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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kbo Sep 12. 2021

회피

어느 순간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버릇이 싫었다. 아니, 그보다 내가 왜 걸음을 멈추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할까. 내가 보냈다고 생각한 이들은 사실 그들이 나를 보낸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은, 내 집착과 미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장막은 설국이 아닌 살짝 언 호수의 살얼음에 가까웠고, 이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냉기였다. 자신의 약한 온기와 만나는 곳에서는 소용돌이가 피어났다. 자신의 눈에는 그마저도 아름다워 보였지만 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짜낸 온기로 눈물마저 말라붙은 순간, 박빙에 빠져 사라지는 듯했다.


‘당신은 타인이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을 원망하기보다, 혹시나 자신이 타인을 못 알아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책임을 회피하며 나는 웃었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웃는 나를 보며 그 사람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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