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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uman diary Mar 07. 2022

뒷목길

골목길. 더 이상 낭만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

오래된 골목길. 누가 쓴건지 알 수 없는 낙서와 울퉁불퉁한 바닥. 비가 오면 시멘트 슬래이트를 따라 흐르는 빗물. 어느 곳도 너비가 일정하지 않은 곳. 모 교수는 사거리가 없는 골목길은 자연 발생적인 도시 진화의 흔적이라 말하기도 했듯, 골목길은 분명 누군가 철저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건축가들은 그런 골목길을 반대로 연구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골목길이 사라지면 안되는 이 시대의 중요하고 가치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자산으로서 집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 그런 멋진 아파트에 살고 있다. 건축과 학생들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골목길을 찾아 사진을 찍고 기록으로 남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건 허세다.

막상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 무슨 일이예요? 뭐하는 거예요? " "건축과 학생인데 골목길이 멋져서요." "일 없다."


일 없다는 말로 끝나면 다행이다. 심한 경우엔 누구는 이런 곳에 살고 싶어서 사냐는 말을 듣기 일쑤다. 학생때 부산 옥상마을과 용호농장을 답사 차 방문한 적이 있다. 옥상마을과 용호농장. 낯설다. 

옥상마을은 말 그대로 옥상 위에 마을이 있는 곳이다. 거대한 상가 옥상이 아까웠는지 당시 집장사가 옥상에 집을 짓고 그걸 사람들이 살도록 했다. 그곳을 방문했던 기억은 여전히 내게 낯설고 충격이었다. 옥상에 막상 오르고 나면 이 곳이 과연 옥상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골목길에는 아이들이 축구놀이하며 뛰어다녔다. 이제는 낯설고 사라진 듯 했던 가스통이 놓여져 있는 마당을...

하지만, 내가 이 곳을 방문했을때 가장 충격인 것은 옥상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아니었다. 분명 이 곳은 그렇게 잘 사는 동네가 아님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일종의 계급이 느껴졌다. 협소하고 음침한 곳, 보통의 곳. 조금 괜찮아 보이는 곳... 이 곳은 분명 계급이 존재해 보였다. 

나는 이 공간의 낯섬이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서운 곳인 셈이다. 영화에도 나온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 좋은 분위기로 나오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용호농장은 이제는 사라진 곳이다. 예전에는 나환자촌으로 알려진 이 곳엔 오륙도를 바라보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내가 이 곳을 방문했을때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색이 없는 동네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색이 없다. 모든 것이 회색 콘크리트였다. 회색 콘크리트 그 자체가 자연 처럼 보일만큼 신기한 동네였다. 누군가한테 들었는데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 만큼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곳이었단 의미다. 다만, 부산에서 가장 바다 전망이 좋은 오륙도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건 알고 있었을까?


건축가는 정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노력하지만 아카데믹한 것에는 한계가 있는법. 그래서 건축가가 아닌 이들로부터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배움에 있어 과연 그들의 삶은 즐거웠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건축가는 가난한 자들의 삶으로부터 배운 것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그 가난한 자들의 삶으로부터 배운다는 그 말에 가난한 자들의 삶도 포함된 것일까? 

골목길은 분명 낭만적인 곳이었다. 나 역시 어릴적 골목길에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만, 지금 골목길은 낯설고 무섭고 누구도 원치 않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는 골목길의 낯섬을 기억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골목길을 어떻게 바꿔야 옛 낭만을 되찾을지 조금이나마 생각해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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