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같은 시간 버티기
바깥은 뜨거운 여름.
그래서 나는 주로 아기랑 집 안에 있다. 요새는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그리고 우리는 젊은데, 나는 고작 요기 안에서 맴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가끔 외출을 하더라도 근처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주로 찾고, 저녁 시간에는 땀을 비 오듯 흘릴 각오를 하고 나가는 놀이터 정도니까. 덥고 습한 걸 싫어하는 나는 이 무서운 여름이 얼른 끝나주기만을 바라며 지금의 조금 재미 없고 이벤트 없는 빈틈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여행 욕구가 그다지 없는 편임에도 요새 또 집에만 있다보니까 한동안 잠잠했던 여행 욕구가 다시 올라온다. 여행이 가고 싶다. 한동안 뜸했던 해외를 가고 싶어 자꾸 유튜브를 뒤적뒤적한다. 과거에 다녔던 여행도 생각난다. 내가 처음 멀리 갔던 곳은 싱가폴이었다. 당시 파견을 가있었던 친오빠가 놀러오라고 생일 선물로 항공권을 끊어주었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 안 나올 거라던 알아서 잘 찾아 오라던 오빠가 마중 나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일주일 일정 동안, 오빠는 회사에 다니고 나는 혼자 여행을 했다. 기대보다 재미있었고 여름만 되면 그때가 생각난다. 당시 살짝 우울했던, 해야 할 것만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비일상을 누린다는 것 자체가 리프레시되어 좋았고, 낮에는 혼자 여기저기 쏘다니다 저녁에는 퇴근한 오빠랑 또 맛있는 걸 먹고 마리나베이의 야경을 걷고 보는 것이 좋았다. 너무 더운데 그 더운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또 기억에 진하게 남는 여행 하나는 오랜만에 가족이 다 함께 뭉쳤던 여행이다. 당시 나는 강아지랑 함께 긴 여행 중이었고, 오빠는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중이었고, 부모님은 당연히 국내에 계셨다. 휴가를 맞은 오빠가 원래는 발칸 반도를 가려고 했었던 계획을 바꿔 갑자기 내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오기로 했다. 그런가보다 하고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엄마아빠도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며 항공권까지 끊었다는 오빠의 카톡이 와있었다. 뭘 하든 항상 오래 고민하고 망설이는 나와는 달리, 오빠는 항상 재미있는 걸 기획하고 바로바로 추진하는 스타일이었다. 여행 스타일도 나는 깔끔한 도시를, 오빠는 주로 남미와 아프리카를 선호하는 사람이니 우리는 참 달랐다. 어쨌든 하루 아침에 네 가족, 아니 강아지까지 다섯 가족이 모여 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여행은 생각보다도 더더 좋았다. 내가 꼭 가야 한다고 우겨서 일정에 넣게 됐던 장크트볼프강에서 엄마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나중에 들은 바로는 프라하에서는 아빠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는 가족들과 모든 일정은 함께하지 못하고, 일 때문에 먼저 강아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남은 이들도 돌아갈 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오빠는 쿠웨이트로, 부모님은 한국으로… 오빠가 급 추진해 오랜만에 뭉치게 된 가족 여행이었는데,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오빠가 또 충동적으로 기획했구만 싶었는데, 둘 다 결혼 전이었던 데다가 무엇보다 챙겨야 할 아이가 없었던 때이니 그보다 좋은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오빠 덕분에 다들 힘들었던 일상에서 잠시나마 반짝 빛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다시 그때처럼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만큼 나중에 두고두고 꺼내먹을 달콤한 초콜릿을 모으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언제쯤 또 긴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이번 여름은 일단 조용히 기다리기로 하고, 아기가 조금만 더 클 때까지 또 기다리기로 한다.
그때가 되면 방학마다 놀러가자! (여름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