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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 Oct 22. 2019

역사의 한 페이지

피렌체의 카페

     여행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몸이 이탈리아 시간에 맞춰져서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고 더 자고 싶어 지는 걸 보니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왔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것보다 피렌체의 작은 골목을 산책하는 편이 아쉬움이 덜할 것 같아서 이른 아침 산책에 나섰다. 5-6층 정도 높이의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관광지가 아닌 곳을 걸으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가게들과 아직 닫힌 가게들의 쇼윈도를 느긋이 구경하며 천천히 걷는다.

     (한국에서 고현정 크림으로 유명해진) 산타마리아 노벨라 화장품은 현지가 저렴하다 했지만 한국에 비해 싸게 살 수 있다는 뜻이지 프랑스의 약국 화장품처럼 착한 가격은 아니었다. 반면 ‘안눈치아타’는 좋은 가격대에 모든 제품 전량을 피렌체에서 직접 생산한다고 해서 들러보았다. [Framacia SS. Annunziata]는 한눈에 들어오는 적절한 크기의 매장이지만 455년의 역사가 느껴지는 나무 장식장이 있고 스킨부터 향수, 남성 쉐이빙 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제품 설명서가 한국어로 준비되어 있어 써보고 싶은 것들을 고르기 편했다.


     장미수, 블루베리 스킨, 로즈메리 세안 폼 모두 은은한 향이 좋았고 수분크림, 비타민 E 크림도 만족스러웠다. 다시 가득 사다 놓고 뿌듯하게 쓰고 싶은데 이탈리아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은 아닌 듯해서 다시 이탈리아에 가게 되면 이제 약국을 기웃거리게 될 것 같다.


     두 손 가득 화장품을 들고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에 도착하자 시야가 탁 트인다. 이 광장에는 피렌체의 흥망성쇠(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의 시간을 함께해 온 카페들이 있다. 대부분 광장 안으로까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카페의 역사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카페 내부를 둘러보는 편이 훨씬 좋다.

     [Caffé Concerto Paszkowski]에서 카푸치노와 크로와상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로 카페 안이 북적인다. 다들 서서, (고맙게도 이 곳은 베이커리류 쇼윈도 앞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둔 곳이 있었다) 아니면 잠깐 앉아서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주문서를 받고 필요한 만큼의 잔받침과 스푼을 미리 바위에 준비하고 커피를 내리는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어우러져 우아하다. 카페의 인테리어가 고풍스럽게 유지되는 것보다 바리스타의 단정한 복장과 능숙한 움직임이 유럽 카페 문화의 역사를 더 체감하게 한다.


     카푸치노 한 잔으로는 뭔가 아쉬운 마음에 몇 걸음 옮겨 [Caffé Gilli]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진한 향기와 풍부한 크레마가 ‘역시나’하는 맛이다. 이 곳은 1733년에 문을 열어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카페이다. (가장 오래된 카페는 베네치아에 있는 카페 플로리안[Caffé Florian]이다. 1720년에 문을 열었다.)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온 영국의 젊은이들과 당시 도시의 신사들이 모여 커피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랑방 같은 곳이자, 그 후 당대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되었다가 이제는 전 세계의 커피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의 순례코스가 되는 유럽의 카페에는 분명 그 세월이 축적된 무언가가 존재한다.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 오래된 카페를 찾는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을 (작은 잔에 농축된 쓰고 진한, 그 뒤엔 달콤하고 고소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일은 음료를 마시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Grand Tour: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 특히 영국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유행한 유럽여행을 말한다. 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세련된 예법의 도시 파리를 필수 코스로 밟았다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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