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서비스혁신
[4IR I.5] 4차 산업혁명 크게보기-5
4차 산업혁명을 서비스(service)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것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라고 하면 ‘공짜’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고, ‘산업’ 내지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의례 제조업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Industry'는 실제 좁은 의미로는 제조업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국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는 일찍이(1940년) ‘산업’을 1차 산업인 농/축산/임업/광업, 2차 산업인 제조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 등으로 분류한 바 있다. 언제부턴가 정보, 교육, 의료 등을 4차 (지식)산업으로, 취미, 여가 등을 5차 산업으로, 1, 2, 3차 산업을 모두 포함하는 신개념의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실제로는 ‘눈앞에 다가 온 미래사회로의 대변혁’으로 인식,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업은 포함하고 서비스업은 제외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서비스와 서비스업의 의미
위키백과에서는 서비스를 ‘물질적 재화 이외의 생산이나 소비에 관련한 모든 경제활동을 가리키며, 용역(用役)이라고도 한다’라고, 서비스 사이언스의 거장인 Vargo 등은 서비스를 ‘한 개인/기업이 가진 지식, 기량(skill) 등의 역량(competencies)을 다른 개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무형성(無形性 : 추상적이어서 보거나 만질 수 없으며 운송/전시/저장이 곤란하고), 이질성(異質性: 비표준적이며 가변적), 비(非)분리성(즉, 생산-소비가 동시에, 동일 공간 내에서 이루어 짐), 소멸성(消滅性 : 생산 직후에 사라지므로 재판매 불가능) 등의 특성을 갖는다. 서비스는 누가 제공하는가에 따라 크게 제조업체의 서비스와 서비스업체의 서비스로 나눌 수 있다. ‘제조업체의 서비스(industrial service)’는 제품의 기획-설계-제조-판매-A/S 등 수명주기(life-cycle) 중 어느 한 단계에서 내/외부 고객이나 소비자에게 유상 또는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R&D, 구매/조달, 디자인, 컨설팅, 판매/마케팅, 특허, 재무서비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 통계청은 ‘서비스업체의 서비스’(즉, 서비스업)를 상품 유통(도/소매업), 음식/숙박 제공(숙박/음식점업), 사람/화물 이동(운수업), 메시지 이동(출판, 영상, 방송통신, 정보서비스), 화폐 유통/중개(금융, 보험), 부동산/장비/소비용품 임대업, 전문서비스(법률자문, 회계서비스, 경영컨설팅, 과학기술 서비스 등), 공공/사회 서비스(행정, 국방, 사회보장, 교육, 보건, 복지, 예술, 스포츠, 여가), 개인/가사 서비스(자가소비 생산, 가구 내 고용)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정보통신서비스, 금융·보험, 소프트웨어(SW), 데이터베이스(DB), 컨설팅, 의료, 방송, 문화산업, 엔지니어링/R&D, 광고, 산업디자인, 교육서비스 등을 지식기반 서비스(Knowledge-based Service)라고 부른다.
서비스혁신의 중요성
1980년대 말부터 시장 권력은 (재화를 생산하는) 공급자/기업으로부터 (재화를 소비하는) 수요자/소비자에게로 급속하게 이전되기 시작했다. 이는 여러 가지 교통수단 및 ICT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서 시간,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고 이해관계자(또는 거래당사자) 간 의사소통의 양과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에 기인한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서비스 자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가치(value)를 소비하기에 기업은 제품/서비스를 생산-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간택해 주기를 희망하면서)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을 만들어 전달할 뿐이다. 따라서, 모든 기업은 소비자 가치를 어떻게 효과적/효율적으로 창출, 전달해서 이득을 얻을 것인가를 최상위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서비스는 곧 가치이기에, 또 서비스업은 소비자와의 접점(contact point)에서 가치를 다루는 산업이기에 소비자 주도 경제체제에서 서비스(업)에 대한 혁신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커진다. 서비스혁신에 대한 학계의 연구나 기업의 투자/활동은 제조혁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되었고 더디게 발전되어 왔다. 이는 서비스는 물리적 형상을 가진 제품에 비해 다루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또 오랜동안 '혁신은 곧 기술혁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U가 만든 국가혁신 측정 지침인 Oslo Manual은 1992년 이래 기술혁신(즉, 제품혁신과 공정혁신)만 다루다가 2005년(제3판)에 이르러 비기술(non-tech)혁신(즉, 조직혁신과 마케팅혁신)을 추가하였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서비스혁신의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꼽았던 공유경제(또는 온디맨드 경제, 플랫폼 경제)는 제조혁신이 아닌 서비스혁신의 결과물이다.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 기술인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소셜미디어, 블록체인 등은 서비스혁신의 핵심수단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장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의 FANG(Facebook, Amazon, Netflix, Google)과 애플, 우버, 에어비앤비, 중국의 BAT(Baidu, Alibaba, Tencent) 등은 모두 서비스혁신 기업이다. 서비스혁신의 핵심수단인 SW는 알고리즘과 서비스,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자연과학/공학의 산물로 제조(예: 코딩) 기술이라면, 후자는 경영/경제를 포함한 사회과학의 산물로 서비스(예: 비즈니스 모델) 기술인 셈이다. 두 지식/영역의 융합 없이 고부가가치의 SW가 만들어질 수 없다. 예를 들면, 블록체인은 공개키(또는 비대칭키)와 해싱(hashing) 같은 암호기술, 분산원장(또는 분산 데이터베이스), P2P 네트워크, 참여자 간 합의 알고리즘(예: 작업증명/PoW, 지분증명/PoS) 등이 융합된 플랫폼과 그 위에서 운영되는 신개념의 애플리케이션(예: 암호화폐/비트코인, 물리적/디지털 상품 거래, 각종 거래에 수반되는 지불/결제/인증)이 맞물려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창의적 아이디어와 실험/도전이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혁신의 유형
필자는 서비스혁신을 ‘서비스의 생산(production), 유통(delivery)을 통해 수익을 얻는(capture) 방법을 기술/비기술 혁신을 통해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서비스혁신의 유형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선행연구(예: Miles 1993, Candi 2007)가 있지만, 필자는 최근의 혁신을 포괄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분류하고자 한다.
① (과거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 개발 (예) 1990년대: 오프라인 기업이 온라인 쇼핑몰 개설; 최근: AR/VR을 이용한 가상피팅(옷 입어보기), 가상 관광체험, 드론 택배
② (기존) 서비스 융합
- 서비스+제품 (예) 아이팟+아이튠즈/애플, AI 음성비서+스피커
- 자사 서비스+타사 서비스 (예) 대중교통 통합요금제, IoT 에너지관리+클라우드
- 서비스+IT(SW)(즉, ‘IT 융합’ 또는 ‘SW 융합’) (예) u-헬스케어, 로보 어드바이저
③ 서비스 (생산-유통-수익) 방식 혁신
(예) 생산자-소비자 협업 (온라인/브랜드 커뮤니티를 통한 서비스 개발), 유통채널 통합 (멀티채널, 크로스채널, 옴니채널), 공짜+프리미엄 서비스
④ 제품의 서비스화(servitization), 서비스의 제품화(productization), 제품-서비스 통합(PSS: Product-Service System) 등
⑤ 제조업의 서비스화 (예) 공장 없는 제조업, 서비스 비즈니스 진출 또는 확대
⑥ 신개념 서비스: 플랫폼 비즈니스, 공유경제 모델, 크라우드 활용 비즈니스 등
위 ①~⑥의 분류는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즉, 하나의 서비스혁신이 여러 가지 유형에 속할 수도 있다. ①~③은 이론적/논리적으로 도출한 top-down 식의 분류(이를 typology라고 함)이고 ④~⑥은 실제 사례를 유형화 한 bottom-up 식의 분류(이를 taxonomy라고 함)이다. ‘제품의 서비스화’ 예로 클라우드(cloud) 서비스처럼 컴퓨팅 자원을 일시불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접속해서, 필요한 만큼 사용한 후,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는 (‘pay-per-use') 것을, ‘서비스의 제품화’ 예로 공연 실황을 CD에 담아 판매하는 것을 들 수 있다. PSS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가치에 주목해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분 없이 하나의 솔루션으로 설계-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공장없는 제조’란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애플, 의류업체인 홍콩의 리앤펑, 안경업체인 와비파커처럼 제조 자체는 전문기업에 아웃소싱하고 상품기획, 마케팅 등에서 핵심역량을 확보함으로써 높은 영업이익률을 실현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서비스의 생산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양쪽 고객/시장(이를 ‘兩面시장’이라고 함)을 상대로 별개의 수익모델을 적용하는 비즈니스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구글의 검색서비스나 페이스북 광고는 광고주에게는 유료, 사용자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애플의 앱스토어, 구글의 플레이스토어도 여기에 속한다. ‘공유경제’(sharing economy)란 원래 자기가 쓰지 않는 물자나 공간을 다른 소비자와 (대가 없이) 나눠 쓰는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혁신기업은 이를 수익사업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자동차/수송, 호텔 산업의 오랜 강자들을 퇴출시키고 있다. ‘크라우드(crowd) 활용 비즈니스’는 서비스업에 국한된 것은 아닌데 제품/서비스를 개발-생산-판매함에 있어서 외부 전문가/大衆(crowd)의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티셔츠 업체인 쓰레드리스(Threadless), 주문형 자동차 제조회사인 로컬모터스(Local Motors) 등이 여기에 속한다. 쓰레드리스는 공장이 없는 제조, 로컬모터스는 오픈소스 HW, 3D 프린터 등을 활용한 마이크로(micro) 제조를 구현한 기업이다.
미국과 독일의 서비스혁신 동향
서비스업은 몇 가지 점에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산업이다. 첫째, 산업 구조 측면에서 볼 때, 서비스업은 선진국형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GDP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80% 수준임에 반해 우리나라는 60%, 중국은 50% 수준이다 (반면, 제조업 비중은 우리나라가 30%, 중국이 28% 수준이다/ 2016년 기준). 둘째, (인적 자본의 비중이 큰) 서비스업은 (물적 자본의 비중이 큰) 제조업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는 2배 정도지만, 생산성은 절반 이하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약 50%, 일본의 80% 수준이다.) 셋째, 일반적으로 서비스업의 영업이익률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보다 높다. 이에, 제조 강국인 미국, 독일은 물론, 핀란드, 중국, 일본 등 대부분 국가의 정부는 산업 전체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한편, 서비스업 자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여기에서는 미국, 독일의 동향만 소개하고, 핀란드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동향에 대해서는 추후에 살펴 보기로 한다.)
미국은 제조업의 비중은 12% 정도로 작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정부-민간 협력 방식(PP)의 제조혁신 R&D를 추진하고, 그 결과물을 창의적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가진 기업/기업가들이 제품/서비스혁신에 활용하는 식의 역할분담을 이룩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국가경쟁력위원회는 2004년 12월, 서비스 사이언스를 국가 차원의 혁신 방법론으로 채택하였고, 민간 쪽에서는 디자인 싱킹을 전파하고 있다. 서비스 사이언스는 2002년 IBM 알마덴 연구소와 UC 버클리가 공동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고객과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공동창조(co-creation)하기 위해 자원 즉, 사람, 기술, 조직, 정보 등을 역동적으로 구성하는 원리와 기법을 연구하는 학문 영역(Maglio & Spohrer, 2007)’이다.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은 스탠포드大 디자인학부(‘d.school’)와 IDEO社가 발전시켜 온 창의적 디자인 기법으로 세계적 선도기업(예: 애플, 시스코, GE, IBM, MS, 나이키, 삼성 등)이 활용하고 있다. 디자인 싱킹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고객의 욕구를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공감(Empathize), 디자인(Design), 아이디어 도출(Ideate), 프로토타이핑, 테스트 등의 과정을 반복한다.
제조업의 비중이 27% 정도인 독일은 서비스혁신보다는 제조혁신을 중시해 왔지만, 최근 미국처럼 제조혁신의 결과물을 서비스혁신에 적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연방정부는 Industrie 4.0을 포함하는 ‘Digital Technologies' 프로그램에서 ‘신뢰성 높은 클라우드 서비스’(Trusted Cloud), 스마트 데이터, ‘스마트 서비스 활용’(Smart Service Welt), ‘중소기업을 위한 자주적 & 시뮬레이션 기반 시스템’ 등 서비스혁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참조: Mattauch, 2016). 2015년부터 2021년까지 I, II 단계로 추진되는 'Smart Service Welt’ 사업은 IoT, 빅데이터 분석 등을 지원하는 디지털 플랫폼과 여러 가지 스마트 서비스, 예를 들면, 제조업의 서비스화를 위한 예지정비(Predictive Maintenance), 운영최적화, 가치사슬통합, 기술자료거래 서비스는 물론, 물류/에너지/농업/의료 서비스용 기술개발과 시범사업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