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연구실 행정 선생님의 둘째 딸이 올해 고3이었는데, 의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고, 또 잘하는 친구라고 한다. 치열한 10대를 보냈을 거다. 얼마 전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다 같이 스케이트장을 갔는데, 다들 스케이트를 잘 타는데 자기만 타는 방법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속상하고,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털어놓았단다. 이 얘기를 해주시는 선생님의 표정엔 알게 모르게 씁쓸함과 미안함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나는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스케이트를 못 타서 시무룩해하는 선생님의 둘째 딸과, 그래도 같이 타려고 잡아주려는 친구들을 상상했다. 손을 잡아주기도 했겠지. 그날 그곳에 우연히 같은 스케이트장에 있었던 모르는 누군가가, 첫걸음을 떼는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선생님의 둘째 딸은 첫 스케이트를 탄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면 얼음 위에 흩어지던 빛의 난반사와, 넘어져 마주한 구름의 모양까지도. 그리고 나와 선생님과 다른 연구실 형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살아가며 처음 겪어보게 될 일은 이미 겪어본 것보다 훨씬 많을 테니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스케이트와 아마 비슷해서,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온기를 말미 암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