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본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점입가경이다. 한국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이란 이름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나눠준다는 말은 평생 처음이다. 돈을 준다는데도 불평불만이 쏟아지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까짓 것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사람도 있고, 세금을 그렇게 낭비해도 되느냐며 악다구니를 퍼붓는 사람도 있다. 성조기 들고 시위할 정도로 좋아하는 미국이 주는 돈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한데 왜 반대할까?
코로나바이러스를 독감보다도 못하다고 깎아내리던 트럼프가 이제는 10만 명대의 사망자만 내고 종식할 수 있으면 ‘매우 잘한 일(very good job)’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는 뉴스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초딩다운 발언이다. 도람뿌의 좋은 점을 굳이 꼽자면 초딩 수준의 언어다. 영어가 아주 짧은 나조차도 ‘We’ll see what gonna happen’ 같이 그가 하는 말은 알아듣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
한국의 대통령이 그 비슷한 말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손바닥 위 손금 보듯 명확하다. 하루 전에는 뉴욕과 뉴저지 전체, 코네티컷 일부를 봉쇄하겠다고 했다가 몇 시간 후에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도람뿌 같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은 지금 쪽팔린 것을 깨닫기나 할까?
2주 연속 주말을 연도에서 보냈다. 선착장 매표소 입구마다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되어 출입자의 체온을 재고 있었으나 왠지 형식적인 느낌이었고, 마스크 없이 입장해도 입구에 붙은 안내문과는 다르게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밖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는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배를 타고 선실에 들어도 비슷했다. 나는 마스크를 턱밑에 걸쳐 시늉만 하고 답답함을 피했다.
지난 수요일인 25일 미국 뉴욕에서 돌아온 이웃에게 전화했던 것은 차라도 마시러 방문할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하루만 늦었어도 시설에 하루나 이틀 격리될 뻔했다며 웃었다. 엘에이에서 하루 늦게 도착한 ‘PS’님에 비하면 운이 좋았다. 그분은 현재 철저하게 자가격리 중이다. 먹을 것을 포함 필요한 생필품은 이웃에게 전화로 부탁하고, 이웃은 산 물건을 아파트 현관에 갖다 놓는다고 한다. 이제 겨우 4일이 지났으니 10일을 더 그렇게 지내야 한다. 그야말로 ‘Law abiding citizen’이니 찾아가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서울에서 온 가족들은 오동도에서 케이블카를 탔고 나는 반대편에서 기다렸다. 평소 주말이라면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탈 수 있는 것이었으나 다섯 대 가운데 네 대는 빈 채로 출발했다. 돌산공원의 전망대에도 사람이 없어 휑했다. 벚꽃만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공포를 느끼는 인간 세상을 비웃는 듯 여기저기 만개하여 화려한 색깔을 뽐냈다.
여수의 유명한 맛집에 갔다. 점심시간에는 번호표 받고 3~40분 기다리는 곳이라서,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정오 전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빈 좌석은 있었으나 거의 만 원이었다. 테이블 간격은 예전 그대로였으며, 음식을 먹으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즐겁게 식사하고 있는 손님 누구도 코로나바이러스 따위를 걱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밖에는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손님 수십 명이 보였다.
여수의 현실은 뉴스에서 보여주는 위기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리의 행인들만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뉴욕에서 온 이웃에 의하면 뉴욕 아들 집에 있는 한 달 동안 거의 집에서만 지냈다고 한다. 그 복잡한 맨해튼에도 사람을 볼 수가 없으며 JFK의 주차장이 텅 비었고, 4번 터미널에는 아시아나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 외에는 볼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세계 곳곳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는 중인데, 이곳 여수는 예외인 것만 같다.
어제는 어떤 분으로부터 전화를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금오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전화를 했더니, 뉴저지에서 만났다며 자신을 소개하고는 미용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곳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무서워 꼼짝하지 못한다며 갑갑함을 호소했다. 바람 쐬러 여수에 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여성분이라 오해할까 두려워 참았다. 남자라면 집에서 같이 지내도 될 텐데.
인구 900만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 스위스의 확진자가 한국을 추월했으며 사망자 수는 백 명 이상이 많고,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작은 나라마저 사망자는 한국의 몇 배에 이르렀다. 한때 중국 다음으로 감염자가 많았던 한국은 이제 10위권 밖으로 추락(?)해서 별 볼 일없게 되었다. 외교적 통보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국경 봉쇄조치를 취하여 한국을 당황하게 했던 이스라엘도 하루에 수백 명씩 확진자가 급증하여 한국을 조만간 추월할 기세다.
시간이 문제일 뿐 국경 폐쇄나 봉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아직까지 중국인 입국 금지 운운하는 정치인이나 몰지각한 인사들이 가소롭다. 세계가 칭찬 일색인데도 비난하고 스스로 깎아내리는 데만 열을 올린다.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문가들이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5년 전에는 메르스 진원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기록한 한국의 문제점을 조사해서 조언을 주기 위해, 이번에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모범국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방문했다.
며칠 전에는 104세 할머니 확진자가 호전되고 있다는 뉴스까지 있었으니 한국의 세계적 의료 수준은 자랑할 만하다.
천만이 약간 넘는 인구를 가진 스웨덴의 대응이 재미있다. 한국처럼 관리하지도 않고, 다른 나라처럼 봉쇄하거나 이동을 제한하지도 않으면서, 국민 전체에 집단면역이 생기도록 유도한다고 BBC가 전했다. 어차피 걸릴 전염병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사람에게 항체가 생길 때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감염을 늦추는 방식인데, 그때까지 발생하는 일부 인명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보기)
한국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했다면 어떻게 될까? 나라 전체가 뒤집히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후기>
(한국시간으로) 어제 뉴스를 보고 생각나 썼던 글을 오늘 아침에 정리해서 올립니다. 밤사이에 새로 나온 뉴스가 기막혔습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17살짜리 한인 고교생이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해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104세 할머니도 살리려고 의술을 동원하는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며,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입니다.
갑자기 역이민 한 제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