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덜어보기

by lovelyjio


나는 이번 겨울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진짜 진짜로 보내려고 한다. 대기 세 곳 중 가장 보내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내보려고 한다. 그즘이면 아이가 태어난 지 만 20개월은 채울 것이다.

이제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 같다. 더 잘해내고 싶었지만 이제는 좀 한계인 것 같다. 조금은 실패한 기분도 든다.


요인은 복합적이다.

내가 가능한 한 다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 이게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인데 육아에서는 특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엄마의 도움도 거의 받지 않았고, 파트 타임으로라도 시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꺼려져 하지 않았다. 남편의 퇴근 후에는 하루 1시간이라도 아이랑 분리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남편도 나처럼 일하고 돌아온 건데 이런 걸 요구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나도 가지고 있었고, 퇴근 후 남편과 함께하는 육아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남편이 가능한 한 많이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인 것도 잘 알아서 저런 걸 요구하는 말이 오히려 선뜻 나오지 않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들로 최대한 혼자 다 해보자 하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 마음은 자주 허물허졌고, 모든 상황이 다 원망스러워질 때도 있었고, 결국에 남는 단 하나의 생각은 왜 이걸 내가 혼자 다 감당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건 내가 진짜 싫어하는 상황이다. 내가 제일 피해 입는다고 느껴지는 상황.


또 나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완벽주의가 있다. 그게 육아를 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적당히 할 수 있는 것도 적당히가 잘 안 됐다. 아이가 있으면 집이 좀 지저분해도 적당히 흐린 눈 해야 한다는 말, 머리론 아는데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남편조차 나에게 청소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는데. 집은 더러워지기 쉽고 더러운 공간에 있는 기분이 더 싫기 때문에 또 하게 되고, 가끔 청소조차 할 수 없이 에너지가 바닥난 날에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장점도 없진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집 치고는 우리 집은 상당히 깨끗하고 정돈된 편이니까. 근데 이게 좋든 나쁘든 성격이라, 선택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육아를 하며 알게 된 것 하나가, 나는 의외로 지적 자극이 전혀 없는 생활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공부를 오래 해서 앞으로 절대 공부는 안 해야지. 대학원을 왜 가? 이런 마음이었는데. 막상 아이만 돌보는 시간이 누적되며 점점 바보멍청이가 되는 기분이 들자 그게 스트레스로 쌓였다.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는 늘어가는 데 반해 읽어가는 속도는 훨씬 느리기도 하고. 공부를 아예 너무 안 하니까 공부도 하고 싶어졌다. 그냥 조금이라도 머리를 쓰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 같다. 아이를 돌보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니즈들이 소소하게 충족되고 있었나보다. 그게 안 되는 생활은 생각보다 삶을 노잼으로 만든다.


배고플 때 밥 먹고, 자기 관리도 하고, 뭔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도 주기적으로 갖는 보통의 그런 삶을 살다가. 항상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고 아이의 행동에 놀라고 조마조마하고 수습하고의 반복인 하루를 사는 것이 점점 스트레스가 되었다. 내가 내 삶의 능동적인 주체가 아니라 아이가 내 삶의 주인이고 까다로운 데다가 사고뭉치 보스고, 나는 그저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러서 허허허허 해야 쉬운 게 육아인데 그게 점점 스트레스가 되더라. 내 하루를 다섯 글자로 요약하면 ‘뒤치다꺼리’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하루들을 17개월간 살아온 것이다. 지친 것 같다. 물이 찰랑찰랑 몇 방울만 들어와도 넘치려고 하는 상태인데 내가 그걸 주말로 막고, 남편과의 시간으로 막고, 야식으로 막고, 술로 막고 하면서 임시 봉합할 수밖에 없으니 육아로 지치는 날 이 물은 금방 넘치고. 그런 상태에 온 것 같다. 술도 안 마셔야지 다짐해도 스트레스를 만땅 받은 밤이 되면 효율적으로 가장 빨리 풀 수 있는 게 술이다보니 나는 또 술을 마셨다. 얼른 풀어야 내일 또 살지. 이 마음에 매번 졌다.


또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것 중 내가 유별난가 하는 자책도 있었다.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유별난 건가? 그런 자책과 비난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하다보니까 오히려 조금만이라도 타인에게 비난조의 말이 들리면 더 그게 비수처럼 와서 꽂혔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 좀 내려놔 대충해도 돼 그런 말들조차도 위안이 되기보다는… 내려놓는 게 안 되는 사람이 난데 어떡해.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리구 사람다운 삶은 이미 반 강제로 내려놓고 있는 상태이기도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을 것들을 내려놓고 잘 해내는 엄마들도 있지만 어쩌겠나. 이게 나인데… 나는 나랑도 끝까지 잘 지내야 하는데.


이제 변명의 말들을 해보자면.

지금까지의 육아로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것 같다. 오래 버텼다.

짧다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18개월 가까이 힘든 일인데 잘해왔다.

내 마음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내 아이는 다행히 엄청 건강하고 밝고 사랑스럽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는 어린이집 가도 아이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괜히 죄인일 필요는 없다.

죄책감을 덜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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