벅지에는 엉덩이 의자를 걸치고, 줄줄 흐르는 땀과 뙤약볕에 머리카락도 동공도 모두 풀린 그 얼굴. 심지어 창희는 생김새도 몸선과 움직임도, 인생에 보이는 태도와 성격과 말투와 눈빛까지 내 동생과 닮은 점들이 있어서 보는 내내 입을 삐죽이고 웃으며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부모를 잃어봤다. 다시 말해 나의 엄마는 남편을 잃어봤다. 아직 젊은 부모와 아직 젊은 자식들이 한 사람의 빈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우리는 겪었다. 이것은 더 나이 들어 배우자나 부모를 잃어본 사람은 또 절대 다 알 수 없는 세계일 것이다. 심지어 나와 동생은 엄마를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다. 우리 중에 배우자를 잃어본 사람은 엄마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일을 겪었더라도 그 방식과 과정이 모두 달라 모든 사람은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상대가 겪었을 괴로움을 그저 상상해 볼 뿐이다. 나는 아빠의 발인 전날 밤, 기정이랑 창희랑 미정이처럼 울었다. 발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 생일과 아빠의 발인을 앞두고 상복을 입은 나는 영정 밑에 벽에 기대 웅크리고 엉엉 꺼이꺼이 소리 내서 울었다. 단짝처럼 자란 사촌 언니는 삼일장 내내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나르고 도와줬는데, 그런 나를 본 언니는 어찌 다가오지도 못하고 달려나가 영지가 운다며 나의 남편을 불러왔다. 복도에서 온갖 일을 해결하던 남편은 얼른 뛰어왔다.
나는 그 후로도 계속 울었다. 몸이 조그만 엄마가 상복을 입고 곁에 아빠 없이 맨발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볼 때, 아빠를 차에 싣고 화장터로 갈 때, 아빠를 태울 때, 작은 항아리에 든 아빠를 들고 너무 가볍다고 우는 동생을 덤덤하게 달래고 뒤돌아 또 울었고 유골함을 캐비닛 안에 넣을 때, 집에 돌아올 때, 사촌동생이 그래도 챙겨 먹으라고 보내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다 또 울었다. 결혼한 지 반년밖에 안 된 남편이랑 마주 앉아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나서 코 풀러 가고, 자다가도 깨서 나는 왜 아직 살아있나 거실 바닥에 나와 누워 또 울었다. 남들이 물으면 괜찮다고 하고 집에 와서 또 울었다. 아빠가 아파서 집에 있다고 사위가 장인어른 쓰시라고 서재처럼 책상을 꾸며뒀는데 아빠는 병원에서 빌려온 침대에 누워 그 자리까지 걸어가지를 못해 보기만 했다. 아빠가 걸으며 운동할 때 신으라고 새 운동화를 사다 줬는데 아빠는 아깝다고 신지도 못했다. 아빠는 낡은 지갑 안에 십 년도 더 넘은 꼬깃꼬깃 구겨진 어음을 넣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사업을 접게 된 게 두고두고 아빠의 구겨진 구석이었나. 우리는 아빠의 모든 남긴 것들을 보며 울었다. 다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없었다. 물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는 워낙 말도 많고 웃기도 많이 웃는 사람들이라 막 떠들고 웃다가도 또 울었다. 그러다가도 서로 우는 모습을 보고 또 웃었다. 우리는 모두 미친 사람들처럼 울다 웃다 울다 웃었다.
내가 썼던 그 극본은 지어냈지만 그저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아빠가 대문을 만들던 때, 아빠와 동생은 정말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나와 엄마는 둘 사이를 해결하고 싶어도 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두 사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서로 미워하는 구석이 있으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염가네보다 더 왁자지껄했고 훨씬 많이 웃었고, 숨기지 않고 화도 많이 냈다. 그래도 꼭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었고 서로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집에 가는 길에 같이 갈까 묻고 개들을 끌고 다 같이 산책도 했고 가끔은 함께 여행도 갔다. 그렇게 차 한 대로 서로 일정이 끝나길 기다려 같이 다녀야 하고 한 번 집 밖에 나갈 때면 무슨 일인지 모두가 알게 되는 집에 살면 비밀도 없다. 우리 사이의 어떤 것도 숨기려야 숨길 수 없었다. 아빠는 악인은 아니었으나 자라지 않는 소년 같은 사람이었다. 철이 없었고 늘 꿈속에 살며 현실 감각도 약했다. 외로운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꾸만 무언가를 돌보고 키우는 취미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나에게는 큰소리친 적도 없는 다정한 아빠였지만 동생과의 관계는 드라마 속 제호와 창희 같았다. 동생은 정말 창희 같았다. 아빠의 마지막 밤을 함께했고, 아빠가 투병 중인데 자신이 군대에 가면 누가 못 움직이는 아빠를 옮겨주나 입대도 미뤘다. 내가 결혼해 떠난 집에 남아 동생은 엄마와 그 쓸쓸함과 괴로움을 함께했다. 동생은 결국 아빠가 떠나기 직전에 아직 마음으로는 용서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한다고 말했다. 동생은 아빠와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아빠를 용서한다고 말하지 못한 채로 아빠가 떠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단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정말 지혜로운 일이었다. 미워했지만 동시에 가장 사랑하고 또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것만큼 내 영혼을 찢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우리는 결국 해방에 가까이 다가간다. 나도, 엄마도, 동생도 어떤 거대한 괴로움을 지나 이번 단계에서의 해방에 이르렀다. 아빠를 보내고 몇 년간 우리가 겪었던 내적 괴로움과 성장은 몇 글자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겪고 나면 인간은 다른 인간이 돼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 사이의 모든 괴로움은 의미가 없어진다. 어떤 일이든 내게 일어났을 때는 이유가 있고 내가 그 거대한 일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거다. 이렇게 큰 산을 오르고 내려온 뒤에는 작은 언덕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다리가 심장이 폐가 정신력과 길을 보는 능력이 모두 달라졌으니 말이다. 우리는 슬픔에서 해방했고, 갈등에서 벗어나고, 무엇보다 나를 제일 불쌍히 여기던 연민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면 우리의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열심히 사는 거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변명하지 않고 노력해 보고, 건강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노력해 끊어내면 된다. 잘 되지 않는다면 다시 해본다. 영 아닌 것 같으면 다른 길을 찾아보자. 사랑하는 사람도 시시때때로 밉지만 오래 미워하지 않고 얼른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우리는 옳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던 욕망에서도 해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던 비대한 자아에서도 해방한다. 인생은 또다시 거대한 산을 주겠지만 그것도 한 번 더 올라가면 될 테다. 각자 고군분투하며 올랐던 전과 달리 다음에는 튼튼한 신발도 준비하고 시원한 물이랑 중간에 까먹을 쪼꼬렛도 준비하고, 지치면 서로 잡아주고 엉덩이도 밀어주면서 가면 된다. 우리는 믿던 존재를 더더욱 믿게 됐고 그래서 그 멍에가 더 가벼운 것이 무슨 뜻인지도 좀 더 알게 됐다. 기정, 창희, 미정이 찾아낸 인생의 해방을 보며 나의 길고 거대한 해방일지를 오랜만에 짧게,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