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감동이라면 얼마나 기쁠까

003. 내 머리는 아직 무거운데 너는 빈 하늘

by 공글

내 머리는 아직 무거운데 너는 빈 하늘,

추억을 못으로 박제하고 떠났다.


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시 단위의 농촌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걸어 다녔는데 당시 어린이의 걸음으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학교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생에게 15분의 시간은 지금의 1시간과 같아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지루함을 이겨내며 걸어갔다. 농촌의 여느길이 그러하듯이 주변에는 이름 모를 풀들과 꽃들이 계절에 따라 그리고 아침과 저녁을 바꿔가며 피고 지었다. 나는 농촌에 살았었지만 풀과 꽃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대게는 이름을 몰랐지만 그래도 민들레는 알았다. 걸어다니던 길 주변에 보면 노란 꽃, 하얀 꽃이 보통 무리를 지어 피었고 머리가 하얗게 된 민들레 홀씨가 날릴 계절이 되면 나는 여러 송이의 민들레를 후두둑 뽑아 내어 불어 대고는 했다. 무료한 집에 오는 농촌길에 민들레 꼼꼼히 불어 오다 보면 10분은 금방 지나갔다. 나름의 배려이자 의무(?)로 바람에 쉬이 날리지 못한 민들레 홀씨를 대신 여기저기 날려주며 뿌듯해하곤 하는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민들레 군락지에 바람이 불면 보통은 다 같이 날라가기에 하나만 홀씨가 달려 있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얼마전 비가 오는 퇴근길 돌계단 틈에 나란히 핀 두 송이의 민들레를 봤다. 하나는 홀씨가 다 날라가서 머리만 대롱대롱 달려 있었고 다른 하나는 홀씨를 아직 머리에 인 채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좁은 돌계단 틈에 두 송이 민들레는 그렇게 피어 있었다. 어쩌다 홀씨 두 개가 여기에 떨어졌고 아웅다웅 하며 보이지 않는 땅 속 뿌리를 치고 박으며 서로 싸우기도 했을 것이고 이파리로는 서로를 가려주기도 하며 그렇게 꽃까지 피워냈을텐데 하나는 여기에 아직 그대로 있고 다른 하나는 미련을 훌훌 털어 버린 것처럼 빈 머리는 이제 돌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떠나간 인연은 이제 모든 미련을 털어내고 홀씨가 되어 날아갔다. 남은 민들레는 여전히 바람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그의 바람은 오지 않았나 보다. 함께할 줄 알았던 인연은 이제 빈 줄기만 가득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함께 바라보던 하늘에 추억을 홀씨 같은 못으로 고정한다. 남겨진 민들레는 빈 하늘의 유유히 흘러가는 홀씨를 바라보며 지나간 추억이 하늘에 고정된 액자속에 떠오르며 바람을 기다리고 있겠다.



그대가 떠난 자리

추적추적 내리는 그리움을

민들레는 잘도 먹고 자랐다.


내 머리는 아직 무거운데

너는 빈 하늘,

추억을 못으로

박제하고 떠났다.


노란 꽃에 곁들여진 푸른 이파리

계절의 끝에 허옇게 시듦을

홀씨 때 우리는 알았을까


번뇌 가득한

민들레 하나

어디서 올지 모를

바람 바라며 서 있다.



MEMO: 저 스스로의 어떤 인간적 경험보다는 그저 민들레 두 송이가 핀 풍경과 감동. 어떤 만남과 이별, 비단 연인 사이뿐만이 아닌 일반적인 인연관계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어느샌가 그 민들레도 날아갈겁니다. 그곳에서 머리에 홀씨를 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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