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물건보다 더 본질적이고 더 어려운 영역 같다.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럼에도 적어본다. 나를 위해서.
1. 관계의 바운더리를 좁힌다.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신경 쓸 일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일도 자연히 늘어나게 된다. 나는 경험상 이것을 즐기기보다는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쪽의 사람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내가 다 챙기지 못할 정도의 호의나 관심, 챙김을 받는 것 또한 부담스러웠다. 받으면 적어도 그만큼 때로는 그 이상으로 돌려줘야 마음 편한 사람이라, 내가 찾은 방법은 애초에 친구나 지인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사람의 수를 늘리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은 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이 다른 법인데, 나는 사람을 담는 그릇의 크기가 작은 사람인가보다. 적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지내는 게, 사람들로 인한 시끌벅적함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소수의 사람과 보내는 편안한 시간이 훨씬 더 즐거운 걸 보면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뭐가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니까, 내 마음 편한 정도의 범위를 찾아내어 그에 알맞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편하듯, 관계의 범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관계를 최소화함으로써 얻는 장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시간이 확보된다. 그리고 에너지가 비축된다. 쓸데없이 불려다니는 자리나 모임이랄 게 거의 없고, 친밀한 그래서 부담없는 사람들과의 최소한의 약속들만 잡히기에 즐길 수 있는 만남만 남는다. 그로써 생기는 시간과 에너지의 여유는 나는 주로 내 가족들에게 충분하게 쏟으며 살아가고 있다. 퍽 단촐한 삶이지만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도 없을 것이다.
2.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갖지 않는다.
이건 내가 잘 못하는 거다. 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알고 지내다가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야 ‘저 사람 좀 이상하네’ 할 때가 많다. 그런데 나랑 달리 남편을 보면 사람에 대한 기대치 자체를 높게 갖지 않는 것 같다. 그냥 기대치랄 게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는 않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성선설 쪽이고, 남편은 성악설 쪽에 가깝다. 다만 내가 남편을 보며 모델 삼는 이유는 애초에 사람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조금도 없고,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대부분 별로지‘ 같은 체념적인 마음을 늘 갖고 있다보니 사람에게 실망할 일도, 속 끓일 일도 안 일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 관계에서 남편만큼 초연하고 멘탈 갑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남편은 내가 이제껏 봐온 사람 중 1등으로 진짜 강한 사람, 마이웨이인 사람, 내면이 엄청 단단한 사람인데, 나는 그걸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단면이 이런 거라고 본다. 사람에 대해 아예 기대를 갖지 않는 것.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3. 인연이란 다 기본적으로 시절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시절인연'. 불교 용어로서 처음 접한 이 용어는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인데, 모든 인연은 다 때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사람 관계란 우연히 인연을 맺어 마음이 잘 맞을 때가 있었더라도 관계의 생명력이 다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처음처럼 흩어질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마치 한 계절이 끝나면 또 다른 계절이 오듯, 꽃이 피었다 지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명의 순환처럼 인연 역시 다 때가 있다는 이치에 대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는 인연의 영속성에 대해 괜한 환상이나 기대를 갖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가는 인연 안 막고, 오는 인연에도 마음을 조금은 열어둔다. 지금 아무리 좋아도 언젠가 관계가 종료될 수 있음에 대해 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어쩌면 그럴수록 항상 더 예의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게도 되지만, 관계는 한 쪽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반은 상대방의 것이기도 하기에 마음 한 편으로는 체념의 마음 또한 갖는다.
4. 결국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양보다 질이다.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내 마음에 충분함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것이 단 한 두 명일지라도 괜찮다.
진짜 잘 만난 배우자, 진짜 마음 통하는 친구 한 두명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애정과 안정과 사랑을 모두 주고 받을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 양이 적어도 괜찮으려면 질이 압도적으로 좋아야 한다. 그래서 그만한 사람을 찾아내고, 찾아낸 뒤에는 계속 노력하여 관계를 지속하는 일은 평생을 들여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은 몇 개 없는데 그 중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것.
5. 경계 설정을 잘한다. = 내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한다.
이게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나를 향한 어떤 강압적인 요구, 그 사람 본인이 감당해야 할 감정이 나에게 들려올 때 나는 분리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다 내 것처럼 받곤 했다. ‘못해요‘, ‘싫어요’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어도 내 거절로 상대방이 혹시나 느꼈을 상심까지 또 내 몫으로 가져와 스트레스를 받고, 내 목소리를 아무리 내도 계속해서 강압이 들어올 때에는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그냥 신경 쓰지 않기를 못하는 것이다. 지금 와 알겠는 건, 나는 강압에 대한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내 생각이 담긴 목소리를 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 후에는 상대방의 반응이 어떻든 어떤 말이 나에게 들려오든 신경 쓰지 않고 나는 나대로 살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본인의 감정에 대해 자꾸만 내가 해결해줘야 할 몫인 양 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건 제 몫이 아니에요’ 말했다면 그 다음부터는 신경을 꺼야 한다. 상대방의 요구, 상대방의 감정, 상대방의 걱정, 상대방이 처한 문제를 마치 내 것인 듯 가져와서 내가 소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 범위를 벗어난 것, 상대방의 것에 대해서는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다. 내 것만 내 것으로서 감당하고 살아가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