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ukbo Jul 28. 2020

To infinity and beyond

내가 봤던 수많은 영화의 장면 중, 아직도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토이 스토리 1편에 나온다. 앤디의 새 장난감 버즈는 자신이 외계에서 불시착한 우주 전사인 줄 알지만, 나름의 악역(?)인 시드의 집에서 TV 광고를 통해 자신이 한낱 장난감에 불과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대단한 존재였던 것만 같던 시절의 끝에,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어쩌면 더 볼품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버즈와 다르게 시드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버즈는 시드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버즈를 시드의 집에서 빠져나오게 만든 것은 그의 발에 쓰여진 앤디의 이름과 그것을 깨닫게 해준 우디였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에게 사랑을 준 앤디였다.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책임감을 생기게 한다. 나에게 사랑을 준 사람에게, 자신이 사랑을 나눠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내가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것이 버즈에게 자신이 우주 전사라고 믿었을 때와 다른, 새로운 삶과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폭죽을 이용해 이사를 가는 앤디를 쫓아가며 버즈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지게 추락하는거야!’ 무엇이든 영원히 날 수 없다. 결국에는 추락이다. 우리도 결국 끝은 죽음이다. 심보선이 말했던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자는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이다. 차이점은 버즈는 ‘멋지게’ 추락하는 중이었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자는 울고 있었다. 사랑으로 자신이 누군지 깨닫게 된 버즈였기 때문이다.


그 어떤 대단한 인생도 추락한다. 핵심은 얼마나 ‘멋지게’ 추락할 것인가다. 어떻게 죽어가야 할 것인가? 먼저 자신이 누군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기억이 안 나거나, 버즈처럼 자신을 잃었다면 새로 찾으면 된다. 사랑받고 있는 자신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를 도와줄 우디 같은 친구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