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인생에 단 한 번뿐인 행사들에 대하여

by lovelyjio


‘인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말이 붙는 행사는 다 가격이 심하게 뻥튀기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결혼식과 장례식이 그렇다.


행사를 치르기 위한 비용 자체가 너무 비싸게 형성되어 있어서 어떨 땐 그 행사를 치르는 것부터가 숨이 턱 막혀오기도 한다. 결혼식이 특히 그렇다. 결혼식을 책으로 비유하지면 이제 막 시작을 여는 프롤로그일 뿐이고 그 다음 단계인 리얼 현실을 살아가는 게 본문인데, 프롤로그부터가 이미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돈도 없냐고 묻는다면 없을 수도 있는 거고, 있더라도 그렇게 하루 행사에 태우기엔 아깝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모바일 청첩장을 만드는 게 언젠가부터 당연시되면서 스튜디오 촬영은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의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다. 물론 결혼식 당일 촬영은 아무래도 여러 변수가 있고 하객들도 함께 사진에 나오게 되는데, 그 전에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제대로 찍은 사진이라는 면에서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스튜디오 촬영도 결코 필수는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좀더 선택의 문제로 놓고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물, 예단도 마찬가지. 허례허식이 많이 섞여있기도 한 게 결혼식이라, 과정에서 그 무엇도 반드시 꼭 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부의 성향과 가치관을 고려하여 좀더 자유롭게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로 놓고 보는 문화가 더 자리 잡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요새는 무슨 프로포즈 문화로도 명품백이 필수라느니 하는 내용도 종종 언급되던데 둘이가 다 좋아서 하는 거라면 그만이지만, 제사와 같은 허례허식은 없애자고 하는 젊은 세대가 이런 또 다른 형태의 허례허식은 왜 굳이 새롭게 만드는 것인지 솔직히 이해 불가다.


이런 결혼식 문화를 거부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면 없지는 않다. 가수 하림처럼 아예 결혼식을 생략하고 둘이 함께 의미 있는 공연을 감상한 것으로써 식을 대신할 수도 있고, 나도 그랬고 요새 많은 사람들이 하듯이 소규모 식을 할 수도 있다. 소규모 식이라고 해서 꼭 식이 초라하거나 형편없거나 허접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을 수도,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이고, 허례허식은 선택적으로 줄일 수 있기에 더 뜻 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그렇게들 하니까’ 마인드를 장착하여 자신에게 꼭 맞는 걸 찾아볼 생각도 없이 그저 관습을 따르는 자세로 그 비싼 돈을 지불하고, 갑질하는 웨딩 업계에 굳이굳이 을을 자처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튜디오 촬영 때, 이미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을 다 지불했으면서도 헬퍼 이모께 따로 봉투에 팁을 넣어드려야 하는 이상한 문화가 있다고 주변 친구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들었다. 더 간절한 사람을 을로 만드는 업계의 횡포라고 생각한다.


그래. 말 그대로 인생에 한 번뿐인 중요한 이벤트라면 의미가 큰 게 당연한데. 사회가 정해놓은 관습보다는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그렇게 주체적으로 선택한 쪽으로 하는 게 두고두고 더 좋지 않을까? 이 관점으로 결혼식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나만의 특별한 것을 준비하는 기분이 더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관점에서 출발한 결과가 결국 대중적인 선택이라 할지라도 준비 과정에서의 만족도가 보다 높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례식 역시 마찬가지다. 20대 후반 즈음부터 가까운 가족의 장례를 여럿 치르면서 장례식에서 느낀 것은 역시나 가격 형성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었다. 영정 사진을 둘러싼 꽃 장식에만 몇 백이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았다. 유골함의 가격 또한 몇 만원부터 시작하여 비싼 것은 수백 만원까지 나간다. 이때, 유족들은 괜한 죄책감에, 괜한 눈치에 비싼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족이 죽어 장례를 치르는데 돈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와중에도 합리적 소비를 하려 하는 자신이 이상해보일까 생각도 들 것이고, 혹여라도 무조건 좋은 것, 비싼 것을 하자고 주장하는 유족이 있다면 그 사람 눈치가 보여서라도 그쪽에 따르게 되기도 한다. 마치 더 비싼 걸 하려 하는 사람일수록 고인을 더 사랑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는 그런 심리를, 그래서 이루어지는 선택을 유족으로서 목격했고, 두 분의 마음이 다 어떤 것인지 이해는 갔지만, 역시나 내 생각은 그 선택과 고인을 향한 마음은 무관하다는 생각이었다.


내 장례식에 대한 로망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특히 살 만큼 충분히 산 뒤 죽음을 맞는다면, 그 즉시 화장하고 3일장 같은 건 아예 안 치렀으면 한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최대 하루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으면 한다. 그리고 이미 죽은 몸, 자리 차지하며 이 땅 어딘가에 보관하지 말고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곳에 뿌려주었으면 한다. 그냥 최대한 조용히,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내 기일에도 산 사람 번거롭게 하는 그 무엇도 절대로 하지 않았으면 하고, 살다가 마음 가볍게 기분 좋게 한 번씩 떠올려주면 그걸로 충분히 좋겠다. 살 만큼 살다 간 죽음이면 새삼스러울 것도 하나 없는 거니까. 산 사람은 하루라도 더 즐겁게 가뿐한 맘으로 살기를 바란다. 거기에 내 죽음도 큰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 다만 내 죽음을 통해 어차피 산 사람 자신도 그렇게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인생을 더 명랑하게 즐기며 살아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내 딸이 그랬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적게, 작게, 효율적으로 행사를 치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허례허식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이제는 좀 과감하게 버릴 수도 있는 사회의 관용이 있기를 바라고,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행사인 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에서 자유로운 채 완전하게 개인의 선택 문제로서 행사를 치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사의 모습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사적인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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