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와 같이 있어야 하는 것에 지친 아이였다. 극도로 내성적이었던 성격 탓에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바뀌는 반 때문에 몇 달을 고생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기도 어려웠고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은 쉽게 서로를 배신했다. 사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주 편안한 성격이었는데 학교에서는 혼자 있는 아이들은 이상한 애처럼 보이기 쉬웠다. 그래서 위장을 위해 친구를 사귄 적도 많았다.
그러니 나는 바뀌지 않고 매주 만날 수 있는 교회 친구들과 더 가까웠고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지난 시절을 그리워했다. 익숙했던 교실과 선생님, 이미 그 특징을 파악해서 서로 부딪힐 일이 없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어떤 즐거운 일이라도 생길 때면 그 날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나는 습관처럼 그 즐거웠던 때를 되새겼다. 하루가 지나면 아 어제 이 시간엔 이런 것들을 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면 아 지난주 이 때는 이런 것들을 하고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나면 아 지난달 이 때는 이런 것들을 하고 있었는데, 하고.
대학에 가며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며 학교를 너무나 싫어했다. 모든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떤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표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고 정해진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대학에 오니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이 있었지만 적어도 어떤 선생에게 배울지는 내가 고를 수 있었다. 정해진 답을 찾아야 하는 학문도 있었지만 나의 생각과 의견을 더 궁금해하는 학문도 있었다.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동기가 확실하면 감시자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별로 마음이 통하지도 않는 친구와 억지로 친해지지 않아도 됐고 비슷한 노력을 해서 모인 아이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노력하고 열중하며 살기에 대체로 마음이 잘 맞았다. 대학생의 삶이란 너무나 즐거워서 2학년이 되자 나는 이런 말도 했다. "이러다 졸업하겠어!" 학교를 떠나는 게 벌써 아쉬울 정도로 나는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어느 때를 그리워하지 않고 있었다. 나에게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었다. 해야 할 일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으며 집중해야 할 것도 많았다. 매일을 충실히 사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부족한 돈과 시간을 알뜰히 아껴가며 살았다. 달력은 과제와 시험, 동아리와 봉사 활동, 알바 일정으로 빽빽했고 매달 읽을 책과 볼 영화와 연극 목록을 새로 적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의 취향과 성향을 알아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일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렇게 찾은 것들로 나는 내 삶을 꾸려갔다. 돈이 되지 않아도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했고 대안 학교에서는 적은 돈을 받으며 넘치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즐거우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혼은 내 인생 계획에 없었지만 가진 것이 적어도 서로의 가치관이 맞는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그리고 힘을 합쳐 학자금을 갚고 우리의 집을 꾸렸다. 중대한 결정들을 지나오며 내 삶은 조금씩 가지 쳐지고 단순해졌다. 점점 더 고민할 것이 적어졌고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기회가 왔다.
그러다가 아빠의 죽음이 찾아왔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지난 일 년간 나는 끝없이 과거를 그리워했다. 그때 아빠를 말렸어야 하는데, 그때 그 방사선 치료를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때 그 의사가 권했던 약을 반대했어야 하는데. 나는 끝없이 과거로 돌아갔다. 일터에서도, 자려고 누운 자리에서도, 차 안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아빠를 만나려 준비했던 그 어떤 곳에서든 나는 과거로 돌아갔다. 밥도 맛이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매일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나는 점점 약해져 이제 방문을 나서는 것이 귀찮을 지경이 되었다. 억지로 출근해서 밝은 얼굴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집에 돌아오며 울었다. 서로가 불편해질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망설여졌다. 밤이면 곁에 누워 남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거실로 나와 새벽까지 울었다. 너무 지쳐서 더 울 수도 없게 되면 드디어 잠이 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이란 삶보다 죽음이 더 쉽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안쓰러워하고 혼내고 지켜봤다. 살며 처음 겪는 고통으로 우리는 어떤 오해도 하고 어떤 마음은 숨겼다. 시간이 지나 서로가 그 마음을 털어놓게 되기까지 우리는 각자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는 내가 운동하도록 했고 잘 먹는지 감시했다. 동기가 부족하니 다시 감시자가 필요해졌다. 그렇게 나는 잘 먹고 건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몇 달을 보냈다.
몸이 조금씩 건강해지니 마음도 같이 변했다. 빨래 한 번 널고도 누워서 쉬어야 했던 나는 점점 많은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다시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며 말라비틀어졌던 내 마음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집을 깨끗이 하고 철마다 바뀌는 풍경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더 건강해져서 나의 것을 만들고 그래서 아빠의 시집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고 다시 꿈꾸게 됐다. 여전히 아빠가 그립지만 죽음은 덜 생각하게 됐다.
오늘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햇볕이 따뜻했다. 앞사람이 창문을 열어 봄바람이 들어왔다. 문득 생각했다. 다시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네 번의 계절이 지났다.
늘 최선을 다하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지난 때를 그리워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삶.
나는 지금이 좋고 내 인생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