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레고가 궁금하다면 스크롤을 맨 아래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는 재료가 들어간 삼각김밥’을 제공할 것이라 답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필요는 ‘맛있는 재료’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삼각김밥의 주 고객은 소풍을 가는 어린이 었다. 소풍을 갈 때면 언제나 아침에 챙긴 삼각김밥은 점심이 돼 서야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 입맛에 맞춘 영양가 있는 재료를 사용하였더라도 밥에 늘러 붙은 김이 쉽게 눅눅해질수록 맛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삼각김밥 업체도 아닌 아들의 불만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던 한 아버지였다.
그는 아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였다. 그리고 결국 포장지 중간에 빨간 띠를 잡고 한 바퀴를 돌려 떼어낸 후 양쪽을 잡아당기면 분리되어 있던 김과 밥이 붙게 되는 포장 기법을 고안해낼 수 있었다. 맛이라는 본질의 문제가 자연히 포장이라는 문제로 파생된 것이다. 물론 삼각김밥을 만드는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포장이 별개의 문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김밥을 사서 먹는 그 ‘모든 과정’을 소비의 목적과 연관 지어 고민한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포장이 되어 있는가, 이것 역시 소비자의 구매 동기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여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것 까지가 판매자의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같은 시각이 필요하다.
덴마크 빌룬트의 작은 목공소를 운영하던 창업자 올레는 최초로 플라스틱 블록을 개발해낸다. 이후 품질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다양한 시리즈를 출시한 끝에 장난감 시장에서 단단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나아가 덴마크에 지은 테마파크까지 흥행하면서 대성공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자 비디오와 PC게임이 새로운 놀이문화로 주목받게 되었고 당시 경쟁사들은 주로 PC 패키지 게임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결과 게임 산업에서는 기술 대체와 혁신이 변화 대응에 필수적인 것처럼 여겨졌다. 다수의 기업들은 짧은 시간 내에 더욱 발전되고 트렌드 한 형태의 신제품을 앞다투어 출시하였다. 레고 역시 특허까지 받은 제조 능력으로 경쟁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었음에도, 빠르게 변해가는 트렌드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차별화와 노하우 확보 면에서 불리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레고는 전통적인 장난감으로 분류되는 블록의 한계점을 넘어서기 위해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놀이 문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혁신과 기술 대체’라는 데 초점을 두고 재기를 위한 도전에 나섰다. 레고는 단 몇 년 만에 영국, 독일, 미국에 테마파크를 개장하였고, 새롭게 생겨나기 시작한 소프트웨어, 미디어 사업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레고의 다각화 사업 진출과 테마파크의 확장 노력에도 오히려 이전보다 매출은 급감하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레고가 쌓아온 공든 블록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의 문제까지 닥치며 레고는 당장 내일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레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무엇이 잘 못된 것일까?
쇠퇴기에 접어든 레고가 간과하는 것은 바로 외부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는 것이다. 레고는 온라인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자연히 전통적인 장난감 시장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래서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놀이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레고가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해결 PROCESS를 예상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왜 실패한 걸까?>
레고는 오프라인 놀이법이다. -> 온라인 게임이 늘어나고 있다. -> 그래서 아이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원한다. -> 뜨고 있는 산업과 결합하여 신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원한다는 분석은 레고의 큰 착각이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트렌드를 쫓아가기 바쁜 혁신에 빠져버린 채 실질적 수요자의 입장을 간과한 것이다.
레고는 다시 첫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려웠다. 하지만 레고는 단호한 결정으로 기존에 벌려 놓았던 모든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첫 출발점에 섰다. 레고의 출발점은 바로 ‘업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놀이’라는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소비자로부터 ‘놀이’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를 먼저 파악해 내야 했다. 그렇기에 레고는 소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소비자의 곁에서 그들의 행동과 언어를 직접 관찰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깊이 탐색해 나갔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레고 직원들 스스로가 소비자를 탐독해내는 인류학자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레고는 고객의 문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구매자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고민이 될 수 있는 문제점까지 폭넓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레고의 실질적 소비자인 부모가 갖는 문제는 바로 아이들이 너무 놀이에만 빠지는 것은 아닌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이들에게 레고는 놀이다. 하지만 한참 놀고 난 이후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놀이는 공부와 상충되는 영역이었다. 놀이를 제공해줌으로써 아이들의 즐거움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놀고 난 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즉 레고는 놀이 이후에 딸려오는 공부에 대한 영역에서도 소비자들의 염려를 줄여 줄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레고는 주요 고객층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장난감을 주고 특성, 행동, 감정의 모든 부분들을 입체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레고의 힘을 빌려 레고를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수단'으로 발전시켜 소비자에게 다시 다가섰다. 그 결과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게 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의 영역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고든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의 니즈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따라 레고를 '즐거움 + 학습 + 창의'로 정립하여 명확한 구매 동기를 쥐어 주었다 할 수 있다. 나아가 재정립한 레고의 정의를 활용해 어른들의 '역량을 기르는 방법론'으로 확대하여 새로운 타깃까지 공략할 수 있었다. 이 뿐 아니라 레고 본연의 특징은 다각화 사업을 통합하는 핵심으로 작용해 하나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요즘에도 어린이집에는 레고가 꼭 하나씩은 비치해 있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 워크숍에서도 자기표현을 위한 교육용 자료로 레고를 이용하기도 한다. 레고는 분명 ‘놀이, 그 즐거움’에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놀이라는 즐거움’을 지루했던 ‘학습’의 영역으로 끌어드려 레고를 소비하는 전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한 문제들을 모두 풀어냈다.
이처럼 레고는 기업의 성장 적 관점이 아닌 ‘업의 본질’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그 업과 관련된 소비자의 행동을 전방위적으로 관찰한 끝에 소비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소비자에게 있어 물건 구매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구매한 제품을 통해 해결되어 지기를 바라는 것이 불변한 소비자의 심리다. 구매, 사용 그리고 사용 이후의 전 과정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사소한 불편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만약 지금 당신의 기업이 흔들리고 있다면, 소비자를 면밀하게 헤집어 볼 수 있는 ‘인류학자’의 관점이 필요한 때다.
이만, 레고 분석 마침.
.
.
이 아니고, 저와 제 친구가 공들여 만든 레고를 투척! 합니다.
레고가 저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으신다면, 저희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많지 않죠. 대부분 시켜서 하거나.. 그런데 그 와중에 레고 그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를 모아서, 내 손으로 뭔가 대단해 보이는 '건축물, 로봇, 나무' 등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다 완성하고 난 뒤에는 뿌듯함을 넘어서 제가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자신감이 뿜 뿜 해지죠. 그래서 좋아해요 레고를. 저를 대단한 사람처럼 만들어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