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죽음, 사랑

by lovelyjio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의 마지막 일정인

납골당에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강원도 철원에 다녀왔다.


부부묘를 열자

할머니의 유골함이 이미 곱게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 오늘은 할아버지의 유골함도 놓였다.

부부가 나란히 놓였다.

묘비 위에는

할아버지가 미리 붙여놓으신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내가 묻혀있고 곧 자신도 묻힐 묘비에

평생을 의지하신 십자가를 붙여놓으신 것이

왜인지 짠하기도 사랑스럽기도 했다.

나약해보이기도 강해보이기도 했다.

나야 믿음이 아직 없지만

십자가를 보며 그 믿음이 할아버지를 반드시 천국으로 인도하기를 바랐다.

없던 천국도 만들어주기를

그리고 그곳에선 두 분이 다시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새겨준 우리 할머니가

1936년생이셨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우리 할머니는 1936년에 태어나셔서 2020년에 돌아가셨구나 새겨진 연도를 보니 새삼스러웠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구나.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넣고 인사를 드린 후에는

온 김에 오랜만에 이모부께도 인사를 드렸다.

이모부는 2017년에 돌아가셨다.

이모부를 인생에서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이모부가 당신의 자식인 내 사촌 언니와 동생을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했는지는 잘 알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계셔주셨다면 좋았을텐데 싶어서 또 한번 아쉽고 말았다.

동생은 8년이나 흘렀는데도 아버지 앞에 가니 눈물을 흘렸다.

나도 나중에 아빠가 돌아가시면 시간이 얼마가 흘러도 언제고 눈물이 날 것 같아 슬펐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조금은 짐작되는 슬픔이었다.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께도 인사를 드렸다.

어쩌다보니 외가와 친가의 분들을 모두 같은 곳에 모셔서 인사를 드리기에 좋았다.

친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친할아버지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보다 1년 전에 막내 작은아빠가 돌아가셨다.

작은아빠의 이름이 함께 묘비에 써있는 걸 보는데

울컥했다. 아직도 잘 믿기지가 않아서.

가족묘에는 그렇게 세 분의 유골함이 놓여있었다.


중간 중간 고개를 들어 자꾸 자꾸 산을 봤다.

공기는 더없이 맑고 하늘은 파랬다.

깊은 산 속에 들어와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눈 앞에 펼쳐진 산이 그림처럼 첩첩산중이었다.

간만에 정신이 깊고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들의 말소리 말고는 사방이 고요한 느낌이었다.

요새 눈 감고 많이 상상하던 그곳에 정확히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고요한 깊은 산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고 싶었다.

그런 장소에 잠시나마 놓여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삶 속에 계속 문득문득 죽음이 널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낱낱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만 급급했는데 말이다.

암만 아등바등해봤자

나도 결국은 이렇게 고요하게 죽겠지 ㅎㅎ

하는 사실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로 중요한 게 맞을까

나 잘 살려고 하는 게 정말 맞나

죽음이 이토록 명백하게 정해져있는 일이라면

인생의 우선 순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혹시나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야말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걸

덩달아 내 목표로 삼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새삼스러운 의심들이 들기도 했다.

사실은 진짜로 중요한 건 아닌데

그게 본질이 아닌데

쓸데없이 너무 치열하게 사는 분위기에 휩쓸려

스스로 가스라이팅된 것들이 있다면

좀 내려놓고,

조금은 더 신선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나기도 하고.


더불어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너무 애쓰지 말자고

위안하기도 했다.


하루 하루를 더 소중하게, 더 사랑하면서 살자.

사실 그게 진짜 본질이다.

사랑이 전부다.

소풍 온 마음으로 살자.

목표는 가지고 있고 향해 가긴 하되,

순간 순간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자.

그런 생각들을 다시금 또 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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