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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Dec 01. 2016

탄핵정국을 보며

'대통령 탄핵'이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라 그런 정도의 일로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결국 닉슨은 탄핵받기 전에 사퇴함으로써 탄핵되지 않았고, 따라서 유죄판결도 피할 수 있었으며, 240년이 넘는 미국 역사상 아직까지 탄핵된 대통령은 기록되지 않고 있다.


십수 년 전 미국에 살면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사를 접했으나, 한국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뭐 이런 걸 가지고 탄핵을 운운하나?'라고만 생각했다. 촛불집회를 하며 탄핵을 반대하는 민심을 도외시하고 국회는 탄핵을 가결했고, 그 여파로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까닭도 없이 통쾌했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내가 역이민 하여 제주에서 살게 된 계기는 2008년 경제위기로 인한 직장에서의 레이오프였다. 그리고 2년 가까이 미국에서 서바이벌을 위해 나름 애를 써보았지만 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고, 그 사유를 3년 전에 쓴 '역이민 하지 마세요!'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혔었다.


"역이민을 한 이유는 순전히 내 '무능력'이 주된 이유이었다. 항상 어려움을 느끼는 '언어', 웬만한 비즈니스는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진 것이 많아 놀고 지낼 수도 없는 '재산',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재취업하기에도 어정쩡한 50대 중반의 '나이', 책상에 앉아서 입과 펜으로 하는 일만 했지, 육체노동은 한 적이 없는 무기력한 '경력', 온갖 역경을 헤치고 성공을 거머쥔 사람이 주로 가지고 있는 불굴의 정신이나 용기도 없는 '정신력' 그리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픈 '뻔뻔함'조차도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내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었다. 미국 역사도 공부했고 각종 인문학 책도 읽었으며, 그때까지 문외한이었던 시사와 정치, 경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런 원인으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 탄핵정국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6년 전 내가 돌아왔을 때는 MB가 대통령이었고, 나는 그의 팬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가난 속에서 성공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 아닌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홀아비 심정은 과부가 안다고 하지 않던가. 어려움과 가난을 경험한 사람이니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힘없고 빽 없는 민초들을 위한 정치를 할 거라고 굳게 믿었었다. 게다가 전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으니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희대의 사기꾼'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대건설의 임원을 지냈던 분과 가까운 도치형님으로부터 그에 대한 과거 이야기를 들었어도 반신반의했지만, 민간인 사찰, 청계재단 꼼수, 내곡동 사저 등 그의 위선이 드러나면서 참 많은 사람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우리는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가 라는 의문으로 '진실 바라보기'라는 제목으로 8편의 글을 쓴 게 4년 전 여름이었다. 가급적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척 약하게 표현한 글이었지만, 굳이 시간을 냈던 것은 정치가 아무리 혐오스럽더라도 정치가 대중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것이라는, 새로 생긴 신념 탓이었다.


우리는 왜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가? 특히 정치인에 대해서는 더 그런가? 내가 이해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다. 속이지 않으면 당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47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를 보면 쉽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멕시코 정부의 돈으로 장벽을 세우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그에게 표를 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선된 다음날부터 그는 자신이 했던 공약을 후퇴시키거나 뒤집고 있지 않은가.


▼ 트럼프의 거짓말에 속은 러스트 벨트의 저학력 백인 남성 노동자들


4년 전 박근혜 씨가 당선될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이명박에게 그만큼 속았는데 어떻게 또 속는단 말인가. 그러나 국민은 '경제 민주화', '국민행복시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등 헛공약에 또 속았고 그녀는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행한 위선과 거짓이 드러나 온 나라가 격동하고 있으며, 240년 대통령 중심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도 없었던 탄핵을 불과 70년도 못된 나라에서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지난 선거에서 박근혜를 찍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형편없을 줄은 정말 몰랐어. 그때 투표했던 게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해!" 얼마 전 식사하는 자리에서 도치형님 내외분의 말이다. 나와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지극히 정상이다.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누구나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다. 나 역시도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 집회하는 한국사람들을 이해하는 대신 경멸했던 적도 있으니까. 문제는 이렇게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라고 뉴스룸에서 보도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역대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런데 5~60대 이상에서는 9%였다. 무얼 의미할까? 자신의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바로 '꼰대'들이라는 뜻이다. 나이 많은 것이 무슨 감투라도 되는 양, 가르치려 들고 훈계하려 드는 전형적인 '꼰대' 기질이다. 며칠 전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어느 회원이 올린, '나이를 밝히니까 훈장질하려 한다'는 한 줄 메모를 보고, 어느 곳이든 내 연령대의 최소 9%는 꼰대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실소했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꼰대 소리를 듣는지는 몰라도, 죽어도 꼰대가 되기는 싫은 사람들에 속한다.


▼ 11월 18일 자 jtbc 뉴스룸에서 가져온 스크린 샷


어제 대통령의 '대국민 3차 담화'를 보았다. 이 판국에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나는 가만히 있을 테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65세의 나이에도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에서 권위적인 '꼰대'를 보았다. 작년에 썼던 '권위주의'라는 글은 박근혜 대통령을 빗대어 쓴 글로, 실력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 바로 권위주의라는 요지였다. 권위주의가 능력이 아닌 충성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 논리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능한 대통령이었으니 내 판단이 변변찮은 것이기는 하나, 지난 6년 동안 쓴 글을 돌아보니 제법 맞춘 것도 꽤 있었다. 1년 전부터 'jtbc의 손석희 뉴스룸'을 극찬했었는데, 결국 지난달 역사적인 특종을 터트렸으며 지금은 최고의 신뢰와 함께 동시간대 뉴스로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썰전'도 시사프로그램으로서는 드물게 시청률이 높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될 것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 치졸하고 유치한 대통령의 행각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인지 시위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평화적인 촛불행진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들에게 교훈을 배워, 미국에서도 거짓공약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탄핵되어 임기를 못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 바람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도 최악이지만, 인간으로서도 뻔뻔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200만에 가까운 국민이 추운 날에 고생하며 '하야'를 부르짖는데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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