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17
생산공정 디지털화의 의미
생산(production)과 제조(manufacturing)는 모두 재료를 모아서 부가가치가 향상된 재화를 만드는 활동을 가리킨다. 단, ‘제조’는 자동차, 선박, 항공기처럼 유형 제품 생산에 국한된 용어지만, ‘생산’은 제품뿐만 아니라 의료, 금융, 숙박 등 무형 서비스를 만드는 활동도 가리키는 용어이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기업은 여러 가지 재료를 구매(또는 개발)해서 그것들을 가공, 조립, 시험 등을 거쳐 완성된 제품/서비스로 만든 후 마케팅, 판매, A/S, 물류 등 유통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생산공정(production process)은 일반적으로 원재료/자재 등의 조달로부터 완성품을 고객(또는 납품업체)에게 전달할 때까지의 활동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편의상, ① 제품/서비스 생산에 앞서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서비스 개선을 위한 설계/해석 활동과 ② 완성품을 고객에게 전달한 후에 진행하는 유지보수도 생산공정에 포함할 것이다. 완성품을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판매/마케팅/영업, 사후지원(A/S), 고객이 제품/서비스의 구매 전/후와 도중에 제공할 고객경험 등은 ‘유통방식(delivery process)’으로 묶어서 나중에 다룰 것이다. 요약하면, 여기에서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란 제품/서비스 개발 단계의 설계/해석 활동과 완성품 생산을 위한 조달-가공-납품-유지보수 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디지털 혁신을 위해서는 기업이 생산(또는 유통)하는 대상(‘what’)인 제품/서비스/솔루션을 디지털화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만드는 작업(‘how’)인 생산공정도 디지털화하여야 한다.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는 다른 기업활동 요소를 디지털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성 또는 운영 효율 향상, 매출/이익 증대, 새로운 수익 창출 등을 목표로 한다.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는 기본적으로 부품/자재, 조립/가공용 장비/설비, 공구, 작업자/관리자 등으로 구성된 종래의 공정을 컴퓨터, 유/무선 통신,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AR/VR, 로봇, 3D 프린팅 등을 적용해서 연결, 통합하는 작업이다.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는 제조업, 서비스업, 농/축산/임업 등 전 산업에 공통된 과제이며 개별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국가 차원의 기술생태계, 산업생태계, 고용/일자리 등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 과제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GDP 규모로는 세계 13위(2024년)이며 제조업 비중은 세계 1위(27.8%, 2020년)로 2위인 독일(21.6%)이나 미국(11.6%)보다 높다. 반면, 서비스업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농/축산/임업은 국내 생산자의 유지/보호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는 제조업을 포함한 전 산업의 생산성, 나아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는 산업이나 제품/서비스 특성에 따라 범위나 접근방법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지만, 여러 가지 재료를 모으고 인위적으로(또는 자연에서) 가공(또는 배양)해서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공통적이다.
따라서, 특정 산업용 디지털 생산시스템은 모든 산업이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와 플랫폼 위에 제품/서비스에 따라 달라지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 부분을 확장/추가한 형태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음식, 치료 등을 위한 디지털 생산시스템은 ‘인프라’로 유/무선 통신과 서버, ‘플랫폼’으로 데이터 처리, 프로세스 통합, 정보보호, 메시징, 지불/결제 등을 공유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전통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했던 산업간 경계는 디지털 혁신이 진전되면서 점차 낮아지거나 소멸하고 있다. 실제로 FAMGA를 포함한 글로벌 테크기업은 대부분 제조/서비스/농업 등 모든 산업의 디지털화에 필요한 인프라/플랫폼 시장을 선점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새로운 산업(예: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모빌리티)을 창출하고 있다.
생산공정의 디지털화 방안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는 디지털 인프라,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구현하는 작업이다. 전통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인프라와 플랫폼은 외부에서 도입하고 애플리케이션과 서비스는 자체 개발하거나 외부 협력업체를 통해 개발한다. 중요한 것은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를 어떤 목적으로 추진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운영 효율 향상, 기존 제품/서비스의 매출/이익 증대, 신사업으로 새로운 수익 창출 등 목적에 따라 전략/전술과 수단이 달라질 것이다.
IBM(2011)은 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와 비즈니스 모델 혁신 방안으로 다음 3가지 전략을 제시하였다. 첫째, 창조(create)는 종래에는 없었던 새로운 운영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버나 에어비앤비가 차량/숙소, 운전자/호스트 등 외부 자원을 모으고 연결해서 승차/숙박 공유라는 서비스를 생산한 것이다. 이는 실시간 컴퓨팅 및 통신, 모바일 앱, 배차/배정 알고리즘 같은 디지털 기술 없이는 구현할 수 없는 생산방식이다. 둘째, 활용(leverage)은 기업이 가진 역량을 새로운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조업체가 유휴 생산설비를 외부 업체에게 서비스로 판매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전문인력을 타 기업을 위한 컨설팅 서비스 (사업)에 투입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통합(integrate)은 기업이 보유한 생산 요소나 내부 부서 간, 외부 협력업체 간 생산 프로세스를 서로 연결해서 시너지를 내도록 통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생산 현장의 공정제어용 SW인 MES와 전사 차원 경영관리 SW인 ERP를 통합해서 경영 의사결정과 생산 실행을 일관화하면 진정한 의미의 실시간 기업(Real-Time Enterprise)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인더스트리 4.0을 주도한 독일 VDMA(2016)는 제조업을 대상으로 3가지 영역에서 생산공정의 디지털화를 고도화해 가는 전략을 제시하였다. 첫째 공정제어 영역은 장비/설비에 센서를 부착해서 고장/장애를 감지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최적 가동조건을 설정하고 이를 벗어나는 것을 미리 진단-대응하는 수준으로, 나아가 관리자의 개입이 필요 없는 자율 공정제어를 구현하는 식으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제품 기반 서비스 영역은 제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포탈 서비스에서 시작해서 제품 자체의 구매, 사용, A/S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제품과 사용자가 직접 상호작용하는 서비스(예: UI 맞춤/개인화, 새로운 기능의 업데이트/업그레이드)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셋째 제품 기반 신사업 영역은 표준화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고객 요구를 받아서 맞춤 생산-판매하는 사업으로, 나아가 제품을 운영/사용하는 데 필요한 부가 기능/서비스를 생산-판매하는 사업으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앞에 소개한 ‘제품 기반 서비스/신사업’은 생산공정 혁신을 넘어서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속한다.
디지털 생산시스템의 진화과정
디지털 생산시스템은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계속 고도화되고 있다. 제품개발 단계에서 설계/해석을 돕는 CAD/CAE, 그 결과를 실제 제조로 연결하는 CAM, 생산관리 측면에서 자재 구매와 재고관리, 생산계획을 연결하는 MRP, 제품 수명주기 활동과 공정 데이터를 통합관리하는 PDM/PLM, 생산 현장에서 제조실행을 자동화하는 MES 등이 대표적 응용 시스템이다. 컴퓨터통합생산(CIM: Computer-Integrated Manufacturing)은 작업자, 설비, 자재 등 생산 요소들을 컴퓨터 HW와 센서, 제어용 SW인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통신망 등을 활용해서 통합한 것으로 실체라기보다는 목표/개념에 해당한다. 유연생산시스템(FMS: 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은 CIM을 뒷받침하는 생산시스템을 가리키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FMS는 예를 들면, 생산량 변동에 따라 작업자나 자재 수급을 기민하게 조정할 수 있고 심지어 생산할 제품과 공정이 달라지더라도 생산 요소를 유연하게 재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스템이다. CAD/CAE/CAM, MRP, MES, PDM/PLM 등은 시장에서 구입 가능한 제품/솔루션의 유형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CIM이나 FMS는 그와 같은 솔루션과 신기술이 여전히 추구하고 있는 비전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그와 같은 시스템들이 인터넷 기반, 클라이언트-서버 방식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연결, 통합의 범위가 확대되고 사용자 편의성도 향상되었다. 2000년대에 초소형 컴퓨터, 센서, 초고속/무선/이동 통신 기술이 적용됨에 따라 실시간화가 촉진되었다.
2010년 전후로 AI를 포함한 디지털 신기술이 확산하면서 지능화, 자동화, 무인화가 확대되고 인간 친화적이며 지속 가능한 생산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독일은 2011년 국가 전략 사업으로 차세대 제조시스템을 개발, 보급하기 위한 인더스트리 4.0을 시작하였다. ‘인더스트리 4.0’은 ‘일관 공정, 순차/고정 설비, 중앙집중제어, 유선통신, 비실시간’ 방식인 기존 ‘인더스트리 3.0’과 달리 ‘모듈 공정, 가변/유연설비, 자율/분산제어, 무선통신, 실시간’ 방식이다(박형근 & 김영훈, 2014). ‘일관 공정’은 하나의 제품을 고정된 설비에서 반복 생산하는 것이고 ‘모듈 공정’은 수요에 따라 생산 요소를 재구성함으로써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고도화된 디지털 생산시스템을 가리키는 용어로 스마트 팩토리, 가상물리시스템(CPS), 디지털 트윈, 유연생산시스템(FMS), 자율생산시스템(AMS) 등이 쓰이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지향하는 목표는 큰 차이가 없고 적용 기술이나 수준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Roland Berger(2014)는 차세대 생산시스템이 센서, 3D 프린팅, 첨단 재료, 첨단 제조공정, 자동운송, 스마트 로봇, 사이버 보안,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신/재생 에너지, 사물인터넷(IoT), 대량맞춤 등이 결합된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한다. ‘첨단 재료’에는 3D 프린터로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고품질 & 저가격 재료, ‘첨단 제조공정’ 구현에는 AR/VR/메타버스 등 기술, ‘사이버 보안’에는 블록체인, 양자컴퓨팅 등이 포함될 것이다.
디지털 생산시스템: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팩토리(factory)는 가장 일반적 개념이고 이미 많은 국내/외 기업이 구현한 것으로 ‘사람의 개입이 최소화된 가운데 자율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서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는 지능형 공장’을 가리킨다. 딜로이트의 김억 & 김승택(2015)은 스마트 팩토리를 ‘제조 공장의 리소스를 최적화해서 사람에 의한 변동요소를 최소화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실시간으로 이행되는 운영환경의 공장’으로 정의하고 그 특성으로 능동성, 지능성, 연계성, 민첩성, 신뢰성 등을 꼽았다. 스마트 팩토리는 각종 설비/장비, 작업자, 공정 등에 센서(예: 온도/습도 등 환경, 작업별 상태, 속도 등 감지)를 부착/삽입해서 서로 연결한 후,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서버에 송신해서 최적화된 판단과 작업 지시를 받고 이를 현장에 피드백하는 인프라/플랫폼 위에 구현된다. 스마트 팩토리는 구현기술이나 적용 업무 범위에 따라 5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 국내 기업은 대부분 ‘기초’(1~2등급) 수준이며 일부가 ‘중간’(3등급)에 속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8년부터 선정하기 시작한 ‘등대공장’은 실시간 수준에서 데이터를 수집-분석-활용하고 자율적 판단에 따라 공정을 최적화하는 4등급 이상의 공장이다. 2024년 5월 현재, GE, 지멘스, 슈나이더 일렉트릭, 존슨앤존슨, 우리나라의 포스코, LS일렉트릭, LG전자, 아모레퍼시픽 등을 포함해서 총 153개가 선정되었다.
디지털 생산시스템: 가상물리시스템
가상물리시스템(CPS: Cyber-Physical System)은 2006년 미국 과학재단(NSF)이 주목해서 2009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투자하기 시작한 기술이며 독일은 이를 2011년에 시작한 인더스트리 4.0의 핵심기술로 채택하였다. CPS는 기본적으로 객체 모델링, 시뮬레이션,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 실시간 통신 등을 융합해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두 세계 간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최적화된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CPS는 완성된 개념이 아니기에 앞에 언급한 요소기술 외에도 AI, AR/VR, 메타버스, 로보틱스 등 연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계속 고도화될 것이다. 디지털 트윈(twin)은 CPS 중에서 가상세계 부분, 디지털 스레드(thread)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예: 데이터 교환/공유, 프로세스 일관화/통합)을 각각 강조한 용어이다.
디지털 트윈은 ① 먼저 현실세계 객체의 특성과 동작, 객체간 상호작용 등을 모사한 가상세계를 논리적으로 모델링하고(: build time) ② 현실세계가 가동되어 실제 데이터가 입수되면 가상세계에서 최적 운영방안을 산출해서 현실세계로 피드백하는 식으로 실행된다(: run time). CPS 기반의 유연생산시스템(FMS)은 종래의 FMS와 달리 실시간으로 생산 요청을 받아서 생산계획을 수립-실행하고 결과물을 납품하는 과정을 일관화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CPS 기반의 자율생산시스템(AMS)은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거나 아예 배제된 시스템이 될 것이다. 독일은 CPS를 미래 생산시스템의 중추로 삼아서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을 포함한 전 산업에 확산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CPS는 스마트 팩토리뿐만 아니라 제조업/제품의 서비스화(예: 원격 장비/설비관리), 나아가 에너지, 통신, 의료, 유통 등 서비스 산업의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참조: acatech, 2024). //
참고문헌
∙acatech/ 독일 한림원(2014), Smart Service Welt, National Academy of Science and Engineering.
∙IBM(2011), Digital Transformation, IBM Institute for Business Value.
∙Roland Berger(2014), Industry 4.0.
∙VDMA 등(2016), Guideline Industrie 4.0, May.
∙김억 & 김승택(2015), 유연한 생산체계를 구현하는 스마트 팩토리, Deloitte Anjin Review.
∙박형근 & 김영훈(2014), 인더스트리 4.0, 독일의 미래 제조업 청사진, POS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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