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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Jan 25. 2017

바둑과 골프, 그리고 인생

바둑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생 시절이었다. 방학이면 가서 지냈던 친척 집에서 어른들이 두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워 또래들끼리 장난으로 두다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본격적으로 배웠다. 1974년 조치훈이라는 동갑내기 천재가 일본의 당대 최고수인 '사카다'라는 기사와의 결승전에서 먼저 2패를 한 뒤, 내리 3연승을 하며 승리한 것에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단순한 오락으로만 알았던 바둑으로 민족의 영웅이 되고 온 국민이 흥분한다는 사실에 세상 물정 모르던 철부지는 마냥 신기했다.


새벽에 일어나 바둑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바둑책을 보고 정석을 외우고 이론을 공부했다. 조치훈의 기보는 무조건 암기했고, 이웃의 호적수와 대국하며 바둑실력을 하루가 다르게 키웠다. 신입생 시절 기우회에 가입하여 공식적으로 9급이던 기력이 3급까지 짝수 급수를 거치지 않았다. 9급에서 7급, 7급에서 5급, 5급에서 바로 3급을 두었다. 그렇게 빠르게 늘던 바둑 실력이 3급에서 2급이 될 때는 몇 달이 걸렸고, 2급에서 1급이 될 때는 더 오래 걸렸다. 20대가 되면서 1급을 두었고 맞바둑을 두었던 친구들은 네댓 점을 깔고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갈 때라 거의 지는 일이 없었다. 기원 주인하고 내기 바둑을 두어도 잃지 않았다.


포석과 중반전을 거쳐 끝내기에 이르는 바둑의 과정은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포석이 잘못되면 그 바둑은 이기기 어렵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아야 인생이 쉬어지는 것과 같다. 고수가 될수록 포석이 잘못된 판을 뒤집기란 더 어려워지지만, 그런 판을 뒤집을 수 있어야 진정한 고수가 된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역경을 헤치고 성공을 거머쥐었을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인생이란 바둑판에서 진정한 고수로 대접받는 것이다.


잘못된 포석을 뒤집기 위해서는 싸움에서 정교한 수읽기로 이겨야 하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사석작전도(사소취대) 필요하며, 부분적인 싸움보다는 대세를 볼 줄 아는 판단력도 요구된다. 실제로는 좌측 대마를 잡기 위해서 중앙을 공격하는 척하기도 한다.(성동격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치열한 중반전을 거쳐 종반전으로 가듯, 인생도 청소년기의 배움이라는 포석이 끝나면 가정에서 일터에서 무수한 일들을 겪으며 중년을 거친다. 


인생이 바둑과 다른 것은 한 번뿐라는 것이다. 물릴 수도 없고 다시 둘 수도 없으니 모두가 초보자들이다. 인생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원인이다. 하수들은 치열한 수읽기나 사소취대나 성동격서와 같은 고도의 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다. 젊을 때는 경험 부족과 교만, 독선으로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닫고 후회하는 것은 판의 끝내기 무렵이다. 하수일수록 포석과 중반전이 끝나고 종반전에 접어들어 기울어진 판세를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깨닫는다. 반면에 고수일수록 종반전에 들어서기 전 혹은 포석이 끝나기 전에 깨닫고 반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하수일수록 자신이 패한 것을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가서야 알게 된다.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나서 평소 건강에 소홀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빈털터리가 된 후에야 무리한 투자나 사업을 시작한 자신을 원망한다.


어려움을 만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의 능력 탓으로 착각하고 살다가, 고난을 만난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끝내기에 들어서서 패배가 확실해지면서 포석이나 중반에 치열하게 두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되돌릴 수도 없다. 끝내기보다는 중반에서, 중반보다는 포석에서부터 균형을 유지해야 이길 확률이 높다. 차이가 벌어져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수들은 돌을 던지고 패배를 빨리 받아들인다.


정리해고를 당하고 강제은퇴를 하고 나서야 인생도 바둑과 같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바둑과 많이 유사했던 것이다.


골프도 그렇다. 미국에서 골프광들을 많이 만났다. 어디서든 사람이 모이면 골프가 주된 화제다. 제각기 다른 이력을 갖고 살아온 이민사회에서 남자들에게 골프만한 공통화제도 드물다. 골퍼들은 흔히 골프를 인생과 가장 닮은 스포츠라는 것에 동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티샷을 잘하지 않고는 파를 하기 어렵다. 티샷을 잘못하고도 무리하게 파를 노린다면, 보기는커녕 더블보기가 십상이다. 욕심으로 게임을 망치는 것이다.


드라이브 샷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페어웨이에서 아이언으로 어프로치도 잘해야 하고, 그린에 올라가서도 투 펏으로 끝내야만 파를 할 수 있다. 간혹 운이 따라 준다면 버디도 낚는다. 물론 실력이 있어야 운도 따라준다. 티샷을 잘 날려 놓고도, 어프로치를 잘못하거나 라이를 잘못 보아서, 혹은 해저드에 빠져서 게임을 망치기도 하는 것은 인생과 비슷하다.


골프를 하면서는 골프를 바둑에 비유하곤 했다. 티샷은 포석에, 아이언 샷은 중반전에, 퍼팅은 끝내기와 비슷한 것이다. 동네 골프코스를 걸으면서 바둑을 떠올렸다. 둘 다 욕심은 금물이다. 게임을 그르치는 지름길이다. 또 초보자들은 노력에 따라 실력이 빠르게 늘지만, 어느 정도에 이르면 쉽게 늘지 않는다는 것도 같다. 세 자리 타수 초보 골퍼가 두 자리 타수로 진입하는 것은, 보기 플레이어가 싱글에 들어서는 것보다 훨씬 쉽다.


싱글 플레이어가 핸디 하나 줄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라운딩만 해서도 안 되고, 라운딩을 할 수 없는 날에는 레인지도 찾아가 스윙 연습에 땀을 흘려야 한다. 때로는 잘못된 폼을 고치기 위해 개인코치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싱글 실력을 유지할 수 있고 핸디를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시간과 돈을 쓰며 열중할 정도로 골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90대 플레이어로 만족했다. 잔디를 밟으며 걷는 것이 좋았을 뿐, 내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혼자 나가서 모르는 백인들과 썸을 만들어 쳤다.


이민생활에서 돌아와, 한국사회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카트를 끌고 골프코스를 돌면서 십수 년 전 즐겼던 바둑을 회상했던 그 느낌 그대로, 한국사회를 본다. 그러면 한국사회의 갈등을, 또 인간의 끝 모르는 욕심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잘 사는 것도 골프와 바둑의 고수가 되는 것도 흡사하다. 소득 3만 불에서 4만 불이 되는 것은 만 불에서 2만 불이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며,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한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갖고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소득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 탓이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저녁을 준비하는 대신, 엄마는 소득을 늘리는데 써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원이 끝나면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부모들은 아이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늦게까지 일한다.


10년, 20년 전에 비해 훨씬 잘 살고 있지만,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 역시 많다. 싱글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핸디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 레인지에서 땀을 흘려야 하는 것처럼. 왜 졌는지 분석하기 위해 진 바둑을 복기하며 밤을 새웠던 내 지난 젊은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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