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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현 Apr 11. 2019

4차 산업혁명과 정부 역할 변화

[4IR 4.9] 4차 산업혁명과 경제/사회 변화

행정학 관점의 정부 역할 변화

   정부(Government)는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통치하는 기관으로서 인류 역사와 함께 구조나 운영방식, 역할과 기능 등이 발전해 왔다. 모든 정부는 일반적으로 법/질서 유지, 국민형성, 경제발전, 복리후생, 자원/환경 통제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정부는 국가의 안정화를 위한 치안, 국방, 외교, 규제와 국가/국민 발전을 위한 교육, 건설, 경제개발, 사회개발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정부가 국가 목표 또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방식인 행정(administration)은 관료제를 특징으로 하는 전통 행정으로부터 기업가형 정부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행정으로 전환되고 있다. ‘관료제(bureaucracy)’는 권력이 정부 관료에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지휘통제(command & control)를 통해 국가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관료제에서는 국가 운영을 위한 많은 일을 공무원이 직접 수행하는, ‘노젓기(rowing)’ 식이 된다. 한편, ‘기업가형 정부’란 거버넌스(governance) 즉, 목표 달성을 위한 합리적 리더십과 절차/제도에 입각해서 통치하는 정부를 가리킨다. 이때,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 운영 방향을 설정하고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는 물론,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하위 요소들이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국가 전체가 발전하도록 돕는 역할을 담당한다. 


   정부 역할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국가 차원의 문제 해결을 정부/공공(public sector)이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market) 또는 민간(private sector)이 주도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시장/민간 주도 방식은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역동적 혁신이 가능하고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가 반영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시장을 움직이는 생산자와 소비자, 지원기구 등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는 경제/사회적 성과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불공정 소지가 있고 장기적,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일이 단기적 이해관계에 따라 불안정하게 운영될 수도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반대로, 정부/공공 주도 방식은 공공성/공익성과 안정성이 높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민간에 비해 자원 활용 상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고, 실패를 감수하는 새로운 시도나 도전적, 공격적 개혁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시장 또는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할 때, ‘시장 실패’ 또는 ‘정부 실패’에 이르게 된다. 

 

디지털 혁명과 정부 역할 변화

   정부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정치 내지 경제 이념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통치 활동을 위한 기술 발전에 따라 고도화되어 왔다. 행정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기술 중 대표적인 것으로 전신/전화, 우편, 그리고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1970년대 초부터 부분적인 행정 전산화를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가 기간 전산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에는 전자정부를 구현하기 시작했고, 2011년 3월 이후에는 모바일/스마트 기기를 활용하는 스마트 전자정부로 발전시키고 있다. 전자정부(e-Government)  개념은 1990년대 초,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정립한 것으로 인터넷/웹 기술을 활용해서 행정업무를 통합함으로써, 대국민 서비스, 정보 공개와 국민 참여, 국제협력 등을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UN의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2010년 이후 연속 3회에 걸쳐 세계 1위를 차지하였고 2018년에는 온라인 참여 부문에서는 덴마크, 핀란드와 공동 1위, 전자정부 발전부문에서는 덴마크, 호주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하였다. 실제로 국민들은 각종 민원서류를 PC는 물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신청, 발급받고 있으며(G2C), 많은 정부-기업 간(G2B) 업무, 정부기관 간(G2G) 업무 등이 디지털화되어 있다. 


   디지털 혁명 시대에 정부는 전자정부 인프라 위에서 국가의 제반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가운데 국가 발전에 기여하도록 리드하고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보다 더 효율적,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책무를 갖게 된다. 디지털 기술은 연결과 통합, 지능화/자동화 등을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여러 가지 역기능도 촉발했기에 그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부족할 경우 오히려 더 큰 폐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라이버시 침해, 사이버 범죄 증가, 지적재산권 침해, 디지털 디바이드(즉, 양극화), 불공정 경쟁/거래, 감시사회, 인터넷 중독, 전통적 인간관계나 관습 침해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와 같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각종 법률/제도 정비, 교육/훈련, 기술개발, 산업 육성 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정부부처 간, 나아가 각종 공공/민간단체 간 협업이 성공에 이르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개방적 문화와 연결 인프라는 여전히 미흡한 상태이다. 예를 들면, 정부 내에서는 전자정부 표준 프레임워크를 보급함으로써 IT 인프라 통합은 이루어졌으나 부처/기관별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업무 통합 아키텍처의 설계-구현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 결과, 각종 애플리케이션의 중복 개발, 상호운용성 제약, 유지보수 비효율 등이 발생하고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의 통합이 불가능하거나 늦어지게 된다.

  

4차 산업혁명과 정부 역할 변화

   클라우스 슈밥(2016)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부는 기술 및 사회 변화에 따라 세 가지 즉, 거버넌스, 규제 기능, 그리고 안보/국방 기능이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첫째, 거버넌스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로 신기술과 플랫폼 발전에 따라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을 쉽게 진행할 수 있고 디지털 인프라와 감시장치를 통해 국민들에 대한 통제(력)를 강화할 수도 있게 되었지만, 권력 원천 자체의 재분배 및 분권화로 인해 정책 결정의 주도권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꼽았다. 따라서, 정부는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 투명성, 효율성 등을 확보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규제 기능의 재정립이 필요한 이유로 2차 산업혁명 때 만들어진 지금의 규제 방식(즉, 엄격한 하향식 프로세스, 선형적 & 기계적 실행방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감당할 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 및 시민사회와 긴밀히 협력해서 합리적인 규제/촉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였다. 셋째, 안보/국방 기능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로 점점 더 복합적(hybrid) 위협/갈등(예: 재래식 전쟁기법 plus 비정규전 및 사이버 전쟁)과 새로운 위협 (예: 자율무기, 생물무기)이 등장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전통적으로 정부의 최소 기능인 국방/안보 문제조차 수직적, 폐쇄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수평적, 개방적 논의와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슈밥의 조언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미래의 정부는 새로운 권력의 원천인 기민한 상황판단과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협업에 필요한 리더십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므로 새로운 방식 즉, 민간과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디지털 혁신에 대한 선도적 사례로 에스토니아가 자주 거론된다. 이 나라가 국가 기록의 디지털화, 전자영주권(e-Residency), 전자투표(i-Voting), 스타트업 지원 등 측면에서 모범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1992년에 취임한 마트 라르(Mart Laar) 총리, 2016년 10월에 취임한 당시 만 47세의 케르스티 칼률라이드(Kersti Kaljulaid) 대통령, 그리고 정부 CIO 등이 국가 혁신에 대한 의지와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고, 국민들 또한 그와 같은 정부 정책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성공요인은 인구 130만 명-광주광역시보다 조금 작고, 수원보다 조금 큰 규모-의 작은 나라이며 1991년에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된 신생국가라는 점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독일 등의 디지털 혁신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조정과 수십 년 된 리거시 시스템 및 제도/관행, 그리고 그것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행태를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독일 국립과학공학재단(acatech, 독일한림원)은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함에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이해관계자 간 상호 신뢰 구축, 핵심 용어의 정비/정렬, 기존 표준기구 활동을 통합하기 위한 상향식 맵 설정, 하향식 로드맵 설정 착수, 인더스트리 4.0 자체에 대해 논의할 커뮤니티 구성, 조정/제안/평가/소통 및 동기부여, 참조모형 개발과 실현을 위한 시범과제(‘flagship project’) 추진 등을 제시하였다. 상향식 맵은 리거시 시스템의 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하향식 맵은 국가 차원의 목표지향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혁신과 사회혁신은 특정 기술개발이나 시스템 개발보다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와 소통, 협업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혁신은 정부의 일방적인 지휘통제 방식으로는 실현될 수도 없지만, 정부와 민간의 플레이어들이 각자 제멋대로 목표/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는 더더욱 실현될 수 없다. 

 

융합 시대의 정부 역할 변화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론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제러미 리프킨의 제3차 산업혁명처럼 문명 발전이 기술발전에서 비롯되어 산업경제를 바꾸고 나아가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기술결정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슈밥은 기술이 사회를 바꿀 수도 있지만, 사회가 기술 발전을 조정/제어할 수 있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슈밥의 4차 산업혁명론은 세밀하게 살펴보면, 디지털 기술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과학기술이 융합되어 제품/서비스,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에 사회 차원에서는 갈등과 대결 구도를 절충과 조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이후, 세계 여러 나라가 기술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던 융합(convergence)이 지향하는 바인 것이다. 2013년, 미국 과학재단이 WTEC와 함께 발표, 제안한 새로운 융합 정책/전략인 CKTS(Convergence of Knowledge, Technology for Society)는 10여 년 동안 축적된 나노-바이오-정보기술과 인지과학(NBIC) 기술융합 결과물을 국가와 인류를 위한 제품/서비스/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또는 본격적인 융합 시대를 맞아서 정부는 기술혁신, 산업혁신, 사회혁신 측면에서 종전과는 다른 전략과 접근방법을 구사해야 한다. 기술혁신 측면에서는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독립적, 폐쇄적 연구를 허용하더라도 응용기술과 실용화가 목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철저한 학제적, 개방적 융합연구가 되도록 R&D 투입요소로부터 실행방식, 산출물에 대한 평가와 관리 등을 재정립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율주행차량 관련 기술개발은 공학자들만이 참여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예: 물리, 화학, 생물), 사회과학(예: 경영, 경제, 사회), 인문학(예: 철학), 문화예술(예: 레저, 게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산업혁신 또한, 수직적으로 분할된 전통적 산업 육성 방식을 탈피하고 수평적으로 연계된 미래 산업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기획/계획-실행-평가 방식과 재원 배분 방식을 재정립해야 한다. 사회혁신 측면에서는 새로이 제기되거나 과거에 비해 중요성이 더 커진 과제, 예를 들면, 미래 세대는 물론, 향후 5~10년 동안 산업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주도해야 할 재직자에 대한 교육/훈련, 새로운 일자리 창출, 워라밸을 위한 여가/문화 창출, 범정부 차원 & 정부-민간 간 협업체제 구축, 그리고 그와 같은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제도 정비 등을 해결해야 한다.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이 공저한 ‘4차 산업혁명의 충격’(2016)에서 여러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도해야 할 과제로 로봇의 도덕률 설정, 새로운 사회안전망, 개인정보 보호, 시장실패 영역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시장 창조를 위한 플랫폼 구축과 인센티브 마련 등을 꼽았다. ‘시장실패 영역’은 예를 들면, R&D 측면에서는 기초연구, 사회 문제 측면에서는 기후변화, 청년실업, 비만, 노화, 불평등 같은 문제를 가리킨다.



2018년 6월 말부터 지금까지 4차 산업혁명 논의에서 다뤄지는 기술, 경제, 사회 변화를 총 40개의 글에 담았습니다. 이 글들은 제가 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 과목의 교재로 제공될 수 있도록 보완, 재구성해서 책자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일단 시리즈 글은 여기에서 매듭을 짓고 잠시 쉬었다가 새로운 주제로 게재를 시작하겠습니다. 애독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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