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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Jul 17. 2021

스물다섯, 스물둘

죽어도 상관이 없는 것과 여한이 없는 것은 달랐다. 그냥 내 경험이다.


당장 오늘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대신 방식은 자연사면 좋겠다.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냥 그게 제일 편하게 죽는 법이라고 하더라고. 자기 전에는 보통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있다는 것에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진짜로 별로 상관이 없었다.


점심이 지난 시간에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알림도 없는 메신저를 켰다. ~외 몇 명으로 겨우 속한 채팅방과 나를 가장 친절하게 대해주는 광고들, 내 관계의 깊이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화면이었다.


주섬주섬 옷을 꺼내입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본다. 온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듯 찝찝한 느낌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잘 씻지 않았고 빨래도 잘 하지 않았다. 대충 감은 머리와 세수는 하지 않은 얼굴. 우리 엄마의 표현으로 쩐내가 나는 옷과 슬리퍼. 나의 상태가 요약된 모습이었다. 잘못 보관해 냄새가 나는 돼지고기와 같았다.


의외로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제기랄, 왜 그랬을까. 나는 우울하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세상은 외롭고 차가운 곳이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그들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다. 나를 향한 친절은 자선과도 같았겠지. 동정과 자기만족은 동의어였으니까. 더러운 놈들, 나도 친절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 수업도 가고, 과제도 했고, 시험공부도 했다. 혹시나 내가 안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일종의 보험이었다.


점심이 지난 시간에 눈을 떴다. 샤워를 했고, 섬유유연제 냄새가 폴폴 나는 옷을 입고, 간단한 점심거리를 샀고, 쨍한 햇빛을 받으며 출근을 했다. 열심히 일했고,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퇴근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땀이 젖어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렸고, 에어컨을 틀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도 했다. 여름이었고, 개운했고, 선선했고, 나른한 듯 기분이 좋았다. 젠장, 아직 죽지 않았다. 3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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