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세상을 사랑했던, 행동하는 불씨인 몽규는 말한다. 나는 이것을 하는 데에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있어. 위험한 건 내가 할 테니, 너는 시를 써라. 그는 동주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았다. 그림자처럼 살았던 동주는 유약하고 어리지만 그러나 그 누구보다 부끄러움에 직면했던 이다. 그에게 시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시를 썼지만,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고고하게 시를 쓰겠다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눈물을 흘린다. 동시에 몽규는 자신이 제대로 해내지 못해 부끄럽다며 울분을 토한다.
영화 속에서 정지용 시인은 말한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네.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결국은 우리 모두가 부끄러운 사람이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이는 알기에 부끄럽고, 알지 못하는 이는 알지 못하기에 부끄러운 것을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부끄러운 것을 아는 것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몽규를 연기한 배우 박정민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서, 지금 이 인터뷰도 너무 신나서 전날부터 기다렸다. 그런데 <동주>가 지나가고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그러면 나는 또 무엇과 싸워야만 되겠구나 생각하니 복잡 미묘하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은 굉장히 똑똑하다. 인터뷰를 읽는 내내 이 배우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서울대를 나왔다는 말이 아니라, 연기를 대하는 자세와 인물을 이해하는 독해력과 치밀함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졸업식 장면이 애드리브였다니. 그에게 <동주>는 치열한 작품이었다. 하나라도 더 알아서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게 연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며 치열하게 몽규에 대해 공부했다. 그 하나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란 바로 이렇게 행동하는 것 아닐까? 내가 좀 더 노력한 이 하나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부끄럽기에 할 수 있는 하나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잘 될지,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잘 될지 알 수 없었어도 그는 그렇게 했다. 그가 사랑하는 연기와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 그와 같은 인생을 살 수는 없어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몽규처럼 달려드는 것. 그는 그렇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이겨냈다. 그 시간이 지나고, 영화가 잘 되어 관심을 받게 돼도 그가 자만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자신이 현실에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자만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연기한 몽규도 그처럼 복잡 미묘했다. 그는 늘 앞장서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동주에게 도망가자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도 두려웠지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옳은 일을 하며 살아갔다.
영화 내내 동주는 그저 시를 썼다. 그도 일제에 순응하지 않아 머리를 깎이기도 하고, 학생 집단을 만들자며 몽규를 찾으며 나라를 사랑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시를 사랑했다. 그 밤에도 그의 아름답고 순결한 별은 바람에 스치며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는 온갖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했다. 무기력한 자신의 얼굴이 보기 싫어 등을 돌렸다가도 안쓰러워 돌아보는 그 부끄러움과 다정함, 그의 모든 시를 관통하는 순결하고 고집스러운 하나의 주제. 그가 사랑했던 것들은 그의 시 속에 담겨 지금도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준다.
영화는 최선을 다해 그들의 삶으로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른 채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던 그들의 삶 그 자체였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그러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바꾸고 노력한다. 자신을 덮고 있는 세계를 바꾸려 노력한다. 멈추고 좌절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사진 출처는 모두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34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