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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Feb 03. 2017

내 아들은 비정규직

한국과 미국의 비정규직 차이점

자식들이 모두 성인이 된 탓인지, 아니면 은퇴하고 아이들과 멀어져서 무기력하게 사는 자격지심 탓인지는 몰라도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된다. 너희들이 보고 싶어서 뉴저지에 가려고 하는데 언제가 좋겠느냐고 물어본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딸아이의 결혼식 때 갔다 오면서 남은 아이들도 곧 짝을 만날 걸로 생각했고, 어차피 그때 가면 될 걸로 생각했던 것이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미혼인 딸은 남자 친구를, 아들은 여자 친구를 만나 사귀는 것 같더니 헤어지고 말았다고 들었다. 4개월 전에 딸과 사위가 다녀갔지만, 그 아이들이 다녀간 이후로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여행은 그때 가봐야지 알아요. 요즘 일이 많아지고 있어서요." 아들에게서 받은 카톡이다. 이번에 가면 아이들과 멀지 않은 곳이라도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런 내 제안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 시간이 안 되면 아이들과 몬탁(Montauk, NY 롱아이랜드의 동쪽 끝)이라도 다녀올 생각이다. 160마일 정도밖에 안 되는 곳인데도 뉴저지에 살면서 가본 적이 없었다.


일하고 있던 삼성전자가 텍사스로 이전하자 그만두고, 계약직으로 취직한 것이 불과 1년 전이었다. 삼성에 있을 때 개발부서 코디네이터로 버라이즌(Verizon, 미국 최대 통신회사)을 상대했던 녀석에게, 옮기려면 버라이즌 쪽에 알아보라고 했더니, 그쪽은 계약직 밖에 자리가 없다며 싫다고 했었다. 그러던 아이가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2년 가까이 재취업을 못하더니 급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녀석이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었다.


녀석이 다니는 회사는 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의 건설 부분을 담당하는 자회사인 'MTACC(MTA Capital Construction)'이었다. MTACC가 현재 진행하는 5개 프로젝트 중에서, 롱아일랜드 전철(LIRR)로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 역까지 출퇴근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East Side Access'라는 공사에 투입되어 있었다. "네가 원했던 대로 칼퇴근하고 있니?" 이렇게 물었던 것은, 녀석이 LG나 삼성에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는 오버타임 요구에 넌더리를 쳤던 기억 때문이었다.


"자율 출퇴근을 하는데, 아무 때나 왔다 가면 안 되고요. 저는 7시에 나와서 4시에 들어가요. 그래도 일은 일이죠, 뭐. 배울 게 많아서 아직까지 제 구실 못하고 있어요. 4년 뒤에 시험 봐서 자격증 따야 사람대접받을 것 같아요." 기계를 전공한 녀석에게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알지는 못해도, 녀석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한편 안심이 되었다. 경력을 요구하는 자격증이라면 기술사 같은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공부나 시험이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것이고 정규직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애비가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아들에게 해줄 말은 덕담 밖에 없었다. "참하고 예쁜 아가씨 만나서 열심히 연애도 하고 재밌게 지내라!"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젊은이들의 취직이다. 2015년 2016년 2년 연속 역대 청년실업률과 실업자 수 기록 갈아치우다 결국 2017년이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업자 10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 주요 기사다. 박 대통령의 탄핵이 확실시되면서, 곧 있게 될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마다 주요 공약도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일자리 질은 더 큰 문제다. 정규직 일자리보다는 계약직이나 임시직 또는 알바 등 비정규직이 많고 이들은 정규직에 비할 바 없이 처우가 열악하다.


오죽하면 '20대 개새끼론', 88만원 세대, N포세대, 대학 5학년, 헬조선, 노예계약, 열정페이처럼 엄혹한 현실을 나타내는 표현이 나왔을까. 최근에는 '이랜드 그룹'이라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파트타임 근로자들의 임금을 떼먹었다는 기사까지 보았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나갔다 오라고 하고는 그 시간만큼 근로시간에서 제외했다는 거다. 그런 피해를 당한 파트타임 근로자가 4만 명이 넘고, 피해금액은 84억이나 된다. 어떤 놈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마음은 아니다. 미국이라면 소송을 당하고 엄청난 배상금을 물거나 기업이 파산했을 것이다.


'미제는 똥도 좋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세대가 우리다.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어서 그럴까. 나라를 온통 미국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웃기는 건 못된 것만 가져왔다는 것이다. 자본에 유리한 것은 죄다 갖다 놓았으면서 약자인 서민에 유리한 것은 별로 없다. 그중의 하나가 비정규직이다. (나나 내 아이들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미국에서 '컨트랙터'라고 불리는 계약직은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보다 보수가 많았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에서는 계약직이나 인력회사 파견직의 경우, 정규직보다 1.3~1.5배의 급여를 주었다. 대신 그들에게는 정규직에게 당연시되는 의료보험, 승진, 유급휴가 등의 베니핏이 없었다.


일손이 부족할 때만 사용하는 비정규직 제도는 회사 입장에서는 잇점만 있는 반면, 근로자에게는 언제든 일자리가사라질 수 있는 불리한 제도다. 유리한 만큼 회사에도 반대급부가 있어야 공정하다. 바로 임금이다. 높은 비용이 싫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된다. 회사입장에서는 먼저 사용해보고(?) 채용할 수 있으니 불량제품(?)의 리스크가 없다. 인력회사 파견직이 우수할 경우, 정규직원으로 전환하려면 인력회사에 커미션까지 지불했고 계약직은 급여를 정규직에 맞춰 깎았다. 딸아이가 다른 회사로부터 처음 계약직 제안을 받았을 때는 두 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받았고, 또 다른 회사 정규직으로 옮길 때는 25%가량 적은 연봉을 받았다. 배니핏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게 정상 아닐까.


배니핏 하나 없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 한국의 비정규직 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마다 자신을 뽑아주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말을 하는 대선후보들에게서, 왜 비정규직을 미국처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들을 수 없을까.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만 그랬고, 내 아이들만 그랬던 것일까. 그래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어느 한 쪽만 유리하고 다른 쪽은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제도가 있다면 불공정한 것이 분명하기에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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