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조 Feb 26. 2017

'Better life'를 찾아서(1)

이민 이야기

- 맹호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한 것이 1968년이었어요. 군수품 담당 보급병으로 미군을 상대했지. 그때 그들의 풍족한 물자를 보고 정말 놀랐어요. 실탄이든, 폭탄이든, 음식이든 달라는 대로 주는 거야. 그래서 결심했어요. 미국에 이민 가서 살아야겠다고.


- 제대하고 1년 동안 준비하고는 결혼 3개월 만에 미국에 갔어요. 혼자 가려니까 사귀던 여자네 집에서 약혼이라도 하고 가라는 거야. 그러자 우리 집에서 약혼하고 갈 바에는 결혼하고 가라더군. 그래서 결혼하고 혼자 미국으로 간 거지. 집사람은 나중에 왔고.


- 40년을 살았어요. LA에서 15년과 시애틀에서 25년. 돈도 많이 벌어보았고, 지인에게 속아 다 날려도 보았지만, 쉴 새 없이 일한 덕분에 노후는 별 걱정이 없어요. 자식들도 다 잘 커서 잘 살고 있고. 앞으로 2년 내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생을 보낼 거예요.


2012년 1월 중순, 마중 나간 제주공항에서 처음 뵌 L 선생은 마른 체구로 언변이 청산유수 같았다. 비즈니스가 제일 한가한 1월이면 해마다 건강진단을 받을 겸 서울에 와서 친지들을 만나며 지내는데, 이번에는 지난달 말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 미주 중앙일보를 보고 나를 만나겠다는 생각으로 제주에 들렸다고 했다. 


다음날 돌아가는 길에 들린 공항에서 L 선생이 한 말이다.


- 이제 돌아가면 또다시 정신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집이 바닷가에 있는데 저녁 무렵 백야드에서 보는 노을이 정말 멋있어요. 그런데 그걸 보는 날이 일 년에 며칠 되지 않아요. 거의 해진 다음에 집에 들어가니까. 집은 그냥 잠만 자고 나오는 하숙집이나 다름이 없어.


미국에서 만난 대학 선후배들은 대부분 주재원으로 왔다가 영주권을 받고 눌러앉으신 분들이 많았다. 간혹 가족이민으로 오신 분들도 있었지만, 주재원으로 왔다가 만난 미국의 모습이 당시 한국에 비할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런 모습에 마음이 끌려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까?


2011년 11월 서울에서 있었던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분들 중 한 분은 자신의 이민 사유를 이렇게 말했다.


-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위해 1972년 유신을 일으켰어요. 탱크가 대학에 들어서고, 군사독재로 자유를 박탈당한 한국은 암울하기만 했어요.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산호세에 있는 사촌매제의 집에 들렀을 때다. 술 좋아하고 사람 좋은 매제는 함께한 술자리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 1983년 말 제주 촌놈이 유학으로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는 한국도 못살았을 때였으니까, 제주는 어떠했겠어요? 하하하, 그런데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되고 제주가 그렇게 좋아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내 경우는 사업 아이템을 찾아 방문했던 미국에서 취업기회가 생겨서 이민을 결정했다.


- Best choice you've ever made in your life! (네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을 했다!)


거대한 몸집의 유태인인 John은 당시 그 회사의 부사장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에게 이 회사를 다니며 미국에서 살 거라고 하자 그가 한 말이었지만, 사실 내게도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1983년 초 회사에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뽑은 연수생에 선발된 덕분에 방문하게 된 곳은 플로리다의 동쪽에 있는 멜버른(Melbourne)이라는 작은 도시였다. 한 밤에 도착하여 그곳이 대서양 해변에 위치한 ‘Ocean Front Hotel’ 인 줄도 모르고 ‘쏴아아’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긴장 속에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아 본 눈부신 해변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2월 말이었는데도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에 엎드리거나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 금발들은, 총각이었던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 너, 미국에 환장한 놈 아냐? 그래서 미국에 간 것 아냐?


친구들 중에서도 속이 깊고 현명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친구가 5~6년 전에 전화해서 뜬금없이 내게 뱉은 말이었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 전화를 받은 시간이 오전이었으니 한국의 늦은 밤에 술을 마시다 술김에 전화했을 수도 있겠고, 또 미국에서 고생하며 사는 내가 애처로웠을 수도 있겠다.


- 옛날 미국에 몇 개월 다녀와서 내가 너무 떠벌렸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무슨 미국에 환장을 했다고 그러냐? 너도 알다시피 그 잘난 회사에서 사업부장 한다고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냐? 나 거기 살았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 내 성질 알잖아. 나는 그 나라의 지긋지긋한 부정부패가 싫었을 뿐이야! 그래서 떠났어! 너도 아는 스토리 아니냐? 이 자식아. 쓸데없는 소리 하려면 끊어!


그렇게 얼버무리고 지나갔지만 친구가 내뱉은 말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의 운동법칙(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