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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Mar 02. 2017

교육에 대한 소고(小考)

내 아이들이 경험한 미국 교육

뉴저지만 그런지는 몰라도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의 시간표는 매일 똑같았다. 매 학기 초에 정해지면 매일 똑같은 수업의 반복인 것이다. 사회, 역사, 생물, 과학 등은 학기에 따라 있기도 없기도 하지만, 체육은 매일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의 휴일, 고등학생이던 아들에게 운동하러 가자고 했더니 학교에서 매일 하는데 뭐하러 집에서 또 하느냐고 싫다고 했다. 다시는 같이 운동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혹 고등학생인 아이들의 노트를 본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아이가 있는 분들은 그들의 체육수업 노트를 한 번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딸아이의 체육(Gym) 노트를 보고 놀랐다. 남·녀의 성기를 묘사하는 단어들이 가득했다. 조금 과장하면 포르노 소설을 보는 듯했다. 6, 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남녀가 구분된 학교를 다녔지만, 이 아이들은 같은 학교와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선데이 서울’과 ‘일간 스포츠’가 유일한 성교육 교재였던 세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 세대는 얼마나 왜곡된 성(性) 지식을 갖고 살았던가.


대학생 시절에 고등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던 나는, 예비고사(현재의 수능시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것은 몰라도 수학이나 영어, 과학은 기회가 될 때마다 대충 훑어보았다. 물론 초창기에만 그랬을 뿐이고, 점점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많아지면서 잊혀갔다. 작년 수능시험 문제 중 몇 개의 문제를 어느 분이 게시한 적이 있어서 읽어보았다. 수학은 문제를 풀기는커녕, 문제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등학생 때 수학만은 웬만큼 했던 사람이었는데도 그랬다. 영어문제는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거기 제시된 문제를 맞힐 자신이 없었다. 지문에는 생전 처음 보는 어려운 단어가 댓 개도 넘었다. 아이큐가 150이 넘는 천재로 태어난다면 모를까. 미국에 살면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모르고 살았는데도 그랬다.


미국 동부에서는 11학년부터 12학년(한국의 고2부터 고3)까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SAT(Scholastic Aptitude Test or Scholastic Assessment Test)를 보통 세 번 보고 가장 좋은 점수로 지원한다. SAT 기출문제를 본 분들이 있는 분들은 알 것이다. 별로 어려운 단어도 없어서 정답을 맞히지는 못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으며, 수학은 쉬운 문제들도 많아서 꽤 정답을 가려낼 수도 있었다. 아니, 이렇게 쉬운 문제를 대입시험에 다 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문항도 있었다. 나중에 에세이가 추가되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랬다.


한국에서는 수능시험이라고 한다. 수능은 ‘수학(修學) 능력’을 뜻하는 말이니까 영어로 하면, ‘Study Ability Test’인 셈이다. 같은 SAT이지만 ‘학습 적성시험’을 뜻하는 미국의 SAT와는 그 뜻하는 의미의 차이는 크다.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저마다의 소질’을 갖고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 저마다의 소질에는 학습을 잘하는 소질도 있고, 영어나 수학에 타고난 자질도 있고, 음악이나 미술에 뛰어난 천부적 재능도 있다. 수학능력만 갖고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학을 결정하는 것은 모순덩어리다.


인생을 살아보니 고등학교에서 배운 미적분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대학에서는 필요했다. 전자기학을 배우고, 패러데이 법칙을 이해하며 회로 방정식을 푸는 데는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에서 필요한 것이니 대학에 가서 배워도 충분했다. 기계공학을 공부한 아들의 대학노트를 보니 그랬다. 고등학교에서 미적분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원주율 ‘π’가 ‘3.14159……’로 되는 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기초적인 미적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내게는 끔찍했던)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문학을 전공할 것도 아닌데 그 어려운 단어까지 외워야 할까.


보통 사람의 평범한 직장이나 사회생활에는 미적분도 필요 없고, 더군다나 어려운 영어는 더욱 필요 없다. 초등학교에서 배운 덧셈, 뺄셈, 덧셈, 나눗셈과 중학교에서 배운 일차 방정식과 연립 방정식만으로도 충분했으며, 영어도 옆에 사전만 있으면 어려운 단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필요한 것은 남녀가 어떻게 다르고,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부관계, 부부관계, 친구사이, 직장에서 상하관계 등 살아가는 데 갈등은 필연적이며 그런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고 극복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왜 뇌물을 주고받으면 안 되는지,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종말은 어떻게 되는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무심코 버린 비닐봉지가 땅 속에서 썩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돈이 없어도 어떤 생각을 가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우울증이 왜 오는지, 갱년기는 무엇인지, 우울증은 정신병도 아니고 창피할 것도 아닌 마음에 오는 감기 같아서 약으로 쉽게 치료된다든지 등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칠 것은 너무나 많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진짜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쓸데없는 미적분과 삼각함수, 통계를 가르치고 써먹지도 못할 영어단어 외우는데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런 것은 그런 학습능력을 타고나 소질을 개발한 사람들로도 충분하다. 사람들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해서 적성에 맞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된다. 그래야 자살률, 이혼율이 줄고 결혼율, 출산율이 늘지 않을까. ‘흑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헬조선’을 말하는 젊은이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죽기 전에 이런 수능 문제를 보았으면 좋겠다.


- 아래 보기에서 버리면 가장 심각한 자연훼손을 초래하는 것을 순서대로 고르시오.


- 고부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이나 아내가 해서는 한 될 말이나 행동을 고르시오.


- 행복과 가장 밀접한 단어를 고르시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작금 벌어지는 한국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월이 변하고 시대가 변했는데, 6, 70년대식의 구태의연한 교육으로 현대의 복잡한 갈등구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싶다.


윤리와 철학이 수학과 영어만큼 중요하게 학교에서 취급되고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날, 더 좋은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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