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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Sep 02. 2021

앞자린 바뀐 청년활동가

변화가 필요할 때

언젠가 청년활동을 하는 동료로부터 방송 출연을 제안 받은 적 있었다. 주제는 진짜 이십 대청년이 말하는 공정, 젠더의 이슈였다. 언론과 사회로부터 고소득, 서울 지역, 고학력 청년의 청년 담론만이 주로 거론되고 있으니 지역에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는 게 취지였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출연대상이 이십 대여야 한다는 말에, 만 나이로 따지면 나도 아직 이십 대인데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고 좋은 기회일 거 같아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 술기운이 사라지고 나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전화를 걸어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방송에서 원하는 대상도 아닌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제 나의 이야기와 지금 이십 대들의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넘어오니 이제 ‘청년 당사자’로서만 활동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나의 이야기’와 ‘내 주변 이야기’로만 활동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학생이 아니고, 취업준비생도 아니고,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도, 독립을 준비하는 사람도 아니다. 운 좋게 전셋집을 구해 지금 ‘당장’은 주거에 대한 불안은 없다.      

대학생이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아웃소싱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했던 나의 ‘이십 대’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 일자리가 안정성이 있거나, 소득이 높거나, 주거가 안정됐거나, 삶의 전반적인 부분이 다른 이들에 비해 낫다고도 할 수 없다. 여전히 청년 문제를 겪어내는 중이지만 나 같은 삼십 대의 이야기는 궁금해하지도 찾는 이도 없다. 삼십 대의 이야기보다 이십 대의 이야기가 더 임팩트가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과거 대학생이었던 내 이야기보다 코로나19를 겪어내는 현재 대학생의 이야기가 더 와닿지 않겠는가.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넘어 온 청년 활동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용히 사라져야 할까, 아니면 겪어본 일에 대한 조언과 충고를 일삼아야 할까.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나쁜 방법이 아니겠다. 다만, 남아있겠다 결정하면 삼십 대부터는 진짜 역량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싶다. 이십 대에 얻을 수 있었던 기회를 통해 쌓았던 경험으로 말이다. 이제 이십 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닌,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이야기를 더 꼼꼼하게 듣고 대변하며 세심하게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 시기다. 실수라도 하게 되면 더는 ‘어리니까 그럴 수 있어’라는 건 통하지 않는다. 삼십 대 청년 활동가는 그래서 힘든 것 같다. 청년기본법상 만 35세까지 청년이라지만 청년이라고 똑같은 청년이 아니다. 사회 통념상 바라는 기대도 있고 무엇보다 청년 안에서도 세대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이십 대 청년 활동가를 만나면, 어떤 기회든 많이 잡아서 해보라고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그때 많이 하고 경험을 쌓아야만 자산이 된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꼰대가 따로 없구나’ 하며 자책하게 된다. 정작 스스로는 기회를 많이 잡았으면서도 이렇다 할 역량은 쌓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십 대를 지나 어느덧 삼십 대 활동가가 되었다. 청년활동가로 살아남기.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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