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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이 Oct 04. 2019

살리려면, 당신부터 살아야 한다.

7년 차 간호사의 두 번째 이야기

7년 차 간호사를 취재한 내용입니다.

신규 간호사 시절 들었던 지겨운 소리 '1년만 버티면 돼'

너도 알잖아. 내가 그냥 학생이었다가 갑자기 간호사가 된 거잖아. 물론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 태운다고도 하고 무섭다고도 하니까. 근데 현실은 그런 개념이 아니었어. 나는 아인슈타인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그냥 학생이었다가 간호사가 된 '사람'인데, 모두가 내가 완벽하길 바라는 거야. 정말 0.000000001%의 실수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어.   


물론 정반대의 확률로, 99% 확률로! 나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어. 어버버 했지. 바로 환자들이 얕보더라. 저게 무슨 간호사냐고. 물건 집어던지는 건 흔한 일이고 욕도 하고. 물론 알지. 아프고 힘드니까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 보호자나 의료진밖에 없잖아. 나도 주사 잘못 놓으면 너무 싫거든. 근데 말이지. 문제는 신규에게 교육조차 하기 힘든 구조인데 불똥은 왜 나한테만 튀냐고. 진짜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어.


정신 사나운 와중에도 뭘 계속 쓰고 환자들 상태도 봐야 되고, 외울 건 왜 이렇게 많은지. 더 무서운 건, 내 혼란이 세상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면 안 돼. 처방 한 번에도 환자는 죽으니까. 사람 목숨이 오가는 현장이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사라지니까. 그래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어. 완벽하긴 해야 해. 딱 도망가고 싶지.


길가다가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러. 그럼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아니! 내가 대학시절 내내 배워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그냥 때려치워. 쉬울 리가 없지. 그렇게 다니다가 지금 7년 차가 됐어. 선임들 말처럼 1년을 버티고 그 다음 해를 넘기다보니 여기까지 왔지.


응급사직, 부족한 인력은 채워지지 않아!

소름인게 뭔지 알아? 그 쉽지 않은 관두기를 실천하는 사람이 태반이란거. 1년을 버티는 사람이 많질 않다는거! 아예 간호사 면허 내려놓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도 있거든. 그렇게 우리나라에 필요한 간호사들이 그렇게 튕겨져 나가고 있다는거야. 남아있는 간호사들끼리 꾸역꾸역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는 의미지.


연락도 없이 그만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면 출근 안 하고 연락이 안 되면 '아, 그만두는구나'해. 이해 못하는거 아냐. 나도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었거든. 연차가 높아지면 상황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아니더라. 말한대로 사람이 충원이 안되고, 병원에서도 채용을 안해줘. 악순환인거야. 오늘만 해도 그래. 환자한테 어떤 처방이 왔는지, 유의해야 할 건 뭔지, 혈압은 괜찮은지, 소변은 잘 보는지 봐야되고 노티도 해야해. 그런 환자들이 30명이 넘어. 하루종일 미칠 노릇 아니겠어?


그 와중에 신규 들어왔다고 뭘 알려주래. 근데 시간이 나야 말이지. 내기 신규때 왜 제대로 못 배우고 그랬는지 너무나 알겠더라고.


이 정신없는 아수라장에서 간호사도 죽고, 환자도 죽습니다

이런 와중에 어떤 사고가 나는지 얘기해볼까? 막 신규 환자들이 와서 정신없는데 갑자기 칼륨 같은 고위험 약물을 처방할 일이 생겼어. 의사가 너무 바빠서 나한테 전화로 처방을 해. 베드로 가려는데 때마침 응급이 터졌어. CPR 하다보면 막 정신없어지거든. 그 난리통에 처방 단위를 잊어버린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환자 목숨 왔다갔다 하는거지.


더블체크하면 되지 않냐고? 누가 옆에서 봐줄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자기 일 하느라 너무나 바쁜데. 화장실 갈까봐 난 지금도 물을 잘 안 마실 정돈데. 간호사도 사람인데 8시간 일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아침, 점심, 저녁 먹고 싶거든. 쉴 때는 쉬고 싶고. 바람은 늘 바람으로 끝나. 개선될 것 같지가 않아. 그래서 간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러는거지. 간호사라면 다 공감할거야.


나는 지금도 1년 차 시절이 악몽같아.

나도 이런데 신규는 오죽할까? 병원 일이라는게 그래. 아르바이트랑 다르잖아. 숙련이 되거나 하려면 오랜 기간이 필요하거든. 잘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 선임한테 혼났다고 쳐보자. 그래서 막 이걸 외워. 다음엔 절대 실수 안하려고 노력한단 말이야. 근데 다음날 또 응급이 터지고 다른 처방이 생겨. 일 끝나고 마무리 못했던거 하다보면 4~5시간은 추가로 일하거든.


완전히 녹초가 돼서 집에 돌아가는 내내 울어. 왜 연차가 늘어도 눈물샘은 지치지도 않나 몰라. 그러고 내 방에 와서는 오늘 미숙했던거 공부하고 외우고. 몇 시간 못자고 또 출근해서 저렇게 까이고 배우고 그래. 1년 365일이 그랬어. 요즘 신규들도 똑같아.


세상은 변하는데 내 현실이 여전하다는게,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어. 누구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건 우리니까. 기대하고 바라는게 없으면 이런 감정도 없을 테니까. 그럴 수 있으려면 간호사들이 먼저 살아야만 해. 오래오래 버텨서 결국엔 바뀐 현실을 보고 싶어. 그게 내 소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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