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

by 김영지



시 외할머니. 남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여기 시간으로 어제 아침에 소식을 들었다. 몸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고 폐암 소견을 들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정밀 검사나 치료는 하지 않고 자식들이 모시며 마지막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들은 게 불과 2주 전이었다. 연세가 많으시면 암이 생겨도 진행이 더뎌 오래 버티시는 경우가 많아서 할머니도 그러시지 않을까 했는데, 금세 떠나셨다.


나는 가끔 남편에게 말하곤 했는데, 남해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시렸다. 아흔 두 살 인생. 삼십대 중반에 남편을 폐병으로 먼저 보내고 18개월짜리 막내, 나의 시어머니를 맡길 곳이 없어 그 어린 아기를 집에 두고 바다로 돈을 벌러 나갔다. 두돌도 안 된 애가 자다 깨면 엄마를 찾아 찻길까지 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단다. 그렇게 서글프게 고생해 사남매를 키웠는데 셋째도 폐병으로 진작에 먼저 보냈다. 이렇게 보자니 한 많고 서글픈 인생이었다. 킬킬대며 곧잘 웃으셨는데 타고난 성정이 긍정적이라 모진 삶을 잘 지나오시고 장수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 웃다가도 서늘한 눈빛으로 삶의 한을 말하기도 하셨다.


전체를 보자면 한 많고 서글픈 인생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좋아하시는 바나나 우유랑 아이스크림을 아들딸, 손주들이 잔뜩 사다 넣어두면 호호 웃으며, 사랑방 마냥 모여드는 동네 할머니들과 나눠드시는 모습이었다. 무릎이 안 좋아 잘 걷지 못하셨는데 대신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 집으로 모였다. 널리 알려진 문장처럼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 전적으로 믿는다면 삶을 잘 모르는 거다. 삶은 나의 의지 없이 태어나 알 수 없는 미래와 마주하는 운명을 견디고 아끼고 가다듬어 살다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비극이다. 하지만 소망을 가진 이들에게는 이 삶의 비극 너머의 것을 보기에, 그 삶의 순간들 가운데 귀하고 웃기고 지나는 것이 아쉬운 순간이 이어진다. 아무리 거대한 비극을 만나도 사랑하는 이들을 책임지고 작은 일에 웃으며 힘을 내는 그 미시적인 희극은 가까이서 볼 때에만 알 수 있다.


남편은 할머니를 아주 많이 아꼈다. 구구절절 할머니의 지나온 세월을 얘기하고 아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본인의 성격대로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잘 하는 것을 택했다. 멀리서 가보지도 못하고 할머니가 떠났다는 소식을 나에게 전해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읽던 책을 읽었다. 나는 울기라도 하라고 했다. 그는 지금 울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다. 그러더니 장례식을 어찌 하는지 물으려 한국에 전화했다가 이모님에에게 우리가 못 가봐서 미안해, 라고 말하고는 결국 울었다. 얼른 전화를 끊는데 수화기 너머로 가족들은 우나보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울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첫째 이서를 학교에서 데려왔다. 그리고 으레 그랬듯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녀왔다. 매주 아빠가 쉬는 날마다 최선을 다해 놀고 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 한국에서는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일 없듯 일상을 보낸다는 게 이상했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내 동생이 결혼을 하는데, 엄마와 동생이 장례식장에 가겠다는데 큰 일 앞두고 무리해서 아프기라도 할까 시가족들은 결국 장례식장이 어딘지도 알려주지 않았단다. 그래, 가는 게 더 불편하실거니까 그냥 있어라 하고, 아이들을 재우며 남해 왕할머니가 천국에 가셨다고 설명해줬다. 이서는 헉! 하고 조금 슬픈 얼굴이었는데, 금세 눈을 반짝이며 하나님에게 천국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할머니와 전화를 하겠단다. 나는 웃었고, 이서가 안방에 달려가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안아줘서 남편도 웃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다 잠들고 내일 남편 도시락을 싸다가 나도 조금 울었다. 마음이 헛헛해서 괜히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연락도 해봤다. 내 증조부모도, 내 친조부모도, 심지어 내 아빠도 보내봤으니 이별에는 이골이 난 것 같은데. 내 마음에 구멍이 난 것은 아니면서도 설명하기 어렵게 세상 어딘가 한 공간이 빈듯한 그 허전함을 어찌 표현할 수가 없다.


수많은 이들이 자기 삶을 전시하는 시대에 사는 나. 어디 내보일 데도, 인정받을 곳도 없이 맡겨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산 노인. 몇 번 밖에 못 만난 남해 할머니 얼굴을 지금 머릿속에 생생히 그릴 수 있다. 그것도 이상하다. 남해 할머니 인생을 혼자 몰래 아파하느라 할머니가 더 좋아졌나. 나의 아빠가 먼저 떠난 뒤에 단호한 얼굴로 엄마 섭하지 않게 챙겨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신 것, 네 시어머니는 아들만 있어서 안 됐다고 잘 부탁한다고 내 손을 붙잡고 말하신 것, 만나고 통화할 때마다 예삐야~ 하고~ 예쁘네~ 하시던 목소리도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한다. 할머니를 기리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글을 썼다.


이번 주만큼 한국이 멀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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