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부랴부랴 L언니 핸드폰을 확인했다. 언니는 태연했지만 나는 눈이 퀭했다. 전날 바닷물에 젖은 L언니의 신형 갤럭시가 안 되면 나는 방콕가서 샘송 대리점을 찾아가야 했으며, 사진을 찍지 못할 L언니에게 미안해서 돌아버릴 예정이었다. 나와는 달리 너무 태연했던 이태연 언니는 핸드폰이 된다며 환하게 웃으셨고, 지금까지 그녀의 핸드폰은 이상무다. 내가 평온하게 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세상 아름다운 곳, 유파타야는 아침 풍경 역시 놀라웠다. 저녁 늦게 체크인해서 주변이 잘 안보였는데 눈 뜨자마자 드는 생각은 '공간 설계를 어떻게 했을까'. 독채 숙소의 수영장 풍경부터 대문을 열고 나와 조식먹으러 나가는 길목까지. 사람 마음을 미친듯이 들뜨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수영장과 바다, 옆으로 쫙 깔린 나무들과 음식 냄새까지. 퍼펙트한 아침이었다.
걸어서 30초 거리의 식당 앞. 공간 통일성, 브랜딩에 대해 요새 많이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어떤 호텔도 이런 느낌은 구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시사철 푸를 수 없는 우리나라 기후 특성상 사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숙박 어플에 올라오는 사진과 철저하게 망가져버린 숙소들을 떠올려보면, 유파타야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플러스. 직원들 모두가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게 느껴졌다. 전날 저녁에 체크인하느라 앞이 잘 보이지도 않고 길이 울퉁불퉁해서 캐리어 끌기가 힘들때 친히 가져다 주셨다. 이런걸 두고 서비스의 기본이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객이 많은 숙소의 경우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대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서 몇 번이나 물어보고 다녔는데 친절하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공간을 이용하는 나같은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공간을 아껴쓰게 만들만큼 아름답기 때문에. 아마 올해 가도 똑같은 상태일 거라 확신한다. (아님 어떻게 하지)
조식 클래스도 자랑 한 번 해야겠다. 전날 저녁부터 열심히 준비하시길래 진짜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소리지를뻔했습니다. 모든 음식이 다, 전부 신선할 수는 없는데, 여긴 정말 모든 채소며 과일이며 오늘 수확한 것처럼 신선했다. 심지어 화장실도 예쁘고 깨끗. 커피마저 진짜 맛있다. 정말 한 달은 묵어보고 싶은 넘버원 숙소!
배부르게 먹고 수영까지 다 하고 주변 비어있는 숙소들도 봤는데 역시나 근사했다. 독채도 좋지만 (애초 우리는 객실 예약을 했지만 체크인을 늦게 해서 업그레이드해주셨다) 다음에 갈 때는 객실에도 묵어보고 싶다. 객실에서는 저 너머의 바다까지 훤히 보이고 욕조도 따로 있다. 체크아웃하면서 아쉬움에 계속 뒤돌아보던 중 택시가 왔고 우리는 방콕으로 부랴부랴 이동했다. 사실 전날 오시기로 한 기사님이 아니어서 우리를 찍어간 사진까지 다 확인하고 난리가 났었다. 후훗. 근데 그 기사님보다 더 좋았지. 가는 내내 팝송 틀어주시고 운전도 부드럽게 하셨다.
이렇게 회고하는 여행이 벌써 7개월 전이다. 요즘 상태가 별로여서 무언가를 쓴다는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릴없이 무기력하다가도 사진첩을 무진장 끌어올려서라도 봤던게 바로 태국에서 머무르는 동안 찍었던 사진과 영상들이었다. 왜 일까. 단순하다. 내 버킷리스트가 '태국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매 끼니 똠얌꿍 먹기'였다. 사실 저렇게 아름다웠던 파탸야 숙소 역시 다 떠나서 똠얌꿍 장인으로 기억한다.
지난 day1에서는 장난스럽게 썼지만 진심으로 '매 끼니 똠얌꿍 먹기'가 버킷리스트가 맞다. 인간이 너무 힘들면 뭔가에 미친듯이 집착하게 되는데,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음식에는 더더욱 목을 매게 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똠얌꿍이었던 거다. 여기에다만 쓰지만 시시껄렁하고 헐랭한 나는 그만큼 터놓지 못한 우울함으로 가득한 다크한 인간이다. 똠얌 타령의 이면에 숨겨진 나의 마음을 이해해준 친구들 덕분에 내 버킷리스트는 day2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두 번째 숙소는 이 곳인데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콕 시내는 교통이 미친듯이 안 좋다. 한적한 파타야에서 왔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차도 많고 끼어들기도 많고 각종 오토바이 개조 차량들(툭툭 등)과 섞여서 난리난리 생난리다. 파타야에서 방콕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시내에서 30분은 잡아먹은것 같다.
호텔 체크인 전이라 바로 점심부터 먹으러 갔는데 역시 똠얌 맛집인 노스이스트였다. 주민들이 많이 올 만큼 유명하다고 했는데 역시나 사람이 바글바글. 하지만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서 여기가 뭄알로이인지 노스이스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맛은 역시나 퍼펙트했고요.
뿌빳퐁커리나 모닝글로리는 한국과 굉장히 유사했는데, 똠얌은 좀 더 걸쭉하고 새콤했다. 한국과는 다른 깊이있는 새콤함인데 이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비슷한 똠얌을 찾자면 역시나 뭄알로이. 뭄알로이 찬양하라.
자 이제 배부르게 먹었으니 마사지를 받으러 가봅시다. 여기 가기 전에 그랩을 잡아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오질 않아서 그냥 아무 택시나 잡아 탔다. 오아시스 스파가 두 곳이라 조큼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도착. 여긴 또 왜 이렇게 예쁜 건지. 들어서기 전부터 사진 찍느라 정신 없었다.
오자마자 얼린 과일과 차를 내어주셨는데 이태연 언니는 이 컵에 꽂혀서 day3에서 이 컵을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얼린 과일에 이가 시리긴 했지만 게 눈 감추듯 먹었고, 차도 물처럼 호로록 마셔버렸다. 더위에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마사지 강도는 세게 해도 될 것 같았고, 진짜 묘한 향이 나는 뜨끈한 오일로 여독을 풀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다시 호텔로 고고씽했다지? 루프탑 시간에 맞춰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