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얼굴

by 김영지



이번 명절에는 양가 부모님과 동생들 모두 함께 필리핀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명절 기간에 다른 어른들을 뵐 수 없으니 미리 인사를 다녀오려 주중에 시간이 되는 상현이와 막내 동생이 부산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나는 함께 내려가 함께 할머니를 뵙고 이모와 사촌 누나들을 만나고 먼저 올라왔다. 둘은 그 후 삼촌을 만났고 고모를 만나러 갔다. 상현이의 고모는 두 손주를 봐주고 계신다. 고모 댁에서 조카들을 놀아주느라 방전이 된 상현이는 일찍 잠에 들었다. 씻고 일찍 자야겠어, 하고는 금세 잠들었는지 더 이상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상현이는 의외로 일찍 답장을 보냈다. 조카들이 일곱 시부터 뛰어 들어와 아직 잠들어 있는 삼촌 위에 대자로 뻗어 눕고 뛰었다. 삼촌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힘을 쓰면서 다시 충전한다고 했다. 조카들이 깨우더라고, 라는 상현이의 말에 나의 막내 삼촌이 생각났다.


남매 중 아직 결혼 전이던 삼촌은 부모의 집에서 살았다. 서울에 갈 때마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댁에서 잤는데, 이십 대 후반이었던 삼촌은 늘 밤늦게 들어왔고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그 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몸집이 아직 작았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사촌언니와 아침마다 삼촌의 등을 타고 올라가 뛰고 깨지 못하는 삼촌의 머리카락을 땋곤 했다. 게다가 할머니나 엄마는 은근히 우리에게 삼촌을 깨우도록 시켰다. 삼촌 일어나! 소리치며 방방 뛰는 우리에게 삼촌은 등을 밟아달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게 놀이인 줄 알고 삼촌의 등을 밟고 주먹으로 어깨를 쳐줬다.


한참을 그렇게 두드리고 때리다 보면 삼촌은 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삼촌의 머리는 항상 새들이 둥지를 짓지 않고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피곤이 덜 풀린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우리는 삼촌을 깨웠다는 성취감에 와아, 하며 거실로 뛰어나갔다. 삼촌도 지금의 외숙모에게 문자를 보냈겠지. 조카들이 깨우더라고,라고.


그때는 우리가 잠든 뒤에 집에 들어오고 아침에는 늘 누워있고 깨우면 자꾸만 하품하는 삼촌이 엄청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집으로 돌아가며 아빠와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삼촌은 왜 맨날 잠만 자?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어른의 얼굴이었다. 밤늦게까지 과제하고, 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어른들. 어린아이들처럼 아침에 벌떡 일어날 수 없는 어른들. 그러니까 이제는 삼촌의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다.



2019. 1. 31. 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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