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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Jun 09. 2021

16/24,

가끔은 나 자신이 중간중간 끊어진 영화필름 같았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영어 선생님들의 상징과도 같던 시절이 있었다. 테이프를 넣고 재생을 누르면 소리가 나왔는데, 끊기거나 떨리는 현상이 꽤 있었다. 장치의 문제라면 다른 플레이어를 사용하면 되지만, 테이프에 흠집이 생겼거나 늘어진 경우도 많았다. 영화필름도 비슷했다. 1초에 24장의 프레임이나 찍히지만, 문제가 되는 프레임이 있으면 장면이 어색하게 넘어갔다.


영어 선생님들이 카세트 플레이어를 점점 안 들고 다니기 시작하던 때, 영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기 시작할 즈음이었고, 나는 이때 말을 더듬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나, 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말을 더듬기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던데. 누군가는 그저 생각이 말보다 빠른 사람이라고 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놀림의 대상이기도 했다.


말 더듬는 것쯤이야, 근데 더듬음이 원래 전염되기도 했었나. 더듬음이라는 말이 있긴 한가. 가끔은 진짜 내가 뭐랄까, 아래 화살표가 잘못 눌러진 엑셀의 무한히 내려가는 스크롤처럼, 멍 때리는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가끔은 진짜 나 자신이 중간중간 끊어진 영화필름 같았다.


놀림 때문에 속상해했고, 왜 이럴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뭐, 오히려 이게 더 내가 가진 속성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까지 든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영화도 있다는데. 보기 조금 불편하다고 문제 되는 프레임을 모두 다 잘라버린다면 영화는 볼 수조차 없을 테니까.


스텝 프린팅의 비스타비전. 나는 진짜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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