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물리학 운동법칙
생각과 마음은 같을까, 다를까? 영어단어로 바꾸면, 생각은 ‘Thinking’, ‘Thought’, ‘Idea’, 마음은 ‘Mind’, ‘Heart’이니까 다른 의미로 봐야 할 것 같다. 이성에 가까운 게 생각이라면, 마음은 본성에 근접한다고 하겠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논할 만큼의 지식은 없지만, 그런 게 있다면 그것은 마음일 것이다. 생각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보고 들으면서 폭과 깊이를 더하며 발전한다.
부모로부터 건강한 체질을 받고 태어나기도 하는 반면에,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병적인 유전인자를 받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약한 체질도 꾸준히 운동하고 섭생과 절제에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건강한 체질로 바꿀 수 있다. 타고난 마음이 성악설이나 성선설에 의한 것이든지에 상관없이 생각은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도 체질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점에서 마음이 선천적이라면 생각은 후천적 성향이다.
인류 최고의 수학자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 1명이자, 물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아이작 뉴턴(1643~1727)은 300년 전에 ‘물체의 운동법칙’을 수학으로 풀어 정립했다. 소위, 관성의 원칙으로 불리는 뉴턴의 제1법칙, 가속도의 원칙인 제2법칙,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의 제3법칙이 그것이다. 60년 넘게 살아오면서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 결과로 뉴턴의 운동법칙은 물리학에만 국한되는 원칙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나 믿음에도 적용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물체의 질량 중심은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이 뉴턴의 제1법칙이다. 차가 급정거할 때 몸이 심하게 앞으로 쏠리는 것은 바로 이 법칙 때문이다. 물체만 이런 것이 아니라, 생각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이민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보수나 진보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박정희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친하게 지내는 분으로부터 몇 년 전에 들었던 말이다. 현대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1970년대 유신헌법으로 독재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좋게 평가할 수 없다고 믿고 있던 내게는 다소 의외였다. 유신시대 그분은 사회생활을 했고, 나는 학생 신분이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출생의 세대 차이였을까.
“우리는 지난번에 박근혜를 찍었거든.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인 줄 몰랐으니까. 나보다 몇 살 많은 분에게 박근혜 찍었다고 욕먹었어. 엊그제 그 양반을 만나서 잘못했다고 사과했다니까!” 같은 분으로부터 지난달에 들었던 말이다. 생각이 관성을 잃게 만든 것은 ‘국정농단’이라는 외부의 충격 덕분이다. 뉴턴의 제1법칙에 의하면 서있거나 움직이는 물체는 외부의 힘(충격)이 작용하지 않는 한, 계속 그 자리에 멈춰있거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밖으로부터 어떤 작용이 가해지면 정지한 물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물체가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같은 힘이 작용하더라도 어떤 물체는 움직이고 무거운 것은 꿈쩍도 안 한다. 같은 충격에도 생각의 관성이 변함없는 사람도 있다. 바로 고집불통이다.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박완서 소설에 등장하는 선생의 유년시절,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상투에 망건을 쓰고 사랑채에 들어앉아 빨리지도 않는 기다란 장죽에 불을 댕기며 안채에 소리만 질러대는 노인이다. 풍에 걸려 오른쪽이 마비되었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해서 온 식구를 불안에 떨게 한다. ‘박사모’라는 집단도 이와 비슷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5%의 사람들이 전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비만만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다. 너무 무거워서 유연하지 못한 생각도 해롭기는 같다. 욕심을 버리는 것도, 가난한 마음이나 겸손함도, 마음으로부터 불필요한 복부지방을 제거하는 것 아닐까. 자식이나 부모라고 해서, 내가 투표한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들이 옳을 수만은 없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법정이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앞선 스승들의 깨달음을 읽고 이해하기는 쉬워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체의 운동량의 시간에 따른 변화율은 그 물체에 작용하는 순수 힘과 (크기와 방향에 있어서) 같다.’ 뉴턴 제2법칙이라는 가속도의 원리다. 여기서 ‘시간에 따른 변화율’은 약간 복잡한 미분 함수다. 가속페달을 밟아야만 자동차의 속도가 올라가는 것은 연료(힘)를 그만큼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동차가 감속하는 것을 공기저항과 도로면과의 마찰력이 원인이다. 감속도 가속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힘이 작용한다.
생각도 유사하다. 외부의 힘에 의해서 사고(思考)의 속도가 달라진다. 여기서 외부의 힘은 지식과 경험, 생각이다. 많이 보고 들으며(경험), 많이 읽고 공부하며(지식), 생각의 깊이를 더할수록 사고의 폭과 깊이도 변한다. 그런 도움 없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고민을 해결하려 들수록 편협하고 제한된 사고로 일을 그르치기 쉽다.
오르막에서는 중력이 감속의 원인이 되지만, 내리막에서는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차는 중력 때문에 가속한다. 중년과 장년을 넘어 노인으로 접어드는 우리 세대는 생각의 오르막에 있는 셈이다.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지 않으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생각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박완서 선생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대가 아니다. 고함을 칠 안채도 없고 들어줄 사람은 더군다나 없다. 액셀러레이터를 밟기가 힘에 겨우면 자신의 생각이 고루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지도 않으면서 뒤쳐진 생각을 인정하기도 싫다면 ‘꼰대’가 되는 수밖에.
생각에 가속도가 붙도록 내리막으로 만드는 것이 무얼까.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된다. 흥미와 몰입이다. 바둑을 공부하려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의 맑은 정신으로 정석을 외웠고, 처음 접한 PC가 재미있어서 PC원리를 밤새워 공부했다. 의학을 공부하느라 잠잘 시간도 없는 조카 녀석은 학교 그룹사운드 활동에서 리드기타 연습에 밤을 새운다. 젊은 시절 인기 스포츠였던 권투는, 각 체급별 세계챔피언 이름까지 줄줄이 외우고 다녔다. 연륜과 경험은 부족했지만 불필요한 지식까지 기억할 정도로 감수성은 풍부했다.
그러나 세월의 힘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시간은 생각의 가파른 오르막에 나를 올려놓았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애써도 하루만 지나면 처음 본 듯 생소하다. 사고에 가속도를 붙이기는커녕 중력의 방해를 이겨내기도 힘겹기만 하다. 차라리 감속을 인정하는 것이 훨씬 쉽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