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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Feb 24. 2017

생각의 운동법칙(後)

생각과 물리학의 운동법칙

누구나 인정하듯이 마음을 담는 그릇은 몸이다. 영어로 마음을 ‘Heart’라고 하는 것을 보면 신체 중에서도 심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생각은? 머리다. 머리 중에서도 뇌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작동시키는 엔진이다. 생각은 스스로 동작한다는 점에서 자동차와 논리적으로 흡사하다. 자동차의 엔진은 기름을 태워 움직이지만 생각은 보고 듣고 배워서 느끼고 기억한 것이 동력이 된다.


성능이 좋은 엔진은 몇 초 만에 일정 속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의 지식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앞선다. 성능이 좋은 자동차의 운전자는 사고를 낼 때도 타인에게 크게 피해를 준다. 좋은 두뇌를 소유한 마음의 의도가 불량할 때, 타인에게 주는 피해 역시 일반인과 비할 바가 아니다. 소년 급제로 유명한 우병우와 지난 50년 간 정의롭지 않게 권력을 휘두른 김기춘 씨가 좋은 본보기다.


아무리 훌륭한 자동차도 연식이 오래되면 성능이 떨어진다. 기름을 연소하고 남은 찌꺼기가 곳곳에 끼고 기계도 마모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성장하는 젊은 시절은 속도도 빠르고 가속도까지 붙는다. 비교적 완전한 정보를 주는 학교를 떠난 후, 사회에서 편향되고 불완전한 단편적 정보에 자주 노출되면서, 엔진에 찌꺼기가 끼듯 두뇌에도 부정확한 단편적인 정보들이 찌꺼기가 되어 생각의 동력이 약해진다.


동화나 만화부터 무협지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던 어린 시절에 비교하면, 쉬운 소설조차 몇 번씩 앞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겨우 이해하는 지금은 폐차 직전의 고물 자동차와 다름없다. 문제는 폐차 직전이라는 것을 스스로 부인하는 데 있다.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경우 40대 중반부터 시작하는 지력의 노화현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상상하지 못한다. 마흔 살에 다다른 내가 이민을 결행했던 바탕에도 그런 무지가 있었다. 지난주에 만났던 이민 지망생에게 설명하기는 했으나 그가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지 않는다.


‘물체 A가 다른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물체 B는 물체 A에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을 동시에 가한다.’ 뉴턴의 운동 제3법칙이자,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다. 바보가 아닌 이상, 벽을 밀어서 쓰러뜨리려는 사람은 없다. 벽을 힘으로 세게 밀수록, 벽도 같은 크기의 힘으로 저항한다.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고 상대편의 믿음을 꺾으려 한다.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밀어대는 어리석음과 다를 게 없다. 주먹으로 상대의 주먹을 치면 상대와 똑같이 내 주먹도 아프다. 내 단단한 주먹으로 상대의 약하고 여린 곳을 쳐야 효과가 있다.


안타깝게도 생각에는 더 단단한 곳도 더 소프트한 곳도 없다. 다른 생각끼리 부딪히면 서로 고통과 상처를 주고받을 뿐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발생한다.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피를 나눈 형제는 피하는 게 쉽지 않다. 남편, 아내, 부모, 자식, 동생, 형의 생각을 쓰러뜨리려 할 때, 상대가 받는 작용과 같은 크기의 반작용이 내게도 전해진다. 


특히 부모 자식 간에 생각의 차이가 때로 심각한 상황을 불러오는 것은, ‘Peer to peer’ 관계가 아닌 탓에 일방적 소통이 원인이다. 자신이 받는 같은 크기의 고통을 상대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당한 아픔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려고 시도하고, 이런 시도가 결국 아이들을 잘못되게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극단적이지만 반대의 사례도 있다. 이달 초에 신문에서 본 기사가 흥미롭다.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40대 아들과의 연(緣)을 끊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의사 부모의 이야기다. 심지어 부모는 아들이 미국 유학 기간 중에 보낸 5억 원까지 돌려달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총장과 이사장에게 아들을 파면시켜 달라고 탄원까지 했다. (다른 사연도 있겠지만) 신문기사에 의하면, 아들이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은 여자와 결혼했다는 게 발단이 되었다. 얼마나 자신들이 당한 아픔을 되돌려주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의사 부모와 교수 아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뉴턴의 운동 제3법칙에 따른 생각 물리학으로 이해할 일이지, 지적 수준의 문제는 아니다.


흉하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벽을 쓰러뜨리려고 밀어대는 사람은 없다. 생각이 있다면 벽지를 바꾼다든가, 장식물로 치장해서 벽과 친해지고 공존하려고 애쓸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아들을 밀어서 쓰러뜨리는 대신, 아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며느리와 친해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생각이 같은 부부와 자식, 형제들보다 조금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공존하며 이해하는 삶이 훨씬 더 풍요롭지 않을까. 그만큼 화제도 많고 토론 거리도 많을 테니까.


슈퍼맨의 힘을 지녔다면 보기 싫은 벽을 밀어서 쓰러뜨릴 수도 있다. 역사 속에 그런 슈퍼맨들이 가끔 나타나기는 한다. 천동설을 쓰러뜨린 갈릴레오 갈릴레이, 창조론을 무너뜨린 찰스 다윈, 물체의 상호작용을 수학으로 증명한 아이작 뉴턴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런 능력이 없다.


목적물(Object)이 물체가 아니라 생각일 경우 상대를 쓰러뜨리는 일도 흔하다. 부모의 일방적 강요를 못 이겨서, 남편의 폭력에 저항할 수 없어서,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어서. 하지만 그런 경우 자식은, 아내는, 부모는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군대이나 직장에서, 혹은 반작용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길들여질 수밖에 없을 때, 누구나 스트레스가 심할 뿐만 아니라, 좌절감에 절망하며 탈출을 꿈꾸기도 한다.


따라서 벽을 밀어 쓰러뜨리는 시도는 어리석다. 남편, 아내, 자식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 역시 무모하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공존이 아름다운 이유는 용기와 함께 이해와 용서가 병행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혜를 30년 전에 깨쳤더라면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시도하지 않았을 거고, 아이들의 아픔도 훨씬 덜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일뿐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렇듯 후회와 자조의 글이나 끌쩍거리며 넋두리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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