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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Feb 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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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댓글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게 작년 8월 말이니까 반년이 다 되어간다. 포털 사이트의 글을 보고 댓글을 달기에는, 환갑을 겨우 지난 젊은 축(Young Old)이라 하더라도 올드타이머가 분명하다. 거기에다 미국 이민으로 국적이 바뀐 탓에 투표권마저 없는 주제에, 댓글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 2012년 대선가도에서 저질러진 말도 안 되는 '국정원 댓글 공작'이 있다.


국가의 정보기관이 직원을 동원해서 야당의 대선 후보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흑색선전활동을 했다는 것은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히려 '감금'했다는 억지성 혐의로 야당 측 인사를 고소하는가 하면 밤 11시에 경찰 수뇌부는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무혐의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40년 전 닉슨 대통령을 사퇴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 야당이나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씨의 대응도 물러 터졌고, 대선 패배를 너무 쉽게 인정했으며, 그 이후에 전개되는 수사방해도 도를 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느낌이었다. 불의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찰대학 교수직을 던져버린 표창원 씨만이, 한국에도 인물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을 뿐이었다.


부정한 정권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알바까지 동원해서 진실을 감추고 조작하는 댓글을 달지만, 나는 아무 대가 없이 양심이 시키는 대로 정당하게 하겠다는 것은, 금융위기 때 구조조정을 당해 무기력해진 은퇴자를 받아준 고국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로 시작한 댓글이었다.


댓글의 대상은 목적상 주로 정치성 기사들이다. 5개월 남짓한 기간에 3,500개에 이르는 댓글을 달았으니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루 평균 20개 꼴이다. 어떤 날을 댓글 수 제한에 걸려 달지 못한 날도 있었다. 댓글을 달면서 새로 배우거나 깨달은 것도 있고,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먼저 '좋아요'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새벽에 다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국정원에서 원룸을 얻어놓고 새벽에 활동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야 아침에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읽기 때문이다. 새로 나오는 기사에 먼저 달수록 '좋아요' 수가 많았다. '더보기'를 클릭하지 않고도 첫 화면에서 보이는 첫 3위 내에 들면 쉽게 '좋아요' 수가 만 개를 상회했다.


순발력도 필요했다. 얼마나 재치 있게 짧은 문장을 만드냐는 것이다. 라임(Rhyme, 운율)은 댓글에 금상첨화다. 예를 들어, '한진해운 40년 만에 파산'이라는 기사에,  '어느 강남 아줌마가 회사를 말아자셨고, (줄 바꿔서) 어느 강남 아줌마는 나라를 말아드셨다.'라고 댓글을 달았더니 극찬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시사성도 중요한 요소다. 일주일 전 최순실이 특검에 소환되면서 민주주의 운운할 때, 어느 청소 노동 아주머니가 '염병하네'라는 대꾸로 유명해졌다. 그걸 그대로 흉내 내서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단의 시간 끌기 기사에 단 '염병하네!'라는 댓글이 많은 수의 '좋아요'와 함께 답글도 많이 달렸다.


문제는 사람들이 무례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반말이고 욕설에 가까운 댓글들이 많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은 존대를 하는 것이 예절이고 예의다. 그것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일 때도 그렇지만, 반대의견에는 더욱 예절이 중요하다. 그런데 극단적인 의견일수록 반대 의견일수록 예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못 배우고 불상 놈이라도 '페이스 투 페이스'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누군지 모른다는 익명성에 기대어, 그런 식의 막말을 하는 것이리라. 내 상식으로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으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손가락질하는 것보다 더 비겁한 짓은 없다. 지금의 국정혼란도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이 모를 거라는 가정에서 자기들끼리만 소통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막말을 하는 사람도 최순실과 다를 게 없다.


댓글을 시작한 처음에는 내 글에 달린 답글들을 열어보았었다. 어떤 싹수없는 친구가 '네 아비 에미는 혼이 정상이냐?'라는 내용을 달았다. 눈앞에 있다면 싸대기를 날려주고 싶었다. 그 후부터는 웬만하면 답글은 안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보다 밝은 사회, 건전한 세상을 만들려면 반말 투의 싹수없는 댓글이 사라져야 한다. 어쨌거나 댓글 활동은 당분간 계속하려고 한다. 가급적 보는 사람이 영감을 얻게 하고 싶다. 짧지만 강렬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해서 녹슨 머리를 쓰다 보면 치매가 멀어지는 효과도 있을 거니까. 나 같은 아마추어 글쟁이들에게 신바람은, '돈'이 아니라 읽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도 글감을 생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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