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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Oct 15. 2020

작가엄마의 감성 태교-유산, 그리고 임신

다시 한번 새 생명이 찾아오다.



장지로 내가 직접 만든 Handmade Book


아기를 위해서, 엄마가 되어가는 나를 위해서 시간을 갖으며 태교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와 아기를 위한 귀중한 시간이자 태교 시간이 될 것 같았고, 첫아기라서 모든 게 서툴지만 그만큼 모든 것이 더욱 새롭게 느껴질 것이기에 글과 그림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써 내려가기로 했다.


사실 태교 일기는 아가를 위한 글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늦깎이에 결혼해서 이제 '나'라는 독립체의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니 남은 여정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고, 이 시간마저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다.




나는 보통 작업을 할 때에 장지를 사용한다. 

장지는 인사동에서 주로 구입을 하여 화판 사이즈에 맞게 잘라서 붙이고 작업을 한다. 장지의 특색은 물이 잘 스미고 매우 예민한 종이이다. 그래서 색을 칠할 때 분채와 아교와의 점도를 맞춰서 여러 가지 환경을 잘 맞추어 대해하는 예민한 녀석이다. 


문득 작업방으로 들어가 방구석 구석을 뒤적였다. 그리고 찾다 발견한 쓰다 남은 장지 종이.

대학 때 내가 작업한 그림들을 엮어 포트폴리오 북을 직접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에 발 빠르게 손에 잡힌 장지를 무작정 접고 자르다 보니 꽤 쓸만한 책이 되었다. 표지는 내가 원하는 벽지 샘플로 만들 예정이어서 잠깐 스킵을 하고 임신 초기 과정에서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그리고 쓰며 적어나갔다.


임신 확인부터 10주까지의 여정을 적고 펼쳐보니 이렇게 :)



그리 시작된 나의 임신 일기.

감성 태교가 시작되었다.


느낌이 요상했던 그 날.


여자의 직감은 무시를 못 한다고 했던가. 참 신기하다. 이전에 남아있던 임테기로 일요일 아침에 바로 테스트를 보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살며시 눈을 떠 보니 점차 임신 반응 쪽에서 발갛게 올라오는 또 다른 한 줄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고민했다.


"신랑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올해 4월,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는 아기집도 보지 못한 채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아기를 급히도 떠나보내게 되었다.


마주치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그 아이..


봄기운이 스멀스멀 찾아오던 어느 따듯한 날이었다.

3,4월, 온 세상이 코로나로 시끌벅적하던 때였다. 다니던 영어유치원은 Shut down이 되어 무급휴직을 연명하며 쉬고 있던 찰나, 뜻밖의 소식이 찾아왔다.

놀란 마음에 신랑에게 먼저 이야기를 전했고, 신랑은 병원에 빨리 가서 확인을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둘 다 첫 임신 소식이었기에 긴장했을 터였다.

산부인과로 달려가니 아직은 너무 초기여서 피검으로 알 수 있다고 하여 검사를 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피검 수치상 임신 맞으세요. 축하드려요"


그렇게 소식을 듣고 얼떨떨한 마음을 안은 채, 임신이 되었다고 신랑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한 번도 신랑에게 꽃다발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찮아도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신랑이 축하한다며 다음날, 꽃다발을 내게 수줍음 가득 담아 안겨주었다. 나는 그 꽃을 보며 우리에게 행복한 시간만이 앞으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착각도 잠시였다.

오랜만의 출근을 하여 일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확인한 건 다름 아닌 새빨간 피였다.

어떻게 감정을 컨트롤할 도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 초음파를 진행했다.

선생님은 아기집이 아직은 보이지 않아서 확정할 수 없는 데다, 이러다가 다시 내일이라도 보일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다음날까지 좀 기다려 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바람은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새벽에 하염없이 새빨간 피가 솟구치듯이 흘렀으며 이내 쥐어짜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함께 찾아왔다. 신랑은 아파하는 나를 보며 함께 밤새 잠을 청할 수 없었고 그렇게 깊고 깊은 칠흑 같은 밤을 보내었다..

다음 날 오전, 급히 병원을 방문하니 이미 예상한 대로 다 배출이 된 상태였고 피검사 수치도 전과 달리  하고 내려가 있었다.


"건강한 아이가 찾아온 것이 아니니까 차라리 다행일 수 있어요. 건강한 아기를 또 가지면 되어요"


이후 담당 간호사분이 울먹거리는 나를 보며, 자기는 이전에 유산을 세 번이나 하고서도 아이들을 잘 낳았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를 해주셨다. 그 말씀이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던지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다행히도 우리는 당시 임신 사실을 나의 친정에게도, 시댁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러므로 둘만이 고스란히 그 시간을 온전히 감당해야만 했다.

함께 아픔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었다. 자신만이 나를 챙겨 줄 수 있다며 신랑은 매일 나를 위해 바삐 움직이며 챙겨주느라 고군분투했고, 그 덕분에 나는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신랑의 눈물을 볼 때였다. 정말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신랑이 내 앞에서 소리도 못 내고 눈물만 주르륵 흘리는 모습을 보니 그것만큼 참기 힘든 게 없었다. 그래서 신랑이 장을 보러 마트에 간 사이, 나는 허공에 대고 한참을 크게 울부짖었다.

"내가 다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엄마가 미안해, 자기야 미안해..라고".....

다 내 잘못만 같다고...




시계는 꾸준히 자기의 일을 해내가고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다시 일상에 젖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참 예민한 사람인지 무언가 느낌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이전에 남아있던 테스트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임신 때보다 조금 더 선명한 두 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임신 반응을 보자 나는 기쁨보다는 갈등이 먼저 앞섰다.

" 알릴까 말까, 조금만 참고 더 확실해지면 이야기할까?"


경험은 사람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신랑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조금 더 참기로 결심을 하고 꾸욱 참았다. 그 시간이 내게는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좀 더 확신을 갖기 위해 테스트기의 노예가 되어 매일매일 체크를 했고, 발갛던 것이 하루하루 지나며 점점 더 붉게 선명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의 테스트를 거친 후 나는 신랑에게 또르르 달려가 귓가에 대고 이야기했다.


"여보, 나 진짜 임신한 것 같아"


그리곤 손에 쥐고 있던 테스트기를 선물을 하듯 살며시 내밀었다.

그런데 정말 경험은 무섭다고 여전히 우리 두 사람은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바로 3개월 전의 기억 때문이었다..

우리는 한 주 동안 임테기로 확인하고 기다리며 차분하게 보내고자 했다. 전처럼 병원에서 확인 전까지 너무 둘 다 설레발치지 말자며.





2020,7,25일, 산부인과를 방문하다.

임신확인을 위해 산부인과를 가다


신랑과 나는 맞잡은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신랑도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너무 떨린다'며 말할 정도였고, 나 역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때, 내 이름이 불려졌다.


"아기집이 보이네요, 임신 맞네요. 이제 한 주 뒤에는 난황까지 보실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한껏 좋아하지 못하는 우리의 표정을 읽으셨는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전에 유산됐다고 또 유산되리란 법은 절대 없어요. 건강한 아기가 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꼭 붙어 있어요"

어찌나 그 말씀이 감사하던지... 그제야 는 안도의 숨을 겨우 내쉴 수 있었고, 옆을 돌아보니 그동안 참고 있던 감정을 조심스럽게 드러낸 신랑의 미소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자마자 이야기했다.

"이번에 잘 지키자고, 아기 잘 지켜달라고 매일 기도하자고"


이후, 전에는 알리지도 못했던 임신소식을 다가오는 시어머님 생신에 맞추어 질러버렸다.

" 어머님, 생신 선물드릴게요, 저 임신했어요"

어머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다시며, 친구분들과 있는데 자기가 오늘 다 쏘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말씀에 나도 덩달아 함께 웃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새 생명이 정말로 찾아왔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 아기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미 집을 지은 아기가 너무 기특하고 예쁘다며 나는 이야기한다.

'엄마도 이번에 최선을 다해 너를 지킬 테니, 우리 아가도 어디 가지 말고 꼭꼭 붙어있어야 해'라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내가 깨달은 한 가지.

유산은 정 질환이 아니며, 특히 초기 유산은 안타깝게도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아픔은 절대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을 품고 있는 엄마는 그 자체로 위대하다.

그렇기에 너무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히, 아기는 날개를 달고 또 엄마에게 찾아올 테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하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세상의 모든 이를 잉태하게 한 것은 바로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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