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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Mar 12. 2022

아빠 네 번째 기일과 소망



아빠가 먼저 천국에 간지 4년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아직 기일에 어떤  하면 좋을지 적당한 일을 찾지 못했다. 그저  날이 다가오면 아빠를 좀더 생각할 뿐이다. 해마다 이런저런 새로운 생각이 들었지만 올해는 나만의 의식으로 아빠의 기일에 글을 쓰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일평생 환상을 본 적이 없지만 아빠의 발인 전날, 빈소에 앉아 아빠의 사진을 보다가 아빠가 하나님 품에 안기는 걸 봤다. 아빠는 건강할 때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본 건강하고 당당한 아빠. 아빠는 놀라서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구름처럼 보이는 하나님 팔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오랫동안 정말 천국이 있는지, 구원이 있는지 의심하고 방황하던 아빠는 드디어 그 모든 게 진짜라는 걸 두 눈으로 본 거다. 정말로 있구나, 진짜구나!


그렇게 아빠의 평안을 눈으로 봤지만 나는 여전히 화가 나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아빠의 죽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전의 일들은 쓸 가치도 없을 정도다. 아빠가 죽은 뒤 나도 정말 많이 물음표를 던졌다. '왜 지금?'. 아빠는 사업을 접은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 막 새로운 일자리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고생하던 엄마도 그런 아빠의 모습에 조금씩 밝은 미래를 그렸다. 나도 동생도 좀 있으면 자리 잡을테고 그럼 우리 가족은 이제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 거라 생각했다. 바로 그런 때에 아빠에게 암이 찾아왔다. 그것도 몸 이곳 저곳 번진 채로. 대체 왜? 지금? 우리 가족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는지 하나님을 미워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아빠의 죽음 이후 우리 가족은 몇 년이나 최선을 다해 슬픔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슬픔을 모두 벗은 지금은 아주 새로운 마음이 든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 소망이 있다며 아멘을 외치던 우리는 사실 '천국 소망'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빠가 아픈 때에 정말 많은 분들이 아빠와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셨다. 아빠를 모르던 분들도 소식을 전해 듣고 응답을 듣기까지 기도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말을 전해왔다. '김낙호, 이 사람이 누구길래 하나님이 이렇게나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나요?'


아빠는 다정했지만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롭게 자랐고 그래서 의지할 줄 모르고 '아버지의 사랑'이 뭔지 몰랐다. 결혼 후 30년 가까이 교회에 가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그에게 의지하는 게 어려워 고군분투했는데, 척추와 뇌에까지 암이 번져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그 순간, 아빠는 세상에 남아 누리고 싶었던 소망과 시간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아빠를 정말로 사랑하셔서 그가 마지막까지 통증을 겪지 않도록 하시고, 하나님을 가장 바라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품에 데려가셨다.

병이 사라지는 것이 간증이 될 수 있다. 그런 간증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나은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우리 아빠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은걸까? 나에겐 하나님이 어떻게 아빠의 영혼을 구원하셨는지,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가 어떻게 배우자의 빈 자리와 딸의 미국행, 아들의 군대로 홀로 남아 외로움을 이겨내고 마음과 신앙을 지켰는지, 동생이 아빠의 부재와 모든 것이 늦춰진 자기 인생을 괴로워하면서도 작은 희망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간 것과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알게 됐는지, 이것이 너무나 큰 은혜다. 병이 나은 뒤 아플 때의 간절한 마음을 잊거나, 가족의 죽음을 겪고 절망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떠나는 일을 많이 봤다. 우리 가족도 그럴 수 있었다. 그만큼 괴로운 일인 걸 나는 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첫 2년은 정말 떠올리기도 괴로울 정도로 길을 잃었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빠를 사랑하셨고 우리 가족을 사랑하셔서 한 사람도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전보다 더 하나님 사랑과 보호를 누리며 살게 하셨다. 아빠를 보내고 네 번째 3월 12일, 이런 마음을 담게 되어 정말로 기쁘다.


특히, 가장 큰 구멍을 메우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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