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짐을 바꾸었다

오늘 하루 기필코 행복해지기로

by lovelyjio


최근 생긴 나름 커다란 변화가 있다.


계기는 TCI 검사였다. 나의 유능한 상담사 친구가 mbti보다 성격과 기질을 파악하기에 더 좋은 것 같다고 알려준 검사가 바로 이 TCI 검사였는데, 남편의 회사 복지로 인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제일로 아끼는 두 사람 덕분이다. :-)


상담은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다’부터 ‘매우 그렇지 않다’까지 중 하나로 응답하는 설문과 A4 2장 분량에 달하는 문장 완성 검사까지 끝낸 뒤에, 상담사 선생님께서 결과를 해석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결과 해석을 듣는 데만 1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시간은 나에게 책 10권 읽는 것보다도 훨씬 더 유익한 시간으로 남았다.


결과지 해석을 듣기 전에 선생님께서는 먼저 ‘기질’과 ‘성격’의 차이에 대해 알려주셨다.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이 천성적으로 가지고 나온 본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성격’은 상황이나 환경에 적응하면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좋은’ 기질이나 성격은 없고, 따라서 이것을 바라볼 때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닌 적응/부적응 차원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그러면서 예로 든 것이, 만약 학대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 있다면 그것이 나쁜 것이겠냐 물으셨다. 나는 단순하게 ‘본인이 살아가기에 힘들지 않을까요?’ 답했는데, ‘그 아이가 눈치 보는 성격이 없다면 맞아 죽지 않겠어요?’ 하시기에 아하! 선생님이 하려는 말씀의 의도를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 같다. 학대 가정에서 자랄 때는 그 성격이 적응적 성격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서 이제는 다른 환경이 주어졌을 때는 그런 성격이 부적응적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적응적 성격으로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 그런 논조였다. 그렇게 기질과 성격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시작으로, 내 검사 결과를 해석해주셨다.


결과 중 나에게 유의미하게 다가온 수치가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안전(위험 회피) 욕구가 무려 97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뭐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은데, 97은 딱 봐도 지나친 수치가 분명했다. 안전 욕구가 높으면 위험한 상황을 예민하게 잘 캐치하여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욕구가 너무 높다 보면 현재에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다. 이렇게 안전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나 같은 사람은 만약 현재의 행복도가 떨어질 때면, ‘과거에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하며 과거의 순간들을 되짚고 동시에 미래 불안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현재 지금 여기에 대한 몰입도는 조금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에 어렴풋이 느끼던 내 문제를, 전문가를 통해 명쾌하게 들으니 마음에 딱 와닿았다. 또한 평균에 비해 훨씬 치솟아있는 내 수치를 눈으로 직접 보니, 아 정말 내가 남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구나 정말 고쳐야겠다 하는 경각심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앞서 하신 말씀과도 연관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안전 욕구가 기질적으로 애초에 높은 사람인데, 나의 원가정은 어려서 IMF를 겪은 이후부터 은행원으로 나름 안정적이고 누릴 걸 누리며 살아오던 아버지가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며 오르락 내리락의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자랐으니 안전 욕구가 더 치솟는 데 일부 기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나는 집에만 있으면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 그리고 죽어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매번 발목이 잡히는 기분이 들고,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기분에 속절없이 놓여있었던 상황이 길었다. 하여 결혼 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 이유에는 우리 부부의 상황이 안정적이고 따라서 삶에 대한 욕구와 생기가 충만하고 그래서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인 것이 매우 컸다. 그렇다면 앞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학대 가정 아이가 사회에 나와 환경이 변했을 때는 눈치 보는 성격이 이제 부적응일 수 있듯, 나 역시 환경이 변한 것이었다. 이제 내 주변 환경은 안정적이다. 안전 욕구를 풀가동해야 그나마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그때랑은 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이제는 이걸 내릴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대체로 안전하다고 믿어야 하며, 만약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요소가 있다 해도 이제 그것들은 사소할 것이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고, 그런 생각에 처음으로 나 스스로가 설득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유의미하게 다가온 결과는 내가 남의 마음을 너무 많이 신경 쓴다는 점이었다. 연대감의 수치로 표현되는 이것도 역시나 99로 거의 100에 가까운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균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이 역시나 시각적으로 확 보였다. 문제는 나는 안전 욕구가 높으면서(위험한 요소를 몹시 싫어하면서) 남의 마음을 신경 쓰는 수치 또한 너무 높다 보니, 스스로 힘들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안 그래도 선생님께 내가 남편에 대해 마음 쓰고 있던 고민 하나를 털어 놓았더니, 그건 남편의 몫이고 마음인데 왜 내 문제로 가져오냐는 단호한 어조의 답변을 들었다. 듣고 싶은 말이었던 걸까? 사실 딱히 그건 아니었음에도 그 말이 비수처럼 와서 꽂혔다. 또, 내가 남의 마음을 너무 많이 배려하고 신경 쓰다보니 상대방에게도 그 정도를 바라게 될 수 있는데, 대부분은 그 정도로 남의 마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씀 또한 그랬다. 맞는 말이었다.

상담사를 처음 만나본 자리라, 공감적이고 굉장히 친절하실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오히려 대부분 단호하고 감정이 조금 배제된 듯한 이성적인 어투로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나에게 그 점이 좋았다.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감수할 게 따릅니다. 뭘 선택하셨죠? 뭘 감수하고 있나요?” 하시던 물음도,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


이 시간을 계기로, 어디까지가 내가 마음 써야 할 일이고 어디서부터는 과감하게 감수해야 할 일인지. 어디까지가 내가 헤아려야 할 몫이고 어디서부터는 내 몫을 벗어난 일인지 그런 경계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경계가 어딘지를 몰라서 못하던 것보다는 경계를 짓는 용기가 그 무엇보다 필요한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옳음을 지향하는 사람이었어서 옳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 속에서 나 스스로를 가두고 힘들게 하고 있었음을 인정했고(그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그냥 그저 그렇고 그런, 그 정도의 사람임을 인정하고 나니까 훨씬 모든 문제가 단순해졌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도, 옳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나도 남들처럼 그냥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제는 옳고 그름보다는, 내 마음 편한 것, 적응적 차원으로의 나로 살아갈 필요를 우선적으로 느꼈다.


마지막으로 문장 완성 검사 중에서 기억에 남던 것은, 가족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었는데 나는 이 물음에 대해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고 답변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굳건한 사람으로 옆에 있어주고 싶은 소망은 내가 가족에게 늘 갖고 있는 제일 큰 소망이다. 선생님께서는 ‘남의 마음을 이렇게 신경 쓰는 엄마한테 과연 자식이 마음 편히 기댈 수 있을까요?’ 하셨다. 하참.. 쓰다보니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웃긴 사람이었는지 알겠어서 부끄럽지만, 어쨌든 이 말씀도 도움이 되었기에 남긴다. 밖의 일을 잘 경계 짓고, 아닌 건 아니고 되는 건 되는 사람이 되는 편이, 차라리 아이로 하여금 ‘우리 엄마는 여기까지는 되고 이거는 안 돼’ 할 수 있다고 해주신 말씀을 꼭 기억하고 실천해보려고 한다.



이건 내가 최근에 읽은, 너무 좋았던 책의 일부분이다.

‘당신 옆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를’ - 나는 이 부분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갖고 있는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 나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듯 아이에게 티끌 없이 순수한 사랑을 무한하게 받고 있는 중이다. 내 옆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 나는 조금 더 마음 편한 채 살아가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 아이에게 세상 편안한 집 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소망이 나에게 그 무엇보다 가장 우위에 있는, 가치 있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다, 그 말의 의미가 나에게 와닿는 요즘이다. 그리고 요새 그게 실천되는 중이라 참 좋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는 기분. 때로 힘든 건 힘든 거고, 아이랑 즐거운 일을 찾고 실천하기. 그게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오늘 하루도 재미나게 보낼 생각에 설레기. 그런 것들.


위의 사진에서 짤린 마지막 부분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기보다
오늘 하루 기필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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