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데 다행스러운 하루들

귀여운 사람 둘 덕분에

by rainy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남편이랑 결혼한 일.

두 번째로 잘한 일, 이 아이를 낳은 일이다.

둘 다 하마터면 그러지 못할 뻔했는데 현실이 되어서 문득문득 얼마나 아찔하고 동시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두 사람 다 참 순둥하고 사랑스러운 성격을 가졌다. 둘 다 하는 행동이 타고나기를 그냥 귀엽다. 내가 생각하는 두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은 항상 온화하고 편안한 감정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 같다. 내 아기는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짜증낼 법한 상황에서도 웬만하면 짜증을 내지 않아서 신기할 정도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차분히 시도하고 또 하는 것을 보면 아기가 인내심도 좋은 편인 것 같다. 또 내 아기는 예민한 구석이 없이 참으로 무던한 편인데, 양육자로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워낙에 무던하다보니 신생아 때부터 통잠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안 아프고, 무엇보다 별 것 안 해도 엄청 신나하고 꺄르르 꺄르르 잘 웃는, 항상 기분이 좋은 아기다. 오히려 나에 비해 에너지 레벨이 높아서 내가 체력적으로 힘들 때는 있지만, 그건 오로지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엄마가 자주 하시는 말, 너는 아기 거저 키운다는 말이 야속해도 사실 아기의 특성만 놓고 보자면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기는 하다.


어쩜 이렇게 완벽하게 좋은 사람을 만나 이렇게 귀하고 예쁜 아이를 만났을까 싶어 순간순간 감사하고, 이제껏 내가 겪은 작은 불운과 고난들이 있었대도 이 둘로 인해 안 좋았던 모든 것들이 상쇄되는 것만 같다.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친구가 물어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결혼 안 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친구가 어떻게 가장 잘한 일이 무언가를 안 한 것일 수가 있냐며 웃었던 기억. 하지만 그게 진심이자 사실이었다. 내가 만약 결혼을 했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는 살 수 없었을 것임을 안다. 아마 평생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는 채로, 그냥 겨우 이런 게 사랑인가보다 하면서, 그런데 가끔 상대방이 갖는 마음의 크기와 내 마음의 크기가 다른 것을 문득 느낄 때마다 깜짝 놀라 미안해하며 내 마음이 평생 무너지며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러 가지로 정말 운이 좋았다. 적절한 시기에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을 만나 서로에게 귀한 인연이 되어주는 것, 그것보다 더한 행운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더 바라는 것은 없고,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는 것, 나와 내 가족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 것만을 오직 바라게 된다. 별일이 없기에 심심하고 따분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무탈한 것이라는 증명도 없을 테니 동시에 마음 깊이 다행스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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