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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지 Sep 29. 2021

이방인의 아지트 - 타이베이 AGCT apartment

Wenzhou st. 녹음을 드리운 3층 카페

이 이야기들은 실제로 있는 장소, 혹은 실제로 있었던 장소를 차용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타이완은 섬이다.

  아침이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사람들의 지친 얼굴이 보이는건 어디든 똑같기 마련이고, 이 섬이라고 사람 사는 모습이 특별히 다를 것도 없지만 섬이라는 건 그래도 가끔씩 세상과 동 떨어진, 그래서 어딘가 특별하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곳일 것만 같은 기대를 주곤 했었다.


  5월, 타이베이의 햇살은 이미 타는 듯이 뜨겁고, 낮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기고 있다.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인 이칭은 3년 전, 말레이시아를 떠나 타이완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오전 수업을 마치자 마자 그녀는 타이완의 초여름 더운 바람을 바쁘게 가르며 도망치다시피 원저우가를 향해 자전거를 내달리고 있었다.


  학교 뒷길로 나와 한참 깊숙히 들어가야 나오는 원저우가의 가로수는 유독 울창해서 길 입구부터 아치형태의 터널처럼 초록색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옹기종이 작은 베이커리와 카페, 아이스크림가게가 마주보고 늘어서있다. 서로 그늘을 얽고 있는 가로수 아래의 그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놀랄정도로 공기가 시원해진다. 이칭은 원저우가의 어느 귀퉁이 자전거 거치대에 거의 내동댕이 치다시피 자전거를 대충 세워놨다. 자전거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고양이 한 마리가 인사를 한다.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4층짜리 낮은 건물 1층에는 ‘길에서 주운 고양이 한 마리’라는 귀여운 이름의 카페가 있다. 카페 앞에 나와 있는 버리는 건지 소유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낡고 기다란 소파에는 길고양이들이 수시로 제 집처럼 다녀가 어쩌면 고양이를 위한 가게같기도 한 그런 카페다. 덕분에 이 골목에는 애묘인들이 많이 다녀간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길고양이들은 경계심도 없이 살랑살랑 인사를 해주곤 했다. 마치 자신들이 이 원저우가의 주인인 것처럼.


  이칭은 고양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길에서 주운 고양이 한 마리’ 카페를 지나쳐 모퉁이를 돌아 가로수와 담쟁이 덩굴에 숨겨져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텁텁하고 덥고 습한 공기가 가득 찬 좁디 좁은 건물 로비에서 삐걱대는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을 누른다. 두 사람이 겨우 탈 수 있을 것 같이 좁은 엘리베이터가 덜컹하고 움직이면서 이칭을 그녀의 아지트로 데려가 준다.  낡은 엘리베이터는 느리기조차 해서 가끔 은 3층까지 이동하는 동안 이대로 문이 열리면 오래된 영화 중경삼림 속이라던지, 아니면 이대로 300년 전으로 타임슬립이라던지 하는 따위의 상상을 하게 만들정도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이칭을 맞이하는 것은  cafe AGCT apartment라는 팻말이다. 이 엘리베이터 문이  곧 카페의 출입문이다.


  입구부터 안쪽까지 긴 직사각형 카페의 두 면은 짙은 베이지색 철제 창틀로 엮인 유리창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채워져 있고 1층부터 올라온 큰 키의 가로수 나뭇가지들이 열린 창문으로 뻗어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무성하다. 영화 속이나 몇 백 년 전의 다른 시공은 아니더라도 초록 잎들에 둘러싸인 이 곳은 길 하나를 두고 수풀 뒤에 숨어 있는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을 준다. 5월 햇빛에 그을리기 시작한 타이완의 여름색과 베이지색 창틀이 아주 잘 어울려서 세 번의 긴-긴 타이완의 여름을 보내며  이칭은 종종 이 곳을 방문했다. 특히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우울한 평일 낮이면 반드시 그랬다. 그게 이칭이 이 곳을 아지트라고 부르는 까닭이기도 했다.


평일의 점심을 살짝 넘긴 오후, 카페 안은 한산했다.  

카페 사장이 이칭을 알아보고 메뉴판은 건네지도 않은 채 물었다.

“늘 먹던 거로 줄까?”

별 것도 아닌 말인데, 사장님의 이 한 마디를 이칭은 좋아한다. 이 카페에서 이칭이 ‘낯선 손님’이 아니라는 인사 같아서다.


이칭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장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에 우중충했던 기분이 그래도 조금 나아지기 시작한다. 상큼한 패션푸르츠 소다와 베이컨 에그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이칭은 오전의 일을 떠올리며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이 곳의 토스트는 바싹 구운 베이컨이 듬뿍 들어가 있어 짭조름하다. 양파라고는 들어가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인지 양파 수프 같은 맛도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채식주의자인 엄마는 이칭이 말레이시아에 갈 때마다 양파수프를 한가득 끓여주곤 했다. 짧조름하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인 풍미 가득한 수프였지만 이칭은 사실 육식 파다. 통통한 닭다리가 얹어진 말레이시아식 레드 카레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뽑을 만큼.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오랜만에 집에 온 딸에게 고기 한 점 없는 양파수프를 자랑스럽게 내주는 엄마가 가끔은 아주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었는데, 엄마는 그러면 못이기는 척 잘게 잘라 바싹구운 베이컨 몇 조각을 스프에 얹어줬었다. 이런 날에는 달큼하면서도 짭조름한 그 양파수프의 냄새가, 코코넛 향이 은은한 흰 쌀밥이, 큰 얼음 조각이 둥둥 떠 있는 연유를 넣은 진한 아이스 밀크티가. 그리고 오래된 엄마의 집냄새가 그립다.



토스트를 먹으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괜히 코끝이 시큰해서 또 한 번 큰 입을 베어 목구멍이 아프도록 꾹꾹 씹어 삼키고, 이칭은 오늘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과제를 테이블에 꺼내놨다. 오늘은 학기말에 제출할 소논문 과제의 중간 발표날이었다. 빨간색으로 대충 갈겨 써놓은 코멘트 들이 눈에 들어온다. 긴장해서 발표를 제대로 못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중간에 말을 한 번 자르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잘 못 알아듣겠는데..”

“어 그러니까 제 말은...”

“넌 쟤 말이 잘 들리니? 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교수는 이칭의 설명을 듣는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앞 자리의 타이완 학생에게 물었다.

앞 자리의 학생이

“어..제가 듣기로는...”

이라며 이칭이 했던 말을 똑똑 끊어지는 타이완식 중국어로 다시 옮겼다.


“아, 이제 이해가 되네.”

 타이완식 중국어로 한 번 옮겨진 설명을 듣고서야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괜찮은 분석이라고 평을 내려 줬다. 하지만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교수님의 밋밋한 호평이 이미 상한 마음에 별 위안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 교수는  단순히 말레이시아 억양의 중국어가 낯설었던 것일 뿐일 수 있겠지만 이칭의 머릿속에는 교수의 찌푸려진 미간과 똑똑 끊어지는 중국어로 자신의 말을 옮기던 앞자리 학생의 난처한 얼굴과 목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화교로 태어나 스무해가 넘도록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살았는데 한 순간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넌 쟤 말이 잘 들리니?]


  드물지만 이런 때마다 이칭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맞닥뜨리게 된다. 같은 언어를 쓰는 외국이라는 곳은 가끔 오히려 더 낯설고 이질적이다. 특히 누군가와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할 때 이칭은 종종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쓸데 없이 생생하게 느끼고는 했다. 방금 전까지 잘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에게 자신이 말레이시아 화교라고 밝히면 거의 모두 아 어쩐지 라는 표정과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다. 그 ‘어쩐지’에 특별한 악의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가끔 그것은 그들과 자신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선처럼 느껴지곤 했다.


  이칭은 빨간색 코멘트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금까지 맞닥뜨려야 했던 수 많은 ‘어쩐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뒷 순서에 발표했던 미국인 남학생을 떠올렸다. 생김새부터 대놓고 외국인인 그의 어설픈 중국어 발표에는 오히려 아무도 네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서 못 알아듣겠어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이칭은 어쩌면 자신이 화교 출신이 아니라 아예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이었다면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완전한 이방인이지도 않으면서 이곳 사람들로 둘러싸인 애매한 중간지대에  자신이 겨우 웅크리고 앉을 수 있는 작은 섬, 그 안에 홀로 몸을 구겨 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남은 토스트를 우걱우걱 먹어 치우고, 눈썹이 찡그려질 정도로 상큼한 패션후르츠 소다를 들이키면서 이칭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맞은편 건물도, 아래의 골목길도 무성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조각조각 흩어져있다. 졸업을 하면 타이페이에서 취직을 해야 할까, 언제쯤  겉도는 느낌이 사라질  있을까,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는게  나을까. 대만인인 남자 친구와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답도 없는 그런 생각들이 밀려올 때면, 이곳을 찾았다.  창가에 앉아 나뭇잎에 반사되어 부서지는 햇볕을 넋놓고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이 편안해진다. 막연하게 불안할 때에는 이곳에 앉아 막연하게 잘될거라는 위로를 해본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일에, 아무 것도 아닌 말에도 울음이 터져버릴  같은 날들의 자신을 쓰다듬어   있었다.


“아메리카노 리필 해줄까?”

이칭이 비운 접시를 치워주며 사장이 물었다.

“괜찮아요. 저기…음…혹시 제 억양이 이상한가요?”

“내가 뭐 주문을 잘못 알아 들었어?”

“아니요 그런건 아닌데.”

“그럼 문제 없는거 아냐?”


그는 별 싱거운 질문이 다 있다는 듯이 가볍게 싱긋 웃고는 토스트 접시를 들고 멀어졌다. 이칭은 카운터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보면서 한결 가벼워진 웃음을 지었다.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과제를 거의 끝내갈 때 쯤,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지기 시작했다.


[어디야? 저녁은?]

[아지트. 지금 갈게.]


남자친구 쓰윈에게서 메시지가 와있다.

 쓰윈에게 답장을 보내고 이칭은 들어올 때의 무거운 기분 대신 묵직한 가방을 다시 어깨에 둘러멨다.

  카페를 나서자 뜨겁고 눅눅한 타이베이의 저녁 공기가 훅 얼굴에 부딪히며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올려다본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예쁜 핑크빛이다. 이렇게 후텁지근한 날씨가 되면 해질 무렵 타이베이의 하늘은 온통 예쁜 분홍 산호색이다. 아마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예쁜 연보라색이 되어 있을 것이고 저녁을 먹을 때쯤엔 깊은 남색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칭은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텁텁한 더운 공기 속에 조금씩 섞여 불어 들기 시작하는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골목골목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뒤섞여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고향 음식과 다른 음식 냄새, 이 시간이 되면 꼭 한번씩은 말레이시아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 날은 그래서 울적하기도하고 어떤 날은 또 하루를 버텨낸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나 왔어.”

“왔어?”


문을 열고 남자 친구와 함께 사는 작은 아파트에 들어서자 익숙하고 그리운냄새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새야?”

“저녁밥.”


쓰윈이 이칭을 돌아보며 개구쟁이처럼 웃는다.

포장그릇에서 방금 옮겨 담은 큼직한 닭다리가 얹어진 레드 카레가 보이고 미처 옮겨 닮지 못하고 종이도시락 뚜껑만 열려 있는 흰밥에서는 달큰한 코코넛 향이 풍겨 나오고 있다. 어디서 났냐고 물었더니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말레이시아 식당이라고 대답했다.


“식기 전에 먹자. 아, 맞다!”

자리에 앉으려다말고 그는 레인지에서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양파스프를 꺼내왔다. 역시 회사 근처 브런치카페에서  운좋게 구했다고 했다.

“예전에 영화에 나왔다고 유명한 카페 있다고 했잖아. 거기서 운좋게 구했어. 맛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다.”


있잖아 오늘 발표하는데 교수님이 글쎄... 구구 절절 이야기하기도 뭐한 사소한 일같아 하소연도 못할 그런 날에

해질 때까지 아지트에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내 하루를 눈치채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


“참, 그 카페 사장은 한국인이더라. 젊은 여자 사장인데 언제 한번 가자. 니가 좋아할 것 같아.”

“정말? 외국에서 혼자 장사하면 외로울텐데, 대단하다.”

“그러게. 근데 그 사람 그래도 꽤 즐기면서 하는 것 같아. 뭐 속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방인으로 사는건 외로울때가 많을 텐데, 무섭기도 하고.”


쓰윈은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이칭을 바라봤다.

“그렇긴 해도 어차피 우리는 늘 어디서나 조금씩은 이방인이야. 나도 공학하던 놈이 디자인회사에 들어가서 이방인 취급인데.”

어깨를 으쓱 하며 그가 웃어보였다.

“그냥 내가 속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계가 좀 낮고 넓은 사람이면 덜 느끼는 것일 뿐인것 같아. 그렇다고 경계가 분명한게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 그 경계안에서는 더 끈끈할 수 있을 테니까.”

“응, 그런것 같네.”


창밖에는 짙은 남색이 내려앉았다.

바깥은 온통 낯선 음식 냄새로 가득한데, 이 작은 아파트안에는 반가운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냄새라는건 그 냄새가 각인된 순간의 기분과 기억을 순식간에 불러와 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양파스프를 한 숟 뜨면서 이칭은 몰려오는 향수를 삼켜보려 애를썼다.

하지만 앞으로는 양파스프를 받아들 때마다 이 남자의 위로가 떠오를 것만 같아.


양파스프에서 말레이시아를 추억하던 내가, 양파스프에서 이 남자와 함께한 타이베이의 작은 보금자리를 추억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 때쯤에는 타이베이가 낯설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이완은 섬이다. 그 타이완의 가장 복잡한 도시 타이베이의 어느 골목, 작은 아파트 4A호실은 나의 섬이다.  

고립된 외톨이의 기분을 프라이빗한 자유로 바꿔줄 수 있는 멋진 파트너와 함께,

여전히 이상하게 낯설고 치열한 바깥으로부터 든든한 울타리를 두른, 그래서 아늑한 나의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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