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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조 Apr 10. 2017

목욕탕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무덤 속에서 살아 나오신다면 무슨 놈의 세상이 이렇게 변했느냐며 못살겠다고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고 할 겁니다." "하하하, 그러게요. 살아있는 우리도 적응이 쉽지 않은데 돌아가신 부모님이 지금 세상을 보면 그러시겠지요." 이발사의 푸념 섞인 우스개에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목욕탕 안에 있는 이발소였다. 하긴 요즘은 명칭도 바뀌어 사우나라고 부르지 목욕탕이라거나 대중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역할도 바뀌었다. 목욕하는 곳이 아니라 휴식을 취하거나 피로를 푸는 곳으로. 집집마다 욕실이 한두 개씩은 있고 매일 샤워를 하니까 굳이 목욕탕에서 때를 벗길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60대로 보이는 이발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옛날에는 이발소에 손님이 많았어요. 남자들만 아니라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도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죠. 그런데 지금은 남자고 여자고 전부 미용실에 가요. 이발소는 파리만 날리죠. 그나마 손님이 있는 곳은 사우나에 있는 이발소 정도예요."


그러고 보니 그랬다. 어렸을 때 이발소에 가면 촌스럽게 바짝 올려 깎은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있었다. 중학교에 가면서 국민학생의 상고머리는 빡빡이나 별 차이가 없는 '이부' 머리로 바뀌었다. 2밀리로 잘랐다고 '이부'라고 했다는 말이 사실일까. 머리 위를 바리캉이 몇 번 지나다니면 끝났다.


중학생 때 일이다. 동네 이발소 주인이 빚잔치를 했다. 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돈을 떼이게 된 엄마는 자식들 이발이라도 공짜로 하려고 했다. 요금도 못 받고 머리를 깎아주게 된 주인 영감은 바리캉으로 머리를 깎으며 쥐어뜯었다. 나와 내 동생은 아무 죄 없이 '아얏!' 소리를 연발하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집에 가서 불평하면 엄마는 이발소에 쫓아가서 영감에게 따지곤 했다. 이사를 가면서 웃지 못할 불편은 끝났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그 아픔마저 아스라한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기억은 더 먼 곳을 더듬는다. 어렸을 때 목욕탕은 연례행사나 다름없었다. 설날이나 추석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는 동네 목욕탕은 그야말로 만원이었다. 커다란 타원형의 탕 안에는 어른들로 가득했고 수도꼭지 앞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는 열심히 내 몸의 때를 밀었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늘 귓속을 검사하고는 때를 덜 벗겼다며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곤 했다.


평시에는 좁은 부엌이 목욕탕이었고 월례행사였다. 커다란 함지박에 데운 물을 채우고는, 뜨겁다며 악을 쓰는 나를 밀어 넣고 엄마는 억척스럽게 몸의 때를 밀었다. "이것 봐라, 이렇게 때가 나오는데 사내새끼가 그것도 못 참아!" 살가죽이 아파서 우는 나를 때려가며 악착같이 때를 벗기던 엄마 목소리가 기억에서 들려온다. 자식의 몸에 들러붙은 때를 힘들게 벗기는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러나 엄마는 내게 되갚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엄마를 욕조에 앉히고 주름진 피부에 낀 때를 벗겨드릴 내 차례가 왔는데.


목욕하기 전에 이발하면 편하다. 팬티만 걸치고 머리를 깎고는 바로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니까 중복노동(?)을 피할 수 있다. 요즘에는 어딜 가도 온탕 외에 열탕과 냉탕이 있고, 건식과 습식 사우나가 있다. 매일 샤워를 하더라도 열탕과 냉탕, 사우나를 오가며 피부를 불린 뒤 때를 벗기면 훨씬 개운할 뿐만 아니라 피로도 가신다. 어렸을 때 가던 목욕탕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고, 수도꼭지를 차지하려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옛날에는 목욕탕에 가려면 저 아래 모슬포까지 걸어서 가야 했다는 거야. 한여름이 아니더라도 목욕하고 다시 걸어서 올라오려면 땀투성이가 되었다는 게 이 동네야. 그런데 요즘은 집집마다 욕실이 있어서 집에서 샤워할 수 있으니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가 부럽지 않다는 게 동네 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귀포 안덕면에 사는 도치형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그러나 지난 6년 동안 또다시 크게 변했다. 국제학교가 들어서고 신화공원이 생겼으며 허허벌판에 건물들이 들어찼다. 최근에 도치형님에게 들었던 말은 이랬다. "내가 아는 노인이 에쿠스를 샀어.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평생 농사짓느라 경운기와 1톤 트럭만 탔으니까 좋은 차 한 번 타보겠다는 거지."


이발사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크게 변했다. 이제는 부엌에서 함지박에 들어가 목욕하는 아이도, 우는 아이를 때려가며 때를 벗기는 엄마도 없을 거다. 늙은 부모를 욕조에 앉히고 씻기는 자식도 없을지 모른다. 제주에는 방문 목욕차량이 있어 장애인과 노인들에게 목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그러더라도 한 번이라도 내 부모님을 씻겨드렸으면 원이 없을 텐데. 때를 미는 손길에 힘이 가는 것은 기억 속에서 들려오는 그리운 엄마의 목소리 탓일까. '이놈 새끼야, 사내 녀석이 그것도 못 참고 징징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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