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체성이 ‘엄마’인 것이 부담스러워
맘카페에 후기 남기시면 5만원 상당의 부속품 드려요.
유아차를 살 때 그 말을 들었는데, 그래도 맘카페에 가입할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필요하긴 하니까 그냥 돈 주고 사야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일단은 내 성격 탓이 있다. 나는 많은 정보를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문제에서 그랬다. 꺼려하는 편에 가깝다. 정보가 많이 들어오면 그것을 통해 더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보다 차선의 선택을 할지라도 그냥 속 편하게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는 편을 선택해왔다. 적당히 모르고 살고 싶고, 나에게 진짜 꼭 필요한 정보 한 두 개만 그때그때 알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맘카페가 꺼려지는 이유에는 위의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OO맘’이라는 호칭을 내 아이덴티티로 쓰며, 또 그런 호칭들을 아마도 쓸 타인들과 ‘누군가의 엄마’라는 그 공통점 하나로 묶여 소통하는 것 자체에 약간 두려움 아닌 두려움이 있는 편인 것 같다. ‘OO맘’… 그 호칭 안에 들어있는 개인은 아마도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다들 제각각의 모습과 성격을 지닌, 다채로운 한 명의 사람일 것인데. 이상하게 ‘OO맘’이라는 그 호칭만 보면 나는 유독 정체성이 그냥 ‘엄마’로 대동단결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엄마는 이래야 할 것 같고 저래야 할 것 같은 그런 프레임이랄까, 역할 기대랄까, 그도 아님 스스로의 책임감이랄까 그런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직업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모임에는 이런 거부감 없이 잘만 들어가 있으면서, 유독 내가 ‘엄마 모임’에 이러는 것의 기저에는 아마도 내가 스스로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유독 ‘엄마’라는 역할이 나를 잠식할까봐 하는 커다란 두려움이 깔려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직업적 공통점을 가지고 어떤 모임에 들어가는 것은 그게 나의 극히 일부라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전혀 상관이 없지만, ‘엄마’라는 것은 내가 ‘나 자신’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분리를 스스로 잘하지 못할까봐 하는 그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괜히 겁먹고 보는 마음일 것이다.
또 실은, 이제까지 내가 ‘엄마’라는 존재가 자식에 대해 갖는 그 엄청나게 맹목적인 사랑에 대해 반은 존경하는 마음이지만, 반은 경계하는 마음이 있어왔음을 고백한다. 엄마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지원하는 것,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할 일이고 위대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지나친 수준으로 외부로 표현되었을 때 곱지 않게 보는 마음이 나에게 있었다.
우리 아이만 따로 아침에 영어 단어 좀 봐주세요.
우리 아이는 교실 뒤쪽에 앉으면 잘 안 보이니, 앞쪽에 앉혀 주세요.
우리 아이에게 교실에서 선풍기 바람이 와서 감기에 걸렸어요. 방향 좀 돌려주세요.
그런 요청들을 어린이집도 아니고 중학교의 담임으로서 심심치 않게 받을 때, 나는 이게 당연히 그 학부모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라는 존재가 뭐길래… 엄마가 되면 이런 맹목적인 마음이 생기는 건가. 자기가 조금 지나치고 무식해 보일지라도 내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 정도 요청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들을 했다. 나도 엄마가 되면 이렇게 되는 걸까 봐도 한편으로 무서웠다. 물론 최선을 다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이에게 맹목적인 엄마는 나는 가정 내에서만 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가정 내에서도, 나는 자아가 강한 편이라 엄마랑 나 사이에서 매번 줄다리기하듯 균형을 찾으며 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정 내에서도 그런데, 하다못해 가정 밖에서는 오히려 나의 맹목성을 뒤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내 맹목적인 사랑이 아이에게만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고, 그것이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자양분이 되어 아이가 밖에서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때로는 자기 입장을 주장하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에 용기 내어, 당근을 통해 엄마들 모임을 다녀왔다. 우리의 호칭은 다 ‘OO맘’이었다. 그래, 나도 엄만데, 맘카페를 왜 꺼려해? 엄마들 모임에 나가보자. 거기에 가서도 처음엔 누구 엄마로서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도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결론은 아직 친해지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조금은 그들이 다르게 보였다는 사실이다. 다들 젊고 예쁜 나이인데,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집에서 시간의 지옥을 보내고 있을 그들이 안쓰러웠고,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을 나누는 그 속에서 그들이 포기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다들 반바지에 티셔츠에 머리를 헤어핀으로 틀어 올린 ‘엄마 복장’이었는데, 그들도 예쁘게 꾸미고 예쁜 옷을 입으면 또 얼마나 예쁠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걸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쉬울 텐데, 다들 성숙하게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들이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다른 엄마들은 어땠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혼자 그렇게 그들에게 무한 연대감을 느끼다 왔다.
용기 내어 동네 엄마들 모임에는 살포시 발을 담가봤지만, 아직도 맘카페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또 막상 가입하고 보면 신세계다, 이걸 왜 진작 안 했을까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가입 안 하고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엄마들 모임도 개인적인 이유로 이제 그만하려고 한다.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엄마로서만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정체성에 있어서 ‘엄마’를 100%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