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
경사에는 못 가더라도 조사에는 꼭 가야 한다는 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내가 깨달은 이치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안 좋은 일에 하는 위로보다 기쁜 일에 진심으로 건네는 축하가 훨씬 더 어렵다는 걸, 나는 내게 좋은 일들이 왔을 때 가까운 친구를 잃으며 씁쓸하게 깨달았다.
나는 안 좋은 상황에 놓인 시간이 남들보다 길었었고 그러다 한참 늦게야 남들은 진작에 서봤을 출발선에 이제 막 선 정도였을 뿐이었다. 서울 황금땅에 집을 산 것도, 주식으로 큰 이득을 본 것도,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었으며, 무슨 세기의 남자랑 결혼한다는 소식도 아니었다. 내가 나 좋은 일에 자랑을 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자랑할 만한 일조차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항상 나를 안쓰러이 여기고 응원해주었던 친구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더니 나를 질투하고 심지어는 말도 안 되는 걸 꼬투리 잡아 분노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와 카페에서 만남을 가진 후 며칠 뒤에 자신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까지 이내 옮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엄청난 폭언과 거의 저주에 가까운 장문의 카톡을 퍼부은 것이다. 당시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던 나에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미래의 내 아이에게까지 악담을 퍼붓는 그 친구의 카톡을 보고 몸이 덜덜 떨렸다. 그때 깨달았다. 그 친구가 그동안 나의 불운 속에서 자신의 우월감을 채워왔었다는 걸, ‘내가 그래도 쟤보다는 낫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내 옆에 있어왔다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그 친구가 지금 불행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걸. 나에게 열등감이 있다는 걸 짐작은 했었지만 이 정도로 컸었다는 걸.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 보는 눈이 부족했다는 것과, 사실 언젠가부터는 이 친구의 됨됨이에 대한 판단을 이미 알맞게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많은 순간 그냥 눈감고 넘어가며 관계 정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내 탓이 크다는 것도.
쓰레기를 제때 내다 버리지 않으면 악취가 나고 벌레가 꼬이듯, 정리할 인연은 진작에 정리를 했어야 했다. ‘손절’이라는 단어에는 앞으로 겪을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지금의 작은 손해를 감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당장의 인연을 정리할 때 맞닦드리는 부자연스러움과 서운함, 그 작은 손해를 외면해온 내가 결국 겪게 된 것은 더 추해질 수 없을 정도로 추하고 더러운 결말이었다. 그 친구에게 너 지금 굉장히 천박해보인다고, 너는 평생을 그렇게 남탓만 하며 사는데 그런 엄마 밑에서 과연 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을까 라며 나도 악담에 가까운 답장을 끝으로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허무하게 그리고 더럽게 끝났다.
분명히 기분 더러운 일이었지만 그 친구 덕분에 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막역했던 친구라 하더라도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비슷한 삶의 수준과 비슷한 생각의 결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 일이 있은 뒤로는 누군가가 참 좋아서 오랜 인연을 유지하고 싶다 바랄 때마다, 일부는 순리에 운에 맡기는 마음이 든다. 이 사람이 계속 잘 지내기를, 이 사람의 일이 내내 잘 풀리기를, 그래서 옆에서 우리가 오래간 잘 지낼 수 있기를.
또 하나, 타인에게 받을 수 있는 가장 고마운 마음은 위로보다도 진심 어린 축하라는 걸 알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 느낄 때 옆 사람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기란 힘든 법이다. 그리고 꼭 자신이 불행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욕심 많은 일부 사람들은 남 잘 되는 일에 그냥 배 아파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되도록 옆에 두면 안 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옆에 두면 안 될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나한테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그게 제일 위험하다. 언젠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도 남는 유형이다.
인간관계는 대부분 다 시절인연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우리가 그간 좋은 친구였더라도 내일은 갑자기 멀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누구 한 명의 잘못이든, 성격상 다름의 문제든, 둘의 상황이 점차 너무 달라져서든, 그도 아님 관계의 생명력이 이제 다해서든 이유는 얼마든지 있을 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유들이 100% 내 노력 여하에 달려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옆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고 매너를 지키고 진심을 전하며 살되, 관계의 지속 여부는 마치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두는 게 맞다. 내 옆에 있을 인연이라면 있을 것이고, 아님 말 것이다. 인간관계에 초연해져야 하는 이유다. 소중하게 여기는 동시에 늘 마음 한 켠으로는 체념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나한테 좋은 걸 알려주고 떠났으니 이젠 악연보다는 귀인에 가깝다고 기억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