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전에: 제목의 의미와 형식에 대하여
연필로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나는 뭉툭한 연필로도 사진을 한 장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렌즈를 조금 돌리면 카메라의 셀프 모드에 비치는 내 모습 보다 더 깊은 내면을 찍어 볼 수도 있다. 물론, 그 사진이 X-RAY 사진처럼 종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순간적인 번뜩임과 감상은 종이에 남길 수 있다. 머리를 번뜩이는 기발한 생각이나 갑작스러운 슬픈 감정 혹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나 역겨움 등은 휘발성이 강한 순간의 감정이다. 안타깝게도 그 몇 초 혹은 몇 십초의 시간이 지나면 순간의 감정은 희석되어 나중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래서 순간적인 사진을 찍어서 남겨두려고 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잘 찍으면 더 없이 좋겠지만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소수며,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저 ‘찍는다’.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며 그 행위를 통해 순간을 남기려고 한다. 카메라를 돌려 찍기, 직각 혹은 수평의 구도로 찍기, 색감 조정하기 등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런 기술들의 기본은 찍는다는 행위 그 자체이다. 단순하지만 일단은 ‘찍은’(?) 사진들은 의도적으로 지우지 않는 이상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잘 남아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더 아름답게 찍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찍어둔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들린 사진일지언정 남겨놓지 않았으며 그곳에 갔다는 사실조차 나에게는 없었을지 모를 기억이기 때문이다. 흔들린 사진에 나타나는 꼬리를 무는 기억들은 사진 너머의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내고 앨범에 넣어놓을 수 있게 한다. 순간적인 글쓰기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짧은 순간에도 서론과 본문, 결론을 짜임새 있게 쓰고 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가미하여 쓴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글이 탄생하겠는가?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잘 쓰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순간적인 메모조차도 머뭇거린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름다운 노을이나 4월의 벚꽃, 번개가 치는 순간을 볼 때 구도와 색감 등을 고려하여 사진을 찍을까? 그렇게 찍으면 더 아름다운 사진이 탄생하겠지만 일단은 셔터를 누른다. 조금은 흔들린 사진, 조금은 더 평범한 사진들이 그렇게 찍히고 앨범에 저장된다. 그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들은 안타깝게도 살아남지 못하고 휴지통으로 지워지겠지만 그럼에도 찍는 행위 그 자체로 인해 무언가 남았다. 아쉬움이 남았을 수도 있고 추억이 남았을 수도 있다. 조금은 부족한 사진이 지운다는 것을 까먹은 채 남아있을 수도 있고 보정이 잘 된 사진이 앨범을 장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일단은 찍어보자. 그때는 슬펐구나, 그때는 기뻤지 하는 사진들이다. 우리가 어릴 적 옛 앨범의 우스꽝스러운 사진들을 보고 잘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보다는 아 이때 이랬구나, 하는 감사와 즐거움이 먼저 나오지 않는가
고등학교때 문학시간을 좋아했고 그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같은 활자에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고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정말 흥미로웠다. 같은 모양의 텍스트지만 보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산출값이 다르다는 것은 수학적 감성과는 다른 문학만의 넓은 열린 결말이 참으로 맘에 들었다. 이 과정에서 정답은 없었다. 너의 의견 또한 옳고 나의 해석 또한 옳다. 그런 폭넓은 이해와 생각이 더욱 좋았다. 그래서 글을 끄적이며 어떨 때는 감정을 그저 토해낼 때도 있었으며 어떨때는 단어 하나하나에 나의 의도를 담아보고자 시도한 적도 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끄적여온 메모가 수백편이 되었고 개중에는 시를 흉내낸 것들도 있고(거의 대다수이다.)산문 형식으로 글을 끄적인 것도 있으며, 한 줄 ~ 두 줄 정도의 메모를 통해 당시의 감정이나 생각을 남겨 놓은 것도 있었다. 그런 메모들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나 감정이 온전히 전해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잔향은 남아있어 그 향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조금은 낡고 조금은 흔들린 사진들이 이제 여기있다. 부족한 사진을 꺼내놓는다는 자체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기억의 단편이니 어쩌겠는가 부족한 대로 나오는 오래된 나무 향 또한 좋다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아름다운 구도가 보이면 그저 찍을 뿐 더욱 아름답게 찍지는 못한다. 사진 기술을 배우고 찍으면 더 아름답게 찍을지언대 그러지 못함은 게으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린 사진일지언정 남겨둠이 좋으니까, 사진 기술은 천천히 배워가면 족하니까. 나의 글쓰기도 이와 같아서 잘 읽히지 아니할 수 있고 유려하지도 않다. 전문적인 시인이나 소설가와 같은 문학가도 아니며 기자나 작가도 아니다. 그저 아침 9시에 회사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을 기다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끄적인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20대는 단편의 흩어진 조각들이 될 테지만 이런 메모들은 나의 삶을 하나의 흩어진 퍼즐이 아닌 무성영화로 혹은 흑백영화로 만들어 준다. 지나간 무수한 기억들속에 오늘 아침의 일처럼, 어제의 특별한 사건처럼 뚜렷하게 나오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흐릿하지만 지지직 되는 라디오 소리처럼 송출되는 그런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생각보다 평범한 나날이었다고 생각한 나의 삶은 조금은 더 역동적이었으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어제는 나름대로 끄적인 증거들 속에 의미 있는 하루로 기억된다. 아름다운 해를 보며 밝은 해를 노래하는 메모를 남긴다. 일이 힘들었던 날에는 버스에 올라 우울을 글로 토해낸다. 그렇게 앨범은 완성되지는 않을지언정 채워져 간다. 그렇게 조금 채워진 허름한 앨범, 그것을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