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IR I.4] 4차 산업혁명 크게보기-4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론은 2000년대 이후, 미국, EU, 독일 등에서 진행된 여러 가지 정책 및 사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4차 산업혁명론에는 제조혁신, 서비스혁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DX), Industrie 4.0, 가상물리시스템(CPS), 산업인터넷(IIoT: Industrial IoT),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서비스, 기술융합, 제품/서비스/산업 융합 등의 개념이 직/간접으로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위 용어/개념들이 구분 없이 또는 부정확하게 쓰이는 것을 자주 보았기에 이후 몇 개의 글을 통해 각각의 의미와 4차 산업혁명과의 관계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4차 산업혁명은 이들 전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는 국가/기업의 전략 수립 과정에서 결정할 문제인 것이지 개념 정의 단계에 선택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제조혁신은 (1) 형상을 가진 물리적 제품의 기능/성능, 품질, 디자인, 사용편의성 등을 개선하는 제품혁신(product innovation), (2) 완제품을 만들기 위한 가공-조립-검사에 소요되는 비용/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공정혁신(process innovation), 그리고 (3) 사업방식 즉,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혁신(BMI: Business Model Innovation) 등을 포함한다.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이 신기술을 활용하는 기술혁신임에 반해, BMI는 비기술(non-technical) 혁신에 속한다. 제조업의 BMI 예로 제품을 서비스로 판매한다든지(예: 롤스로이스 사의 항공기 엔진 리스 판매), 제조 자체는 아웃소싱하고 제품기획이나 마케팅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예: 애플의 스마트폰 제조) 등을 꼽을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제조혁신은 급속히 발전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초고속통신망, 모바일 기기, 3D 프린팅, AR/VR, 로봇 등을 활용해서 제품 또는 공정을 지능화/자동화, 가상화, 실감화, 실시간화 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화학, 생물학, NT, BT 등 기술 발전에 따라 등장한 신소재의 적용이나 초미세물질 가공 등을 통해 제품 또는 공정의 경박단소(輕薄短小)화, 친인간화, 친환경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넘기면서 미국, 독일 등 전통적 제조 강국들은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제조업의 부흥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우,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 President’s Council of Advisors on Science and Technology)는 2011년 6월, 과거 100년 이상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미국 제조업이 GDP 기여와 고용 측면에서 침체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첨단제조전략(AMI: Advanced Manufacturing Initiative) 추진을 제안하였다(참조: PCAST, 2006). 이 제안에는 제조혁신을 (과거처럼 정부가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민간 협력(PPP: Public-Private Partnership) 방식으로 추진하고, 제조업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조세정책을 개선하며, 과학재단(NSF), 에너지부(DOE), 표준기술연구소(NIST) 등을 통한 R&D 지원을 늘리고,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을 강화해서 고급 노동력을 육성하라는 것 등이 포함되었다. 그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6월 24일, 첨단제조협력(AMP: Advanced Manufacturing Partnership) 사업을 시작하고 정부쪽에서는 NIST, 민간쪽에서는 Dow와 MIT가 주도하는 국책사업단(NPO: National Program Office)을 출범시켰다(참조: NIST, 2012).
AMP 사업은 기술개발, 공유 인프라(Shared Infrastructure) 구축, 공공정책 (개선), 교육/고용개발, 대내/외 협력(outreach) 등 5개 영역의 활동을 포함한다. ‘기술개발’은 고수준 센싱/공정제어, 신물질 설계, IT, 에너지 효율 보장 제조, 나노 제조 등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처럼 미국의 제조혁신 사업은 기계/전자 기술은 물론, IT(SW), 재료/소재, 에너지, NT, BT 등의 융합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공공정책’ 측면에서는 세제, 규제, 지식재산권 등에 대한 개선 작업이 추진되었다. ‘공유 인프라’는 대학/연구기관의 R&D와 기업의 제품/공정 혁신을 연계시키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국가제조혁신네트워크(NNMI: National Network for Manufacturing Innovation) 사업을 통해 2013년 이후 전국에 15개의 제조혁신센터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한편, NIST는 1988년부터 중소기업을 위한 PPP 사업인 MEP(Manufacturing Extension Partnership)를 추진해 왔는데 2017년에는 2만 6천여개 제조업체가 126억불의 매출, 17억불의 비용절감, 35억불 신규 투자 확보, 10만개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출처: https://www.manufacturing.gov).
EU도 미국과 비슷한 이유로 2012년 PPP 방식의 미래공장(FoF: Factory of the Future) 사업을 시작하였다. FoF는 유럽미래공장연구조합(EFFRA: European Factories of the Future Research Association)이 주관하고 있으며, IT와 OT(Operational Tech., 운영기술)의 융합을 통한 제조혁신을 목표로 한다. 참고로 OT란 제품 생산용 기계/전자 장치를 제어하는 기술(예: PLC, SCADA, 수치제어)을 가리킨다. FoF에서 IT는 ERP를 통한 가치사슬의 가시성, 모바일을 통한 사회적 연결성,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한 기민성, 빅데이터의 유용성, CRM을 통한 고객 중심성 향상에 기여하며, OT는 로보틱스에 의한 자동화, CAD/CAM을 이용한 제품 및 제품구성 혁신, 3D 프린팅을 통한 폐쇄형 품질통제, 모듈화/컴포넌트화를 통한 주문-납품 효율 향상, IoT/SCM을 이용한 조달/물류관리 업그레이드 등에 기여한다(참조: Infor, 2016). ‘IT와 OT의 융합’은 디지털/가상계와 물질계의 융합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실체는 가상물리시스템(CPS)에 기반한 여러 가지 스마트 시스템, 예를 들면,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자동차, 스마트 홈,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 도시 등으로 나타난다.
독일은 2006년 메르켈 수상 집권 후 첨단기술전략(HTS: High-Tech Strategy)을 수립하였고 그 후 4년마다 즉, 2010년, 2014년에 이를 업데이트하였다. HTS 2006은 독일 최초의 포괄적 국가기술전략으로 3개 영역 17개 주제의 R&D 사업이 포함되었다. (1) 국민생활 안전/건강 영역에서는 의료, 안전, 농업, 에너지, 환경, (2) 통신과 이동성 영역에서는 ICT, 운송/수송, 항공, 우주, 해양, 지식서비스, (3) 첨단기술 영역에서는 NT, BT, 마이크로시스템, 광학, 소재, 생산 등이 포함되었다. 2010년에 재정립된 HTS 2020에는 기후/에너지, 건강/섭생, 이동성, 안전/통신 등 5개 영역의 11개 사업 즉, 친환경도시, 지능화된 에너지 공급체계, 재생가능 소재, 개인화/맞춤의료, 건강/다이어트, 노인의 독립적 삶, 전기차 100만대 보급, 통신망 보호, 저전력 인터넷 등이 포함되었다. HTS 2006이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광범위 한 주제에 대한 technology push(즉, 기술개발 후 상업화 모색) 방식의 기술혁신이었다면, 2010년의 HTS 2020은 시장/수요가 높은 주제에 대한 market pull(즉, 상업화를 목표로 한 기술개발) 방식의 기술혁신이라 할 수 있다. 2014년에 업데이트된 New HTS는 5개 영역 즉, 디지털 경제/사회, 지속가능경제와 에너지, 혁신적 작업장(workplace), 건강한 삶(활동적/독립적 삶), 지능화된 수송체제, 시민 안전 등에 대한 10개 사업으로 재정립되었고 이때, 인더스트리 4.0, 기업/산업용 인터넷 서비스, 개인식별정보 보안 등 사업이 포함되었다. New HTS에서 주목할 점은 ‘가용 자원의 통합과 기술(R&D)-혁신(I) 전환 촉진’이라는 정부 방침이다. 이는 “혁신은 상이한 학제, 주제, 관점 간의 교차점에서 발생한다”는 인식에 따라 기업 간, 대학 간, 연구소 간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R&D&I 단계 간 전환이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의 HTS는 지난 12년간, 부분적인 업데이트는 있었지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국가 기술/산업 정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우리나라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식경제, 녹색경제, 융합경제,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Industrie 4.0 (이하 ‘I40’)은 독일 정부-민간의 제조혁신 전략이며 2011년에 작성된 HTS 2020 실행계획에 포함된 국책 사업 중 하나이다. I40이란 용어 자체는 2011년 4월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보쉬사 경영위원회 부의장인 지그프리드 다이스(Siegfried Dais)와 독일공학한림원(acatech) 헤닝 카거만(Henning Kagermann)이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Proto Labs, 2016). 이는 제3차 산업혁명(‘3.0’)이 IT 기반의 제조혁신이었던 것과 달리, 제4차 산업혁명(‘4.0’)은 IT와 OT가 융합된 CPS가 중심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I40은 2011년 초 BITKOM(디지털협회), VDMA(기계/시스템공학협회), ZVEI(전기/전자산업협회) 등 민간 주도로 시작되었고, 워킹그룹을 통해 2013년 4월에 실제 구현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더딘 표준화, 보안정책 미비, 중소기업의 거부, 관련 인력 부족 등의 문제점이 제기됨에 따라 2013년 4월 이후 연방정부 경제통산부(BMWi)와 교육과학부(BMBF)가 주도하는 Platform Industrie 4.0으로 재정립되었다. 새로운 전략은 기존의 제품/기술 중심, 연구 중심, 이론 중심, 효율 중심의 접근방식과는 달리 고객 중심, 비즈니스 모델 중심, 실제 적용, 연결과 통합을 통한 효과성 등을 지향한 것이다(참조: 김상윤, 2015). Platform I40은 2010년대 초 미국에서 발원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과 2014년에 설립된 산업인터넷컨소시엄(IIC: Industrial Internet Consortium)의 접근방식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BMWi(2016)는 Platform I40의 목표가 ‘Made in Germany'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조업 전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조정하는(coordination) 데 있다’고 하였다.
PwC는 I40 구현에 필요한 핵심기술로 IoT, 3D 프린팅, 스마트 센서, 빅데이터와 분석 알고리즘, AR/웨어러블, 클라우드, 모바일 기기, 위치인식,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인증/사기탐지, 고객 상호작용과 프로파일링 등을 꼽았다. 즉, I40과 4차 산업혁명은 모두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I40 플랫폼은 (1) 주문/조달, 생산, 물류, 마케팅, AS 등 기업 가치사슬을 수평적으로 통합하고 (2) 센서, 액추에이터(구동장치), 장비제어, 제조실행(예: MES), 생산관리, 전사계획(예: ERP) 관련 정보시스템들을 수직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은 I40 플랫폼을 활용해서 디지털화된 제품/서비스, 공정, 비즈니스 모델, 고객채널 등을 구현하고 대량 맞춤생산(Mass Customization) 내지 개인화 생산-판매를 실시함으로써 매출/수익 증대, 노동/작업의 질 향상 등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IIC는 2014년 3월, GE, Cisco, IBM, AT&T, Intel 등이 ‘사람, 공정, 데이터와 (지능형) 객체의 연결-통합이 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공통의 아키텍처, 상호운용성, 개방형 표준 등을 적용한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을 발전시킬 것’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이다(참조: https://www.iiconsortium.org/ ). ‘산업인터넷’은 일반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예: 가정 내 조명/난방 제어 같은 B2C)가 아니라 제품의 생산-유통을 포함한 수명주기활동에 참여하는 파트너 간에 정보를 교환-공유하기 위한 기업용(즉, B2B) IoT 서비스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GE는 자사가 제조-판매한 발전기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고 원격으로 정비/유지하는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는데 이때 GE 본사와 전 세계에 있는 발전기 사용업체를 연결한 것이 산업인터넷이다. GE의 제프 이멜트 회장은 산업인터넷을 초연결, 지능형 기계, 데이터 민주화, 향상된 분석-예측 알고리즘, 그리고 이 모든 기술을 이용하는 작업자 등으로 구성된 ‘5足 의자’(a five-legged stool)라고 하였다(Proto Labs, 2016). 고수준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그런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작업자의 육성/훈련, 그리고 직원/파트너와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 등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I40 플랫폼이나 미국 IIC의 산업인터넷은 동일한 목표를 가진 2개의 R&D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와 같은 플랫폼은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의 이질성(heterogeneity), 분산성(distribution), 자주성(autonomy) 등이 인정되는 가운데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분산(객체)컴퓨팅 분야에서 오랜동안 연구되어 온 주제인데 복잡성이 훨씬 더 커진 IoT 문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아키텍처 표준 설정, 실제 적용을 통한 보완 등이 필수적이기에 다양한 기술/산업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IIC는 2015년 6월에 IIRA(Industrial Internet Reference Model), Platform I40은 2016년 4월에 RAMI 4.0(Reference Model for Industrie 4.0)이라는 참조모형(또는 아키텍처 표준)을 제정하였고 양 기관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IIC는 2016년 11월 기준, 258개 회원이 참여하고 있으며(출처: 위키피디아) 정부기관(: MITRE), 통신(: 시스코, AT&T, 블랙베리), 솔루션/부품업체(: 보쉬, 후지쓰, 인텔, MS, HP, PTC, NEC), 표준기관(: OMG, ITRI, TIA, The Open Group), 연구기관(: 핀란드 VTT, DRAPER), 대학(: CMU, Auburn, 존스홉킨스), 제조업체(: 후지필름, 삼성, 델, GE), 빅데이터(: IBM, Datawatch), 보안(: 시만텍, 베리사인), SI(: 딜로이트, 액센추어, 타타) 등 다양한 영역의 산학연이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요약하면, 미국, EU, 독일 등은 종래의 기계/전자 시스템에 대한 제어기술(즉, OT)에 최신의 디지털 기술(또는 IT)이 융합된 CPS를 구현해서 실시간 맞춤/개인화 생산-판매가 가능한 제조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방향 즉, 정부-민간 협력을 통한 미래/첨단 제조혁신 R&D와 GE나 지멘스 같은 선도기업이 새로운 제품/서비스, 공정, 고객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제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제조혁신 정책/전략이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충분히 파괴적일 것이다. 제조혁신은 1차적으로는 제조업이 대상이지만, 그 결과물은 서비스업을 포함한 전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 이종 기술 간 융합은 물론,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국가, 기업, 노동자, 전문가, 소비자/이용자들을 연결하는 리더십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