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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이 Sep 01. 2019

누구도,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를 응원하며

은유 작가의 인터뷰집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뉴스들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그 부모들의 비명과 울음을 차분하고, 정직하게 기록한 글이다.


세상은, 죽어야만 바뀐다고?

수십, 수백, 수천명이 죽어도 여전히 크레인에서 사람은 떨어진다. 건설용 엘리베이터는 추락하고, 중장비는 넘어져 사람을 덮친다. 비정한 세상에 못이겨 생을 던지기도 한다. 이들의 죽음은 감기가 유행일것이라는, 혹은 유례없는 폭염이 덮칠 것이라는 하나마나한 전망만큼이나 너무나 익숙해졌다.


가난한 죽음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익숙함 너머에는 한 세계의 상실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엄마와 아빠를 잃고, 어떤 자는 자식을 잃고 영혼 하나를 떼어준 심정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온 몸을 던진 투쟁이 무색하리만큼 지금 이 세계와 시대의 노동은 점점 더 비루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래전인 1988년 7월 2일,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문송면 군이 수은중독으로 숨졌을 때의 나이가 고작 15살.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비슷한 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김우창 고려대 교수는 “의식주가 풍족해졌지만 그것을 얻는 방법은 빈궁한 시대에서보다 더 가혹한 것이 되었다”고 했다. 절대적인 빈곤이 세상을 뒤덮었을때는 함께 싸워 쟁취할 것이 있었으나, 입에 풀칠은 하는 세상에서는 그놈의 '노오력', '네 탓'만 하기 바쁜 세상이 되었다. 이 사회의 허리는 두꺼워졌을지 모르나 그 허리가 머리를 바라보고 머리는 허리만 바라보는 세상에서 팔다리는 곧 떨어질듯 말듯 간당간당하기만 하다.


그 팔다리가 되는 이들은 누굴까. 비가시화된 사람들, 세상이 설정한 디폴트값에서 멀어진 사람들일 것이다. 빈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에서 ‘보이지 않는 삶’을 말한다.


고등학생의 7-80%가 대학에 간다며 입시제도에 눈이 뒤집혀있는동안 2-30%의 아이들은 들리지 않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다. 부모를 생각해서 사회생활을 택한 아이들, 혹은 꿈을 향해 마이스터고를 진학한 아이들의 삶은 죽음으로만 가시화된다.

그동안 거리에서 장애인을 못 봤다면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서 그렇듯이, 지금까지 성폭력피해자를 못 봤다면 그런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말해도 들어주는 사회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듯, 특성화고 학생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된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란 곧 전부 수능을 치는 예비 수험색으로 여기는 식이다.

게다가 특성화고 학생은 '현장실습생의 죽음'같은 기사를 통해서만 불우한 존재로 납작하게 재현된다. 매스컴에 의해 반복적으로 호명되면서 그들이 처한 부당한 상황은 그들 삶의 기본값처럼 인식된다. 원래 불우했으니 계속 불우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저지르는 무지와 무관심은 이렇게 폭력의 구조를 공고히 한다. '특성화고 학생'이나 '현장실습생'이라는 분류 코드의 구성원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우리 공동체에서 진지하게 시도되지 못했다. p11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노동문제에 대한 터부시, 산재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 강약약강의 비열한 태도. 어른들이 짜둔 판에서 가장 여린 아이들은 죽음을 택한다. 일을 그만두면 끝날 일이란 말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노골적인 폭력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중단하란 말도, 아니면 그 현장을 벗어나기조차 쉽지 않다.


“저때만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몽둥이로 때렸어요. 중학교 때 칠판지우개로 칠판 앞에서 장난쳤다고 선생님이 제 친구랑 제 얼굴을 주먹으로 심하게 때렸어요. 저는 얼굴에 심한 충격을 느꼈지만 다음날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친구는 뺨 전체가 곪아서 심하게 부어올랐어요. 선생님이 그 친구한테 다가와서 이러시더라고요. 그러기에 왜 칠판지우개 갖고 앞에서 노느냐고. 그때는 그런게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폭력 안에 놓여있어요. 일상적인 폭력이 수많은 종류로 뻗어있어서 온갖 죽음으로 발현되고 외로움으로 발현돼요. 우리가 얼마나 무뎌져있는지조차 모르는 거예요. 이게 이 사건의 본질 중 하나예요.” _ 김동준 군의 산재 인정을 이끌어낸 노무사


빈틈이 채워지지 않는 폭력성이 일상적으로 우리 삶을 얼마나 누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식해야 해요.

고등학생 시절, 화장을 지우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날 분노가 들끓어오른 선생님은 그 친구의 볼을, 바짝 마른 걸레로 박박 문질렀다. 화장이 아닌 피부를 벗기려는 듯, 자기 분에 못이긴 몸부림이었다. 당사자를 포함해 불합리한 상황에 소리질러 저항한 이는 물론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 그때는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느 세상 한 곳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극단적인 곳으로 내몰릴 것이다. 우리 삶을 짓누르는 이 폭력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 폭력에 대항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함께 싸워주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죽음은 또 다시 되풀이 되고야 말 것이다.


그나마 희망을 품어보는 건 선배의 죽음을 보고 스스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고등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는 마스크 한 장 없이 진행되는 납땜 실습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교육부의 현장 점검을 이끌어냈다. 억울하고 조용한 죽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며 이들에게 있는 힘껏 응원을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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