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활동을 그만두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적절한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실업급여가 끝나고 모아놓은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후 청년재단 일경험지원사업으로 시작하게 된 6개월 남짓한 시민단체 활동기간이 끝나가는 시기도 있었다. 계약이 끝나면 딱 서른이 되는 시점이라 불안정하게 활동하기도 지쳤고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영 활동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제적문제와 더불어 활동영역에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작고 힘없는 존재인지 알았고 바꾸기 힘들 것 같은 사회에 부정한 모습에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모순적인 모습과 몇몇 활동가에게서 보이는 실망스러운 모습에 적잖은 회의감마저 생겨 ‘내가 이러자고 활동하는 건가’라는 말을 습관처럼 나왔다. 활동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만큼 활동가로 살아가기 힘든 이유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활동가란 무엇일까. 뭐 사전적 의미로야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나 개선을 위하여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삶이란 건 늘 사전적 정의로 명확하게 규정되는 게 아니니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사실 ‘활동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불안’이다. ‘위태로움’이기도 하고, 활동가도 사람인지라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회의 정의와 도덕을 스스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경제적 문제는 말 할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 다음 떠오르는 단어와 문장은 ‘버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인데 사실 앞선 단어들 모두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건 작년이 처음은 아니다. 스물다섯쯤 나는 갑작스럽게 활동을 끝내겠다 선언한 적 있었다. 당시 미군부대 작은 식당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미군부대 경비직으로 이직을 할 때였고 군무원에 관심이 생길 때였다. 사실상 미군부대 군무원이 되는 건 암암리에는 든든한 뒷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해서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래도 방법이 있다며 비록 경비직은 아웃소싱이지만 공부하고 경험 쌓기 에 좋고 경비직으로 시작해서 군무원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시작해보라며 소개시켜 주었다. 단, 야간근무가 격일로 있어서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은 못 할 거고 그런 거 보다 조금 더 미래를 위한 일에 투자를 하라며 덧붙이기도 했다.
제안은 받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활동이 즐겁긴 하지만 무급에다 오히려 돈을 쓰면서 하는 활동이었고 또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활용해 활동을 해야 하는데 야간근무와 주말에 일을 하게 되면 당연히 활동은 못 할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긴 하지만 당시 통일관련 활동을 하고 있었던 터라 미군부대 일을 꾸준히 하면 언젠가 활동과 부딪히는 지점이 올 수밖에 없겠다고 말이다.
그때도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생계문제와 미래를 이유로 그만두고자 했는데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활동종료를 선언한 그때쯤 참석한 전국 활동가 송년회 모임에서 한 지역 활동가와 선생님의 문답 때문이었다. 한 지역 활동가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길만 걸으시며 살아온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는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버티다보면 길이 보이고 방법이 생길 겁니다. 일단 버텨보세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됩니다.”
사실 흔한 이야기지만 그때 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이야기였다.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고자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가끔 그 말을 떠올리면 울컥하는데 지금의 존경 받는 선생님의 모습 역시 그 버팀의 결과였을 테니 말이다. 그때 결심했다. 야간근무든 주말근무든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고. 선생님 말씀처럼 일단 버텨보자고. 하지만 나의 결심과 무관하게 입사하고 보니 근무스케줄은 서로 교대가 가능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어 근무환경은 사실 활동에 크게 지장이 없었다. 사장님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거였다.
작년 역시 활동을 그만두고자 마음먹었을 때, 신년을 맞이해 재미삼아 사주를 보러 간 철학관에서였다. 철학관 선생님은 내게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꼭 버티라고. 버티고 버티다보면 후에는 정말 잘 될 거라고 했다. 사주 이야기야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 스물다섯에 나를 붙잡았던 말을 다시 들으니 신기했다. 정말로 버텼을 때 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말들을 의지 삼고 핑계 삼아 버텨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삶이 불안하니 뭐 하나 위안 받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으니 말이다.
스물다섯은 취업문제로 활동을 접고자 했고 서른에는 경제적 문제와 활동에 대한 회의감으로 접고자 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요즘은 더 버텨보자는 마음이다. 끝을 보고 싶기도 하고, 활동을 떠난 삶을 잘 살아낼 자신도 없어서기도 하다. 가끔 버티는 삶이 억울하고 비참해져 때려 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이러다 정말 때려 치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여기까지 버텼으니 끝내는 버팀의 답을 찾아내 보고 싶다.
우리는 버텨야 합니다.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어느 누가 손가락질하고 비웃더라도, 우리는 버티고 버티어 끝내 버티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야만 합니다. 제 인생이 닳고 닳아 한줌의 비웃음밖에 사지 않더라도 끝내 그거 하나만은 챙기고 싶습니다. 그래도 쟤 꽤 오래 버텼다, 라는 말 말입니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허지웅 - 버티는 삶에 관하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